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시선으로 자유롭고 우아한 동양화의 재발견
80대 원로·30대 현역 한자리에
한 줌의 빛조차 허용하지 않을 만큼 검은색 물감이 칠해진 광목 위에 백합을 쥔 손이 떠오른다. 이진주의 '하얗고 부드러운'은 작가의 남편 이정배가 직접 배합한 검은색 물감으로 독특한 색감의 칠흑 같은 어둠을 만들어냈다. 맞은편에 걸린 대작 '오목한 노래'는 식물 뿌리처럼 화분에 다리를 넣고 지친 표정으로 아이를 재운 뒤 노래방 마이크를 쥔 여인이 그려져 있다. 화분들과 여인의 모습이 대비되는 구도로 마치 풍경화처럼 자유분방하게 표현됐다.
동양화는 오늘도 변하고, 진화한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과 올해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박생광·박래현의 2인전 등을 통해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흐름 속에 선화랑이 한국 대표 여성 채색화가 6인전 '현실과 환타지를 소요(逍遙)하다'를 연다. 8월 30일부터 10월 14일까지 이숙자(81), 김인옥(68), 유혜경(54), 이영지(44), 이진주(43), 김민주(41)가 채색화로 그려낸 자연 풍경을 소개하는 전시다.
80대부터 30대 작가까지 망라됐지만, 모든 그림은 젊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들이어서다. 전통 채색화를 계승하고 있는 이숙자는 백두산 설경을 그린 '백두산의 새벽'과 3년에 걸쳐 작업한 보리밭을 그린 대작 '청보리 벌판' 등을 선보인다. 김인옥은 작업실을 오가며 바라본 풍경을 담아낸 듯한 '기다림' 연작과 '항금리 가는 길'을 통해 실경이 아닌 상상의 풍경화를 보여준다.
전통적 소요의 개념을 현대적 방식으로 재해석한 유혜경의 채색화는 자연과 도시의 건축물 등을 중첩시켜 시공간이 뒤섞인 풍경화를 보여준다. 쉬거나 놀이를 하는 작은 인물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한지에 수를 놓듯 나무를 표현하는 '영혼의 정원사' 이영지는 폭 5m의 대작 '봄처럼 피어나'로 봄의 정경을 펼쳐 보인다. 이진주는 기억을 소환하는 풍경화를 선보이고, 이상적 자연을 표현하는 김민주는 밀짚모자를 쓴 옷을 벗은 여인들이 산책하고 자전거나 보트를 타기도 하는 모습을 이질적으로 등장시키며 수묵산수화를 재해석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이순 미술평론가(전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는 "근대 수묵산수화를 살펴보면 화가, 그림 속 인물, 감상자들이 대부분 남성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여성 채색화가들의 자연 풍경화는 전통을 비틀기라도 하듯이 여성적 시각이 내재됐다"고 설명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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