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편가르는 대통령과 단식하는 야당 대표

천남수 2023. 9. 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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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8일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이다. 어느새 무더운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는데, 대한민국의 정국은 여전히 혼돈에 빠져있다. 지난 8월 31일, 당대표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이 대표는 민생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일본 핵 오염수 투기 반대 천명 및 국제재판소 제소, 전면적인 국정쇄신과 개각을 요구하면서 이것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무기한 단식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 대표의 단식으로 정국은 한층 격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대선 때 힘을 합쳐서 그야말로 국정 운영권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됐겠나 하는 정말 아찔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혹평을 넘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전임 정부에 대한 역대 대통령의 젊잖은 표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직설적이었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인식의 구체적 근거는 다음의 발언에 담겨있다.

“선거 때 표 좀 얻어보려고 재정을 부풀리고 국채 발행을 해 가지고 재정이 엉망이 되면요, 대외 신인도가 떨어집니다. 밖에서 저 나라 뻔히 사정 아는데 저렇게 국채가 많으면 대한민국 경제에 대해서 해외시장에서 믿지를 않습니다. (중략) 이게 무슨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서 막 벌려 놓은 건지, 그야말로 나라가 정말 거덜이 나기 일보 직전에, 그리고 국가에 정치적 지향점과 지향해야 될 가치는 또 어떠냐,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입니다.” 나라를 거덜 나게 만드는 철 지난 이념을 배격하고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이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에 대해서도 “새가 날아가는 방향은 딱 정해져 있어야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가 힘을 합쳐 발전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방향이 다르면 같이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야당과의 협치 문제도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협치, 협치 하는데 제가 얼마 전에도 얘기했습니다만 새가 날아가는 방향은 딱 정해져 있어야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가 힘을 합쳐 가지고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힘을 합쳐 갖고 성장과 분배를 통해 발전해 나가는 것이지, 이것은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그러는데 뒤로 가겠다고 그러면 그거 안 됩니다.” 보수든 진보든 지향하는 바가 같아야 하는데, 지금의 정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협치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읽힌다.

국민의힘 연찬회에서의 윤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 이어 국민통합위원회 제2기 출범식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발언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최근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는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철거 논란과도 연결된 느낌이다. 바로 이념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겠다는 것. 실제로 윤 대통령의 잇따른 발언과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 등의 논란으로 이미 정국은 이념 논쟁으로 비화했다. 이에 따라 진영 간 공방도 날로 격화되고 있다. 윤 대통령 특유의 일도양단식 어법은 국민여론도 한층 명료하게 편가르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협치보다는 대결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 많다. 그중에는 이념 프레임을 통해 내년 총선을 ‘반일 대 반북’으로 치르는 것 아니냐는 것. 물론 이같은 분석은 일부의 주장이다. 나아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둘러싼 논란은 독립운동 본연의 가치마저 훼손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그의 이념 문제를 넘어, 자유시 참변 당시의 책임론까지 불거지면서 그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야말로 멀쩡한 독립운동가 한 사람을 이 시대가 부관참시하는 꼴이 됐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월 31일 당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연합뉴스)

이런 상황은 결국 야당 대표의 무기한 단식투쟁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투쟁에 대해 검찰 소환을 앞둔 이 대표의 ‘방탄 단식’이라는 비아냥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여론이 어떻게 바뀔지 장담할 수 없다. 그의 단식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하지만 대통령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그동안 피의자인 야당 대표와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기 때문이다. 야당이 스스로 대표를 바꾸지 않는 한 끝까지 버티겠다는 심사로 읽힌다. 이는 정국 경색은 물론, 시급한 민생문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에 의해 정치가 실종된 셈이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도 동의할 수 없다. 단식투쟁으로 현 시국을 타개할 수 있겠는가. 단식은 국민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방식이다. 국민에게 자신은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으니까, 봐 달라는 것인가. 검찰의 서슬이 무서워 스스로 가장 약한 투쟁방식을 택한 것인가. 그럼, 검찰수사를 피하기 위한 ‘방탄 단식’이라는 비난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국회 제1당으로서, 그것도 과반이 넘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그러니까 대통령은 물론 장관까지 국회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단식투쟁은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것이다. 강력한 투쟁 수단이 있음에도 단식을 선택한 것은 스스로 무기력함을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야당에 기대를 걸고 있다. 책임있는 정당으로서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은 기득권을 던지고 결연히 불합리에 맞서는 야당을 필요로 한다. 무기력하게 국민의 동정심에 기대는 정치가 아니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이는 철 지난 전략이다. 불행히도 국민은 ‘편가르는 대통령과 단식하는 야당 대표’와 함께 가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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