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령의 말이 사실로 밝혀진다면[취재 후]
정부를 상대로 싸운다는 건 힘겨운 일이다. 조직은 거대하고 그 힘은 막강하다. 사건을 만들 수도, 지울 수도 있을 만큼. “집단 린치에 가까운”(군인권센터) 조치로 상대를 옥죄며, ‘진실’이라는 창과 방패도 무력화할 수 있다.
최근 해병대원의 사망 원인을 조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국방부를 상대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박 대령은 조사 결과를 축소하라는 취지의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방부는 전면 부인한다. 국방부 검찰단은 외려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수사 중이다. 지난 8월 30일에는 박 대령의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외압과 항명 사이에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이 존재한다. 진실을 가릴 수 있는 핵심 인물이다. 박 대령은 “김 사령관과 함께 국방부의 외압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했다”는 입장이다. 박 대령은 당시 상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 대통령실이 개입한 구체적인 정황도 김 사령관이 언급했다고 박 대령은 주장한다. 그러나 김 사령관은 이를 부인하며 국방부 쪽에 서 있는 모습이다.
박 대령과 국방부, 한쪽은 완벽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핵심적인 사실관계를 두고 양쪽이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접점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박 대령이 주장하는 사흘간의 긴박했던 ‘서사’를 단순 거짓이라고 하기에는 무리라는 평가가 많다. 개연성 등 짜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심증의 영역에서도 한 가지 짚을 점이 있다. 박 대령이 이처럼 대통령실까지 연루된 ‘거대한 거짓’을 지어냄으로써 어떤 이득을 보려는 것일까. 그럴 이유가 있을까. 박 대령은 지난 8월 11일 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 항명 혐의를 부인하며 육군사관학교에 재직 중인 자기 아들 얘기도 꺼냈다. 본인의 결백에 아들의 명예까지 건 셈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박 대령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국방부는 잃을 게 많다. 국방부를 넘어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을 만큼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다. 이 점만은 분명하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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