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과거사' 간토 조선인 대학살 100주기…日 곳곳서 추모 행사
"대지진으로 죽은 사람과 유언비어로 학살된 사람을 동일시해도 되겠나"
(도쿄=뉴스1) 권진영 기자 = 1923년 9월1일,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간토(관동)대지진이 100주기를 맞았다. 일본 도쿄 곳곳에서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도쿄 스미다구(区) 요코아미쵸 공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 식전이 열렸다. 대지진 이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로 살해당한 이들의 역사와 학살을 고발한 이들에 관한 내용이 패널 형식으로 전시됐다.
추도 식전을 기획한 미야카와 야스히코 일조협회도쿄도연합회 회장은 "유언비어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절대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7년 연속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추도문을 보내지 않은 것과 관련해 "도지사는 일을 두 번 하는 것이 되니까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지만 대지진으로 죽은 사람과 유언비어로 사람에게 학살된 사람을 동일시해도 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미야카와 회장은 "부끄러운 역사를 배우고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도지사(를 해도) 괜찮겠느냐"고 했다.
같은 공원에 마련된 위령당에는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법요가 열렸다. 해당 대법요는 조선인뿐만 아니라 간토대지진으로 숨진 모든 희생자를 기리는 의식이다.
유족대표 고세키(51) 씨는 "조부모가 돌아가셨다면 나도 없었을 것이다. 생존하게 된 것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린지 도쿄도 부지사는 "간토대진재로부터 100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우리 한명 한명이 방재 의식을 높여야 한다"며 고이케 유리코 지사의 추도사를 대신 읽었다. 일본 왕실에서는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왕세제 부부가 참석했다.
도쿄국제포럼에서는 재일 한국인 단체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주일 대한민국 대사관이 주최한 '제100주년 관동대진재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이 열렸다.
추도가를 맡은 장사익 씨는 '봄날은 간다'와 '아리랑'을 열창했다. 대지진이 발생한 오전 11시58분에는 참석자 전원이 묵념했다.
윤덕민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와 이수원 민단 도쿄본부 단장, 한·일의원연맹 회장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당수, 일한의원연맹 간사장 다케다 료타 자민당 중의원 등 400명에 가까운 이들이 자리했다.
이수원 단장은 추념사를 통해 "우리 도쿄 재일동표에게 있어서 1923년 9월 관동대진재로 인한 비참한 수난의 역사는 절대 있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 내각부 중앙방재회의가 작성한 보고서에 "과거의 반성과 민족차별 해소 노력이 필요한 것은 다시 확인한다"고 명기돼 있다며 "평화, 자유민주주의, 인권 존중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 이상과 이념을 추구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덕민 주일대사는 "희생된 한국인의 정확한 수는 아직까지 확인되고 있지 않다. 숫자를 떠나 관동 대지진 당시 한국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러한 불행한 과거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지진 후 한국인을 살해한 죄로 367명의 일본인이 기소됐다는 기록과 함께 한국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해 준 분들도 계셨다며 "상처의 기억을 치유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에서는 건물 붕괴, 화재 등 잇따르는 2차 재해 혼란 속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며 많은 조선인이 학살됐다. 자경단은 조선인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10엔 50전(쥬엔고짓센)'이라는 말을 따라 해 보라고 한 다음, 발음이 일본인과 다르면 살해했다. 대학살 희생자는 지진 재해로 인한 사망 실종자인 10만5000명의 1%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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