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고 늦게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불만 잠재울 뾰족수 있나?

천호성 2023. 9. 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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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편 논란]국민연금 재정계산위 보고서 발표
‘더 내고 그대로 받자’ 국민동의 어려워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들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재정계산위를 규탄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이날 공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 관련 보고서를 공개했다. 복지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정부 개혁안이 담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개혁안을 논의 중인 재정계산위원회(재정계산위)가 1일 연 공청회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자고 제안한 배경엔 한국사회의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로 연금 기금이 30여년 뒤 완전히 소진된다는 전망이 깔렸다. 이날 발표된 연금개혁안 보고서의 근거가 된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를 보면, 올해 950조원인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2040년 1754조원으로 최고점에 달한 뒤 2055년 바닥난다. 재정계산위 보고서는 워낙 기금 안정성에 초점을 맞춰 나머지 변수인 보험료, 수급개시 연령, 기금 수익률 변화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짠 탓에 국민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수준을 높이는 데는 눈을 감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025년부터 보험료율 매년 0.6%p↑

재정계산위는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매년 0.6%포인트씩 올리자고 제안했다. 수급 개시 연령은 1998년 연금개혁에 따라 5년마다 1살씩 올라 2033년부턴 65살(현재 63살)로 올라가는데, 재정계산위는 이후에도 68살이 될 때까지 5년마다 1살씩 상향하자고 제안했다.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은 현행 40% 그대로 둔다.

김용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장이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재정계산위 공청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고서는 이런 방식으로 보험료율을 12·15·18%로 올리고, 수급 개시 연령은 66·67·68살로 늦추는 방식을 조합해 각각의 기금 소진 시점을 추산했다. 여기에 연평균 기금 수익률을 제5차 재정 추계의 예상치(4.5%)보다 높은 5.0%·5.5%로 끌어올린다는 가정을 더해 모두 18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보험료율과 기금 수익률이 높을수록 국민연금 재정 수입이 늘고, 수급 개시 연령이 늦을수록 수급자가 줄어 기금이 천천히 소진된다.

우선 보험료율을 12%로 올릴 경우, 수급 개시 연령을 68살까지 늦추고 기금 수익률 5.5%를 달성해도 2080년에는 기금이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보험료율 12%’ 안으로는 재정계산위 목표대로 2093년까지 기금을 남길 수 없는 셈이다. 하지만 보험료율을 15%로, 수급 개시 연령을 68살로 올린 상태에서 기금 수익률이 5.5%이면 2093년에도 그해 지출될 급여보다 8.4배 많은 적립금이 남게 된다. 같은 조건에서 보험료율을 18%까지 올리면 2093년에 쌓일 기금은 그해 보험료의 23.6배에 달한다.

재정계산위는 이 중에서도 ‘보험료율 15%-수급 개시 연령 68살’ 안에 무게를 실었다.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사전설명회에서 “가입자들이 받아들이기에 보험료율 18%는 (현재에 견줘) 너무 높을 것”이라며 “보험료율 15%-수급 개시 연령 68살 시나리오에서는 기금 수익률을 지난 35년간의 평균 실적인 5.11%로만 유지해도 2093년에 기금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는 의무가입 연령을 연금 수급 개시 연령까지 높이는 방안도 담겼다. 지금은 59살까지만 보험료를 내면 국민연금을 타기 전까지는 소득이 있어도 보험료를 낼 의무가 없다. 의무가입 연령이 오르면 연금 수령 직전까지 보험료를 내야 하는 대신, 이후 받는 연금액도 커진다. 김용하 위원장은 “노사 협의로 60살 이후 보험료를 내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업장은 의무가입을 면제하도록 2033년까지 유예기간을 두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또 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현재 국민연금공단 산하 조직인 기금운용본부에서 투자 실무 부문을 떼어내 ‘기금운용공사’(가칭)로 독립시키자는 제안도 나왔다. 보건복지부와 가입자 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민연금정책위원회’가 위험자산 투자비중 등 큰 틀에서의 기금운용 방향을 결정하면,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국내외 주식·채권·부동산 등 투자처 비중을 세부적으로 배분하고, 기금운용공사가 투자 집행 등 기금을 굴리자는 것이다. 기금 운용의 전문성·독립성을 높이고, 기대 수익률이 큰 위험자산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게 보고서 주장이다.

더 내고 그대로 받기, 국민 동의할까

이처럼 연금기금 재정을 안정화하려면 가입자 부담이 늘어난다. 보험료율이 9%인 지금은 월급 300만원인 직장인이 월 소득의 4.5%인 13만5000원(사업자가 절반 부담)을 보험료로 낸다. 보험료율이 15%로 오르면 내야 할 보험료가 22만5000원으로 뛴다. 자영업자처럼 보험료 전액을 자기가 내는 지역가입자(월 소득 300만원 기준) 납입액은 27만원에서 45만원으로 커진다.

보고서 내용처럼 보험료는 크게 올리고 소득대체율 40% 유지에 따라 연금액을 동결하면 가입자에 따라서는 평생 낸 보험료만큼 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재정계산위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수익비(보험료 납입액 대비 연금 수급액 비율)는 나이마다 1.8배∼2.0배인데, 보험료율을 15%로 올리면 수익비는 1.1∼1.2배로 떨어진다. 보험료율이 18%로 증가하면 수익비가 0.9∼1.0배가 돼 국민연금 가입이 손해인 가입자도 생긴다.

이날 공청회 이후 정부 개혁안 확정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제기될 가장 큰 쟁점은 보고서에서 빠진 소득대체율 인상 논란이다. 재정계산위 논의에선 소득대체율 40%→50% 인상안이 격렬한 논쟁 끝에 막판에 빠졌다. 국민연금의 소득보장 기능이 후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한겨레>에 “공적 연금이 은퇴자의 소득을 충분히 메우지 못하면 개인이 퇴직연금·민간보험 등에 가입해 ‘각자도생’으로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며 “이럴 여력이 없는 중산층 이하와 나머지 계층의 노후 소득 격차가 커질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은퇴자들에게 안정적 생활을 보장할 일자리와 노동시장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충분치 않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 기금의 재정안정만을 고려해 수급 개시 연령 등을 높이는 것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재정계산위는 소득대체율 상향 대신 출산·군 복무 등으로 소득이 줄어든 이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해주는 ‘크레딧’ 제도 확대 등을 노후소득 보장 강화 방안으로 제시했다. 출산 크레딧은 현재 둘째 자녀부터 자녀당 12개월씩 최대 50개월을 가입 기간으로 인정해주는데 이를 첫째부터 자녀당 12개월씩 최대 60개월까지 주자는 것이다. 6개월까지만 인정되는 군 복무 크레딧도 전체 복무 기간까지 늘리는 방안도 담았다. 이밖에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하더라도 국가가 연금을 지급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방안, 사망한 가입자의 가입 기간에 차등 되는 유족연금을 원래 연금액의 60%로 통일하는 방안 등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방안들은 연금 가입자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본류가 아닐 뿐더러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힘들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복지부는 재정계산위가 이달 보고서를 제출할 때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포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스란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소득대체율은 유지한 채 보험료율만 인상하면 국민이 수용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며 “(최종 개혁안에는)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위한 소득대체율 조정 관련 내용도 언급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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