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당장은 안전? 느리다고 폭력 참을까
내부피폭·저선량 피폭도 암 발생 불러
지난 8월 24일 오후 1시 3분, 일본이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원전 폭발사고 오염수를 장기간 바다로 쏟아붓는 것은 인류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민 10명 중 8명은 반대(한국일보-요미우리 공동 여론조사, 2023년 6월)하는 일본 오염수 방류를 두고 한덕수 국무총리는 8월 24일 대국민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때문에 우리 바다가 오염될 거라는 근거 없는 선동으로 수산업이 위협받고 있다.” 방류 시작 나흘 뒤 윤석열 대통령은 오염수 방류에 비판적인 이들을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며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했다. 현 정권의 말대로라면 국민 10명 중 8명은 비과학적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오염수 방류는 당장 우리의 삶을 흔들 정도로 급격한 충격을 몰고 오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1993년까지 영국, 미국,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등은 이미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린 전적이 있고, 구소련은 심지어 동해에 버렸다.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 직후, 그리고 이후 2년간 방사성물질을 머금은 일부 오염수는 이미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그후 아직 우리의 눈앞에 충격적인 사건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찬성 측에서는 이점을 들어 “방사능 쓰레기를 바다에 더 버려도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보이지는 않을지언정 바다가 파괴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핵폐기물 투기 관행 때문에 전 세계 어디서 바닷물을 떠도 플루토늄이 떠다닌다”고 말한다. 이미 저지른 오염 위에 또 다른 오염이 수없이 축적될 때 생태계에 어떤 영향이 초래될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롭 닉슨 프린스턴대 교수는 “즉각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지만 점점 불어나고 축적되는”, “서서히 펼쳐지는 환경재앙”을 ‘느린 폭력’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에코리브르).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일종의 ‘느린 폭력’이다.
일본의 계획대로라면 원전사고 오염수 방류는 30~40년간 계속된다. 느린 폭력이 수십 년간 끝없이 이어질 때 바다와 해양생태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이것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며, 피해를 보는 이들은 누구인가. 우리가 이런 폭력을 “당장은 안전하다”며 감당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부피폭, 저선량 피폭은 피폭이 아닌가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보는 이들이 주로 내세우는 근거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다. 일본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탱크 1000여개에 담겨 있는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알프스·ALPS)로 정화한 후 바닷물로 희석해 배출할 계획을 세우고 IAEA에 검증을 요청한 바 있다. IAEA는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물질이 인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는 결론을 내렸다.
IAEA는 인체의 방사성물질 노출 허용량이 연간 1밀리시버트(m㏜)라면서 희석된 오염수에서 나오는 방사선량은 연간 0.00002~0.00003밀리시버트라고 봤다. ‘이 정도는 피폭돼도 된다’고 정해진 피폭 허용치를 한참 밑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피폭 허용치’라는 것은 과연 믿을 만할까? 이 기준치를 제시해온 과학자집단인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실은 ‘내부피폭’과 ‘저선량 피폭’의 심각성을 외면해왔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일본 학자인 나카가와 야스오가 쓴 <방사선 피폭의 역사>(무명인·2020년 국내 번역 출간)가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대표적인 책이다. 내부피폭은 음식 등을 통해 방사성물질이 체내 유입돼 피폭되는 것을 말하고, 저선량 피폭은 오랜 시간 낮은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돼 피폭되는 것을 말한다. 나카가와 야스오는 이 책에서 ICRP가 피폭의 인체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수행하는 복잡한 계산은 내부피폭과 저선량 피폭의 위험성을 축소하는 “사실상 속임수”라고 말한다. 이 책엔 내부피폭의 위험성을 알게 된 칼 모건이라는 핵 과학자가, 내부피폭을 무시하려는 ICRP 관련 위원회에서 물러난 사례도 언급된다. 훗날 칼 모건은 <성난 램프의 요정>(The angry gienie)이라는 책을 통해 ICRP가 핵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폭로한다.
반핵의사회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도 최근 발간한 <후쿠시마 오염수와 한국 정부 괴담>이란 온라인 책자에서 “방사능엔 안전치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미국 국립학술원의 <저선량 방사능의 건강위험에 관한 보고서>(2006)를 요약한 바에 따르면 100밀리시버트에 한번 노출되면 100명 중 1명의 암환자가 추가로 발생하고, 10밀리시버트에선 1000명 중 1명의 암환자가, 1밀리시버트에선 1만명 중 1명의 암환자가 추가로 발생한다. 노출에 비례해 위험이 커지고, 위험이 없는 ‘안전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반핵의사회와 인의협은 말한다. “암 발생 확률을 개인적으로 따진다면 1만분의 1이나 10만분의 1은 별것 아닌 확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보면 성인 1000만명이 매년 단순 엑스레이를 찍으면 매년 100명의 암환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니 작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에 방사선 검사의 위험을 감수한다. 훗날 알프스로도 거르지 못한 방사성물질로 인해 80억 인구 가운데 단 몇백명이라도 심각한 질병에 걸린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들의 건강 파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까. 게다가 그들의 피해는 장시간에 걸친 ‘느린 폭력’의 속성상 과학적으로 규명하기조차 까다로울 가능성이 높다.
오염수는 윤리의 문제다
“과학 대 미신의 대결이다.”(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 “국민을 지키는 건 선동이 아니고 과학이다.”(대통령실 관계자) 일본 도쿄전력의 오염수 방류를 두고 정부는 여러 차례 ‘과학’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염수를 “과학적으로 처리된 오염수”(한덕수 국무총리)로 봐야 한다는 입장까지 나왔다.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에 동원되는 ‘과학’에 대해 물리학자인 이종필 건국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이라는 단어가 어떤 물질이 기준치 이하라서 괜찮다는 의미로 쓴 거라면 이는 ‘과학적’이라는 본래 의미의 극히 일부만 참칭한 것에 가깝다. (중략) 일본의 그런 주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그 과정과 결과가 임의의 제3자에 의해 검증되고 재현 가능한 것인지 따져봐야 비로소 과학적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 있다.”(이종필,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주장이 ‘과학적이지 못한’ 이유들’)
이 교수는 IAEA가 원전사업자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국제기구이며, 도쿄전력이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과학’의 이름으로 오염수 방류를 정당화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방류 찬성은 ‘과학’이고 반대는 ‘비과학’이란 틀짓기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얘기다.
이처럼 오염수 방류 정당화가 오히려 비과학적이란 지적은 반복돼왔지만, ‘과학이냐 아니냐’의 구도 속에서 반박이 이뤄지는 한 시민들은 방사성물질과 관계된 기술적 쟁점 속에 둘러싸이게 된다. 그리고 기술적 쟁점에 매몰될수록 사안의 본질은 손에 잡기 어려워진다. 이 같은 악순환을 빠져나오기 위한 측면에서도 롭 닉슨의 ‘느린 폭력’ 개념은 유용하다. 폭력이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데 과학적 검증이 필요할까.
“IAEA가 방사능물질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원칙은 생명의 가치를 경제성의 관점으로 바꾸는 철학에 기반해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사회·경제적 이익과 인간의 생명과 건강이라는, 비교 대상이 아닌 것을 비교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손제민 경향신문 논설위원, 녹색평론 183호, ‘방사능 피폭, 누가 어떻게 규정하는가’)
바다를 방사성물질로 서서히 오염시키는 느린 폭력을 우리는 왜 논란 많은 ‘안전성 평가’까지 해가며 감당해야 하는가. 일본 원자력 산업계의 이익, 윤석열 정부가 고집하는 대일외교의 기조, 원전 비중을 대폭 늘리려는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 인간의 생명과 안전이 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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