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사이클경주 나간다면 누가 우승할까

김지한 기자(hanspo@mk.co.kr) 2023. 9. 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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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파스칼·니체 등
경주 대결이라는 상상력 통해
어려운 철학 흥미롭게 다뤄
사이클을 탄 소크라테스 기욤 마르탱 지음, 류재화 옮김 나무옆의자 펴냄, 1만7800원

지난 7월 23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2023 투르 드 프랑스 경주가 끝난 뒤, 2위를 차지한 슬로베니아의 타데이 포카차르는 "우리는 아름다운 스포츠 경기를 하고 있다. 서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인다"고 말했다. 2년 연속 덴마크의 요나스 빙예고르에게 밀려 준우승한 아쉬움이 컸지만, 그는 3주 동안 이어진 자신의 레이스를 만족스럽게 돌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매년 7월 프랑스와 인접한 국가의 들판과 산맥에서는 수백 명이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약 3500㎞를 달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경쟁자뿐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넘으려는 선수들 도전은 숱한 스토리를 낳고 역사를 만들어갔다. 이 대회가 바로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 도로 경주 대회 투르 드 프랑스다.

그런데 투르 드 프랑스에 철학자들이 출전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지만 프랑스 출신 저자 기욤 마르탱은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 투르 드 프랑스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파스칼, 니체, 스피노자 등이 도로 사이클에서 경쟁하는 판타지를 더했다. 이 책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투르 드 프랑스의 21개 구간을 넘으면서 갖게 되는 선수들의 경쟁심리에 철학자들의 사상과 개념을 접목해 일상에서 어려울 법한 철학을 흥미롭게 다뤘다.

저자는 학업과 사이클을 병행하면서 각 분야에서 탄탄한 이력을 쌓았다. 중학생 때부터 철학에 심취해 프랑스 낭테르대에서 니체 철학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2016년부터 프로 사이클 선수로 활약 중이고 올해 투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 10위에 올라 더욱 주목받았다. 프랑스어로 자전거를 뜻하는 벨로(velo)와 철학자(philosophe)를 합쳐 스스로를 '벨로조프'라 부르는 그는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스포츠에 대해, 스포츠 애호가들에게는 철학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선수로 나선 철학자들의 장면 묘사가 실제로 참가한 선수처럼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리스-라틴 팀을 이끄는 선수로 묘사된 소크라테스는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팀에 돌아와서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또 플라톤은 강렬한 힘으로 바퀴를 굴리면서 자전거의 본질과 이데아에 닿는 기분을 느낀다. 파스칼은 공허함에 대항하려 사력을 다하고, 마르크스는 자전거 노동자들에게 단결을 촉구한다. 타임트라이얼, 펠로톤, 브레이크 어웨이 같은 사이클 용어는 철학 용어처럼 읽힌다.

위트 넘치는 철학적 판타지를 통해 머리(철학)와 두 다리(스포츠)가 결코 분리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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