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이냐, 경기회복이냐…깊어지는 ECB의 고민
獨·佛 등 유럽 주요 경제대국 일제히 물가 고공행진
추가 긴축 가능성↑… "물가안정 실패보다 경착륙 선호"
경기침체 우려 등 불확실성에 동결 전망도 상존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달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것인지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경기침체 우려가 심화한 가운데, 주요 경제대국들의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서다. 시장에선 당초 금리동결 전망이 우세했지만, 독일, 프랑스 등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이후 금리인상에 좀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로 반전됐다. ECB 위원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유로존 고물가 지속…ECB, 이달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
경제전문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31일(현지시간) 유로존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ECB의 추가 긴축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ECB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선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과 충분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ECB 기준금리는 현재 4.25%이며, 다음 통화정책회의는 오는 14일 개최된다.
ECB 목표를 훌쩍 웃도는 인플레이션이 추가 금리인상을 지지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는 이날 유로존의 8월 CPI가 전년 동기대비 5.3%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5.1%)를 상회한 수치다. 비슷한 시각 나온 프랑스의 이달 CPI 역시 5.7%로 시장 전망치(5.4%)를 상회했다. 프랑스는 유럽 내 경제 규모 2위 국가다. 전날엔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8월 CPI 상승률이 시장 예상(6.3%)보다 높은 6.4%를 기록했다. 유로존 경제 규모 3·4위를 다투는 스페인(2.6%)과 이탈리아(5.5%) 역시 높은 수준의 물가가 확인됐다. 스페인의 경우 수치는 낮지만 3개월 만의 최고치인 데다, 근원물가는 6.1%에 달한다.
이에 ECB가 이달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CB는 지난달까지 9회 연속 금리를 올렸는데, 또 인상할 수 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주요국들의 물가가 높은 것은) ECB의 금리 인상 결정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공개된 ECB의 7월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에서도 긴축 의지가 확인됐다. 상당수 위원들은 “그간 누적된 긴축의 효과가 근원 인플레이션을 낮출 만큼 충분히 강하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면, 9월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부 위원들은 “금리를 충분히 올리지 않는 것보다는 한 번 더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금리동결 전망도 여전…獨 침체 등 불확실성 여전
하지만 금리동결 전망도 여전히 상존한다. 그동안 시장에선 경기침체 우려로 동결 전망이 우세했다. 유로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0.1%), 올해 1분기(0%)를 기록해 기술적 침체에 빠진 뒤 2분기( 0.3%) 반등했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특히 독일의 성장률은 작년 4분기(-0.4%), 올해 1분기(-0.1%), 2분기(0%) 등 아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CB 7월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위원들은 “9월에 업데이트 될 최신 경제·물가 전망에서 인플레이션 경로가 (목표치인) 2%를 향해 충분히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현재 금리 수준이 향후 몇 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긴축적이라는 게 이들 위원의 설명이다.
이사벨 슈나벨 ECB 집행이사도 이날 최근 경제지표와 관련해 “성장 전망이 예상보다 약하다”며 9차례 연속 금리인상 효과가 향후 몇 분기 동안 더 강력하게 나타날 위험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추가 긴축과 관련해선 “기저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높다. 최고 금리가 어느 수준이 될 것인지, 얼마나 오랜 기간 제한적인 금리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지 말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슈나벨 이사가 그동안 매파적(긴축 선호) 입장을 견지해온 만큼 시장은 비둘기파적(완화 선화)인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ECB 총재, 물가안정 실패보단 경착륙 선호”
이런 상황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최근 “인플레이션이 중기 목표인 2%에 적시에 복귀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충분히 제한적인 수준으로 금리를 설정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물가 안정에 실패하는 것보다는 경제적 고통을 수반한 경착륙을 선호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경제의 경착륙이 거의 확실시되는 만큼, 추가 인상보다는 금리 동결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상품 및 서비스 수요가 약화하면 인플레이션도 단기간에 대폭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여서다. 물가 상승이 임금 인상보다 먼저 발생해 제품 가격을 올리면서 당장은 기업들의 이익이 크게 늘었지만, 임금 인상이 실적에 반영되고 침체로 인해 수요가 약화하면 기업 이익도 줄어 제품 가격을 인하할 것이란 설명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충돌 위험을 평가하기 위해선 금리 유지가 나아보이지만, ECB는 이를 확신하지 못하고 금리인상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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