[당객열전] 두려움을 모르는 '닥공' 김임권

정완주 기자 2023. 9. 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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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강사에서 3쿠션 승부사로 거듭나
절박한 순간에 쿠드롱과의 결승 명승부
프로당구 선수 김임권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삭발의 흔적이 남은 무명의 선수가 결승전까지 진출해 '당구 황제' 프레드릭 쿠드롱 선수와 만났다. 베테랑 선수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절대강자와의 숨막히는 결승전. 낯선 무명의 선수에 대한 기대는 거의 없었다. 쿠드롱의 일방적인 경기로 승부가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결승전 뚜껑이 열리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무명의 선수가 초반부터 매서운 기세로 치고 나가 쿠드롱을 몰아쳤기 때문이다. 최강자를 앞에 두고도 그의 눈빛은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쿠드롱과의 결승전은 아쉽게 졌지만 기죽지 않은 무명 선수의 당찬 도전을 향해 아낌없는 갈채가 쏟아졌다. '닥공' 김임권의 당구 인생은 그 이후부터 새롭게 열렸다.

키가 작아 축구선수 꿈 포기
큰형 밑에서 스키 관련 일 배워

구기 운동을 유독 좋아했던 김임권(42·웰컴저축은행) 선수는 학창 시절 축구 선수를 꿈꿨다. 남다른 운동신경으로 골을 넣는 공격수 역할을 주로 맡을 정도였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 선수로 성공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세웠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꾸려준 축구팀에 들어가 마음껏 축구를 즐겼죠. 다른 학교와도 시합을 자주 했고요. 그런데 키가 문제였습니다. 당시에는 키가 큰 선수를 선호하는 추세가 강했는데 정작 저는 키가 자라지 않았던 거죠. 마침 집안 분 중에서 축구 선수를 하다가 작은 키 때문에 결국 포기한 사례가 있던 참이라 부모님의 반대가 커서 결국 축구선수의 길을 포기했어요."

축구는 20대까지 김임권의 삶을 지배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군 생활을 거치면서도 그는 축구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조기축구회를 통해 선수의 길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채웠다.

하지만 결정적인 부상으로 더는 축구를 즐기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불운했던 부상은 공교롭게도 당구 인생을 연결해준 끈 역할을 했다.

"경기 중에 안와골절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 여파로 지금도 오른쪽 눈을 아래 방향으로 잘 움직이지 못해요. 부상이 재발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와서 더이상 축구를 할 수가 없었죠. 결국 축구에 대한 아쉬움을 당구에서 찾기 시작한 겁니다."

김임권은 축구를 즐기는 틈틈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당구를 접했다. 당구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국제식 대대가 아닌 중대 기준이지만 1년 만에 30점을 놓을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프로당구 선수 김임권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축구와 달리 당구장을 들락거리니까 부모님은 물론 두 형님한테 혼나기 일쑤였죠. 그렇게 틈틈이 당구를 즐겨왔지만 눈 부상 후 재활 기간에 달리 할 것도 없고 심심해지자 당구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전북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어요. 물론 정식 대회가 아니라 중대에서 치러지는 경기였지만요."

이때만 해도 그에게 당구는 취미일 뿐이었다. 김임권은 스키와 관련된 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건축학도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레저스포츠학과로 편입했다. 스포츠를 워낙 좋아해 진로를 바꾼 것이다. 졸업 후에는 마침 큰형이 스키용품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밑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스키 강사를 맡았고 스키용품을 취급하는 일도 배웠습니다. 여름에는 수상스키장에서 일을 했고요. 레저스포츠학과로 전공을 바꾼 것이 큰 도움이 됐죠."

전북을 대표하는 '당구 3인방'
최원준·이상대 선수와 '도원결의'

김임권은 최원준·이상대(웰컴저축은행) 선수와 함께 전북을 대표하는 '3인방'이다. 전주를 기반으로 김임권이 본격적으로 당구장을 출입할 때 자주 어울리던 이들이 그 두 사람이다. 나이 순으로 보면 최원준이 맏형이고 이상대가 막내다. 성격도 잘 맞아 자주 어울렸던 3인방은 날을 새면서까지 당구를 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실력으로 보면 이미 선수 생활을 하던 원준이형과 상대가 훨씬 윗길이었죠. 당시에는 제가 당구 실력을 쌓기 위해 자주 물어보고 배우던 시절이었습니다. 두 사람한테 덕을 많이 본 셈이죠. 원준이형은 시원시원한 스타일이고 상대는 아주 꼼꼼했어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장점을 동시에 습득하게 됐죠."

기억력이 남다른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상대방의 기술을 기억했다가 자신의 기술로 잘 녹이는 편이었다. 지금의 실력은 독학으로 터득했지만 따지고 보면 최원준과 이상대를 통해 본격적으로 당구에 눈이 뜨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이상대가 여러 차례 권유한 탓이다.

"처음에는 그 권유를 귓등으로 흘렸죠. 당구로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같이 당구를 치면서 실력이 늘어나자 마음이 흔들리더라고요. 고민을 거듭하다가 당구장 매니저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구를 진지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선수 생활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죠."

김임권은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해 마지막 관문으로 고(故) 김경률 선수를 찾아갔다. 당시 국내 랭킹 1위 선수의 벽을 직접 겪어보고 나서 판단을 하자는 취지였다. 전주에 머물렀던 그는 기차에 몸을 싣고 김경률을 찾아갔다.

"김경률 선수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면 선수로 등록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무작정 경기도 일산까지 찾아가 김경률 선수와 두 차례 경기를 해봤죠. 물론 두 경기 모두 패했지만 절망을 느낄 정도로 벽이 높은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래서 선수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프로당구 선수 김임권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하지만 선수의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시합을 거듭할수록 스스로 부족한 점을 깨달았다. 시합 경험, 경기 운영, 노하우, 테크닉 등 모든 면에서 실력 차이를 절감했던 것이다. 대한당구연맹 시절 그의 최고 성적은 8강이었다. 순위도 30~40위권 대에서 머물렀다. 한 마디로 '그저 그런' 선수 시절이었다.

"PBA가 출범하자 자연스럽게 원준이형과 상대와 함께 프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원준이형은 선수를 그만둔 상황이었는데 프로 리그가 열린다고 하자 다시 큐를 잡았고 상대나 저는 굳이 안 할 이유도 없었어요. 그러던 참에 원준이형이 개인전 우승까지 차지해 내 일처럼 기뻐하면서 자신감이 충만하기도 했죠."

문제는 서바이벌 방식의 예선전이었다. 4명의 선수가 돌아가면서 치는 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예선 탈락을 거듭했다.

"일 대 일로 맞붙으면 경기를 운영하면서 견제를 할 수 있고 언제든지 만회를 할 기회가 오기 마련인데 4명이 번갈아 치는 서바이벌 방식은 전혀 달랐어요. 다른 선수들보다 적응하는 데 애를 먹은 편이었죠. 저한테는 서바이벌 예선이 난공불락이었습니다."

결혼까지 한 마당에 성적을 내지 못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당구장 매니저와 손님의 인연으로 만난 아내와는 14살 차이가 난다. 묵묵히 내조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기가 점점 민망해졌다. 프로 입문할 때 이미 그의 나이는 마흔을 목전에 둔 서른아홉이었다. 곧 40대 중반을 앞둔 처지여서 생계에 대한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함께 고민이 깊었습니다. 선수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생계 수단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사실 거의 그만두기 직전이었죠. 그래서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으로 2022년 새해 벽두에 삭발을 했어요. 결의를 다지기보다는 그냥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던 거죠."

생계 문제로 고민하다 삭발 투혼
쿠드롱과의 결승 이후 잠재력 폭발

삭발로 자극이 된 것일까. 아니면 서바이벌 예선이 사라지고 128강전부터 개인전 예선으로 바뀐 방식에 덕을 본 것일까.

김임권은 그해 3월 열린 '웰컴저축은행 웰빙PBA챔피언십' 대회에서 예상하지 못한 파란을 일으켰다. 파죽지세의 기세로 결승까지 치고 올라간 '무명의 반란'이었다. 결승전 상대는 PBA의 절대강자인 쿠드롱 선수. 가히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 해도 무방했다.

프로당구 선수 김임권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하지만 그는 예상과 달리 쿠드롱과 맞대결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명승부를 연출했다. 당구 황제와의 결승전이라 긴장한 채 주눅이 들 법한 데도 그는 거침이 없었다. 풀세트 접전 끝에 4대 3으로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면서 그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쿠드롱이라는 거함을 마주하면서도 매서운 눈빛을 발산하면서 예리하고 화려한 공격을 이어가자 당구 팬들은 환호했다.

"결승 상대가 쿠드롱이라 왜 부담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경기를 하자는 것이 평소 제 스타일이어서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가짐 덕분에 2세트까지 먼저 따내 치고 나가자 갑자기 쿠드롱 선수가 경기 템포를 빠르게 전환하면서 흔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3세트에는 15대 0으로 완패했죠. 이후에도 쿠드롱의 흔들기에 알면서도 휘둘리며 리듬을 잃기 시작했고 그 작은 차이가 결국 승부를 결정지은 겁니다."

쿠드롱과의 결승 이후 자신감을 되찾은 김임권은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했다. 곧이어 TS샴푸-푸라닭 히어로즈에 발탁돼 꿈에 그리던 팀리그에서 활약했다.

"사실 쿠드롱과의 결승전 직후 대회 스폰서였던 웰컴저축은행의 김대웅 구단주께서 '나중에 우리 팀으로 와야겠다'고 덕담을 해주셨어요. 그러던 차에 팀리그에서 활동할 기회가 찾아와 너무 기쁠 수밖에요."

김 구단주의 러브콜은 결국 현실이 됐다. 지난 6월 TS샴푸-푸라닭 히어로즈를 인수한 하이원리조트가 팀 재편을 위해 기존 선수들을 방출하자 김 구단주가 흔쾌히 김임권을 선택한 것이다.

"비록 쿠드롱 선수가 빠졌지만 웰컴저축은행 팀원들과의 호흡이 잘 맞아서 기대가 커요. 그리고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우승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이루면 앞으로 팀리그에도 코치나 감독이 도입될 것에 대비해 미리 준비를 갖추려고 해요. 그래서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스포츠심리학 공부도 틈틈이 할 예정입니다."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김임권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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