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에게 ‘오염수→처리수’ 용어 변경 물었더니...“맞지만 이미 늦었다”

이병철 기자 2023. 9. 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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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권 용어 공식 변경 가능성 열어 둬
수산업계 “처리수로 부를 것” 與 “오염 처리수로 공식화”
‘처리수’ ‘오염수’ ‘삼중수소 함유 폐수’ ‘ALPS 처리 핵폐수’ 다양하게 불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공식 명칭을 ‘오염 처리수’나 ‘처리수’로 바꾸자는 제안이 일부 정치권과 수산업계에서 제기되면서 용어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은 방류된 오염수를 정화된 ‘처리수’로 공식적으로 부르고 있어 자칫 정부가 공식 명칭을 바꿀 경우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문제에 새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초점을 방사성 핵종을 처리한 과정에 두느냐,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발생한 오염이라는 본질에 두느냐에 따라 전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이 실제 방류에 들어가면서 불가피한 타격을 입은 수산업계가 ‘방류 반대’ 대신 ‘인식 개선’을 선택하면서 용어 문제 해결의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

발단은 ‘오염수’라는 표현이 가지는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국내 수산업계가 불필요한 타격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은 30일 국민의힘 우리바다지키기 검증 태스크포스(TF)가 주관한 ‘수협·급식업계 간 수산물소비 상생 협약식’에서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모든 우리 어업인은 오염수에서 처리수로 명칭을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우리 바다 지키기 검증 태스크포스’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성일종 의원은 “오염 처리수라는 말이 맞는다”며 당 차원에서는 ‘오염 처리수’라는 표현을 공식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신중하면서도 용어 변경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모습이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지난 30일 정부청사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정부는 총체적으로 부를 때는 오염수라고 부르고, 대신 단계별로 상황에 따라 적합한 용어를 쓸 것이라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에서 어떻게 할지 검토하겠다”고 말하며 공식 명칭을 바꿀 가능성을 열어뒀다.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정부 일일 브리핑에 참석해 우리 정부가 실시한 해양 방사능 조사 결과와 수산물 방사능 검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과학계는 ‘처리수’에 방점… 바꾸기엔 늦었다는 분위기

과학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조선비즈가 만난 과학자들은 전반적으로 오염수보다는 처리수가 과학적으로 적절한 표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1세대 과학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는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거쳐서 처리한 뒤에 바닷물과 섞어서 최종적으로 방류하는 건 방류수이기 때문에 이걸 어디에서 잘라서 용어를 만드느냐의 문제”라며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부르려면 오염수의 처리희석방류수라고 보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도 “오염수는 처음 원전 안에서 만들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방류를 위한 기준을 만족한 상태의 물은 처리수라고 부르는 게 개인적으로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며 “오염수를 방류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처리한 상태이기 때문에 기존의 오염수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을 지낸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방사능이 높은 오염수와 ALPS를 거쳐서 방사능이 크게 낮아진 물은 구분지을 필요가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ALPS 처리수라는 명칭이 맞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오염수라는 표현이 여전히 맞는다는 입장도 나왔다. 최무영 서울대 명예교수(물리천문학부)는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상태인 만큼 방사성 오염수라고 부르는 게 맞는다”며 “더 엄밀하게 표현하려면 핵 폐수가 맞는다”고 말했다. 최 명예교수는 복잡계 분야의 전문가이자 물리 용어를 토박이말로 만드는 데 앞장 서고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이야기’와 ‘과학, 세상을 보는 눈’ 등 대중 과학서적을 펴내며 과학과 사회의 소통을 강조하는 석학이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도 오염수가 맞는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밝혔다. 홍 교수는 “처리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실제 오염 처리가 100% 됐는지 여부”라며 “일본에서는 잘 처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논쟁이 있기 때문에 처리수라는 단어는 잠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류되는 물이 실제로 잘 처리되는지 확인한 이후에 오염 처리수라는 용어를 써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오염수와 처리수라는 명칭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런 논의 자체가 너무 늦었다는 데에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했다. 이덕환 명예교수는 “우리가 계속 오염수라는 명칭을 썼는데, 이제와서 이걸 바꾸는 건 발이 느린 것”이라며 “애초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나서서 처리수라는 명칭을 사용하자고 했어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늦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시점에서는 오염수냐 처리수냐 따지는 건 철 지난 이야기”라고 말했다.

◇미국·유럽 ‘처리수’, 중국·러시아 ‘오염수’ 대만 ‘삼중수소 함유 폐수’

해외에서도 오염수에 대한 표현이 국가마다 제각각이다. 대체로 미국과 유럽에선 ‘처리수(treated water)’라는 표현이 일반적이다. 앞서 지난 4월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성명에도 ‘ALPS 처리수(ALPS treated water)’라는 표현이 쓰였다.

반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오염수(核污染水)라는 표현을 쓴다. 북한 역시 외무성 담화에서 ‘핵오염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난 4월 G7 정상회의 발표문에는 ALPS 처리수(ALPS treated water)라는 표현이 사용됐다./G7

대만은 정부 문건에서 ‘삼중수소 함유 폐수(含氚廢水)’라는 보다 구체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다.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역시 ‘ALPS treated nuclear wastewater(ALPS 처리 핵 폐수)’라는 표현을 썼다. ALPS 처리를 넣기는 했지만 깁노적으로 오염수라는 걸 강조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당연히 처리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일본 안에서도 명칭을 놓고 혼선이 있는 분위기다. 노무라 데쓰로 농림수산장관은 지난 31일 기자단에 ‘각 관공서의 대처 상황 또는 오염수에 대한 사후 평가 정보를 교환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가 사과하기도 했다. 처리수 대신 오염수라는 표현을 썼다가 언론과 야당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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