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증막 더위 어떻게 버티긴요, 호텔로 수족관으로 도망가면 되죠[다른 삶]

기자 2023. 9. 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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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라이프 | 뜨거운 아부다비 여름나기
올여름 최고기온 49도를 기록한 아부다비. 모래 폭풍마저 불어닥치면 희뿌연 한증막이 따로 없다(왼쪽 사진). 이곳 사람들은 아쿠아리움이나 몰같이 냉방시설이 완비된 실내에서 여름을 보낸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기록된 가장 더운 날의 기온은 내륙에 위치한 알 아인(Al Ain)에서 측정된 2002년의 52.1도이다. 그러나 최근 지구 열대화의 시대가 도래하여 해안가에 있는 이곳 아부다비마저 어느덧 최고기온 49도를 기록했고 습도마저 80%를 넘나들고 있다. 덥다 덥다 했지만 올해는 정말 덥다. 고작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까지 걸어만 가도 어느새 인중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그뿐이랴. 한 번씩 불어닥치는 모래 폭풍 탓에 오랜만에 맘먹고 한 세차는 며칠 만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시동을 켜자마자 에어컨을 세게 틀고 앞 와이퍼를 작동하면 길게 뭉쳐진 시커먼 모래 먼지가 우수수 밀려 떨어진다. 희뿌연 한증막 안에 갇혀 지내는 느낌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여름을 대체 어떻게 지내는 걸까?’ 나의 첫 여름은 온통 이 물음으로 가득했다.

아부다비의 살인적인 더위를 피하는 나름의 강구책으로 학교는 1교시를 오전 8시에 시작한다. 등굣길은 밤새 열기가 식어 그나마 걸어 다닐 만하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공포의 오후 3시 하교 시간에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온갖 더위 방지용품(얼음이 들어간 쿨링 목걸이, 선풍기, 챙이 넓은 모자, 선글라스)으로 중무장을 하고 비장하게 걸어 나간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현지인 엄마들의 차림은 나와는 사뭇 다르다. 기다랗고 새까만 아바야를 휘날리며 우아한 걸음걸이로 걸어온다. 내 목에 걸린 얼음 목걸이를 가리키며 “그런 신기한 건 또 어디서 났어? 한국?”이라고 묻는다. 나는 “응. 한국산이 냉감이 오래가서 좋아”라고 입방정을 떨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마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제는 얼음조끼라도 사 입고 다녀야 하나 생각했다.

최고 49도·습도 80%에 모래 폭풍
외국인 근로자, 자국서 휴가 보내
원주민은 타국 세컨드하우스 여행
3학기로 나뉘는 학교, 총 6번 방학
데이케이션·캠프·몰 피서 인기
월 20만원짜리 호텔 구독 상품도
‘냉방 빵빵’ 두바이 관광 수요 증가
전쟁 제재로 러시아인 방문도 급증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엄마들의 수다 주제는 어디서 무얼 하며 보낼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작년까지는 코로나 팬데믹의 두려움에 영락없이 갇혀 지내야 했지만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올해부터는 스멀스멀 고국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간 밀린 건강검진도 해야 하고 가족과 친구들도 만나고 싶다. 무엇보다 등산 후 들이켜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그간 쌓인 타지 생활의 서러움을 씻어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올해는 혼자 남겨질 남편의 건강 문제로 인해 아쉽게도 한국행을 접어야 했다. 길고 긴 여름을 아부다비에서 보낸다는 나의 사연에 모두들 “진심이야? 올해는 진짜 덥대”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는 것을 보아 현지인들도 덥긴 매한가지인가 보다.

아부다비 사람들이 이 여름을 나는 최고의 방법은 ‘도망’이다. 많은 수의 외국인들은 이 기간에 자국행을 택한다. 노동법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UAE의 대다수 기업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연 1회 자국 왕복행 티켓을 제공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1년간의 휴가를 아껴 모아 이 기간에 몰아 쓰기도 하고 일부 복지가 좋은 기업들은 재택근무로 인정하기도 한다. 인도, 이집트, 그리고 유럽 친구들이 그렇게 기나긴 여행길에 올랐다. 그렇다면 UAE가 고향인 사람들은 어떻게 여름을 보낼까? 그들도 마찬가지로 긴 휴가를 택한다. 에미라티(Emirati) 친구는 런던에 세컨드하우스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여름이 오면 가족 모두를 데리고 영국 두 달 살이를 하러 떠난다.

나의 아부다비 잔류에 깊은 유감을 표한 그녀들은 이곳의 살인적인 여름을 버틸 수 있는 몇 가지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갔다.

첫 번째는 호텔과 리조트에서 보내는 ‘데이케이션(Daycation)’이다.

UAE 전역에는 1000개 이상의 호텔이 있고 그중 5성급 호텔이 300개를 넘는다. 특히 관광 천국인 두바이는 밀집된 도시 안에 한 집 걸러 한 집이 호텔일 정도로 다채로운 선택지가 있으며 그들은 제각기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부대시설을 가지고 있다. 그 부대시설만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데이케이션이라 부른다.

호텔 입장에서도 어차피 치러야 할 유지비를 충당하며 식음료점에서의 추가 매출 또한 기대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 할 수 있겠다. 비용은 하루에 약 6만~10만원대이지만 회원권을 구독하면 한 달에 약 20만원으로 제휴 호텔 전부를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구독료는 변동되며 여름에 한해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한 달 20만원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망설였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워터파크 한 번 다녀올 비용이라 생각하고 구독을 시작했다가 여러모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호텔의 부대시설뿐 아니라 피트니스 클럽, 요가 수업 및 레스토랑과도 제휴를 맺으며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어 훌륭한 야외활동 대체재가 되어주고 있다. 그뿐이랴. 부모가 가입하면 동반 자녀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여름방학을 위한 구세주로는 이만한 게 없다.

두 번째, 방학 기간에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캠프가 마련된다.

한국에는 일 년에 두 번에서 세 번의 방학이 있지만 이곳의 학교들은 이보다 곱절이 되는 방학을 하고 있다. 학기가 3학기로 나뉘며 끝날 때마다 방학이 있고 일주일짜리 중간 방학(Term break)이 있으니 공식적으로 총 6번의 방학이 있는 데다 단축수업을 하는 라마단 기간까지 더해져 이에 대한 부담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미술관, 동물원 그리고 키즈카페 및 호텔 부대시설 등에서 진행되는 캠프가 이 기간의 돌봄과 교육을 담당한다. 캠프는 하루 단위로 참여해 볼 수도 있고 일주일이나 한 달 단위로 다닐 수도 있다. 방학 시작 전,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캠프 전단을 들여다보며 전략을 세우는 것 또한 이 방학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세 번째는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몰(mall)이다.

이미 더위에 이골이 난 UAE에서 몰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이다. 아부다비의 야스(Yas)섬에 위치한 거대한 몰은 쇼핑이나 레스토랑뿐 아니라 페라리 월드와 같은 테마파크를 실내로 이동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최근에는 인근에 최대 규모의 실내 아쿠아리움을 완공했는데 야외 주차장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길목에도 미세하게 물을 분사하고 선풍기를 설치하여 더위가 스며드는 찰나마저 허용하지 않도록 했다.

근처의 호텔들은 숙박 시 이러한 테마파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를 만들어 외부의 고객을 유치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는 연간 회원권을 판매하여 가격 부담감을 낮추는 등 끊임없이 방문을 유도한다.

그래서일까, 올해는 UAE에서 여름은 전통적인 비수기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 같다.

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바이가 평소와 다름없는 관광객 수를 유지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이유는 지난 몇년간 팬데믹 공포로 인해 눌려 있던 관광 수요가 폭발하고, 점차 더워지는 유럽의 날씨 및 하와이의 산불로 인해 피서객들이 두바이를 찾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여름의 두바이에서는 각종 호텔들이 내세우는 가격 할인으로 타 여행지에 비해 저렴하게 휴가를 보낼 수 있다는 혜택까지 더해져 객실 예약률이 80%에 달했다. 이는 작년의 두 배 이상이다.

어쩐지 여름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한산하다 못해 유령 도시같이 느껴지던 이곳이 올해는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기 한번 없이 탔던 테마파크의 놀이기구 앞에 긴 줄이 섰고 새로 생긴 수족관은 발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이뿐만 아니라 야외 수영장에 놓인 수많은 선베드에서는 인스타그램에서나 봤을 법한 러시아의 미남 미녀들이 일광욕과 칵테일을 즐기고 있었다.

두바이를 여름휴가지로 선택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폭염이 덮친 유럽은 아직까지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아 실제로는 더 덥게 느껴진다고 한다. 어차피 덥다면 차라리 냉방시설이 완비되고 야외활동을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두바이의 여름이 훨씬 쾌적하다고 덧붙였다.

여름휴가 기간 두바이를 찾은 관광객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러시아가 가장 많고 인근 아랍 및 아프리카 국가가 약 28%를 차지한다. 그리고 서유럽 및 인도를 넘어 최근에는 브라질 등에서도 관광객이 몰려들어 끊임없는 신규 유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극심한 더위를 견디기 위해 도시 설계 단계부터 모든 시설을 실내에 마련하고 이를 팽창시켜 나아간 UAE 생존전략이 지구에 닥친 재앙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제재를 받는 러시아 사람들이 휴가지로 두바이를 많이 선택한다. 그래서 이제 두바이에서는 어딜 가나 러시아어가 들린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여름의 풍경이 어쩐지 씁쓸하다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조혜임

국내외 기업에서 커뮤니케이터로 일했다. 현재는 남편, 쌍둥이 딸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거주하며 현지의 일상을 글과 그림에 담아 소셜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다.

조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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