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승진제·법원장 추천제 재판 지연 원인?…김명수 대법원장 “동의 어렵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일선 판사들이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하는 것) 도입을 꼽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신 신임 법관 임용 수 부족 등을 재판 처리 기간이 길어진 주요 원인으로 설명했다.
오는 24일 퇴임하는 김 대법원장은 지난 3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가 원인이 돼서 재판 지연이 됐다는 지적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사가 승진 제도가 있을 때는 성심을 다하고 없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장 추천제와 관련해서도 김 대법원장은 “(법원장이) 추천 통해 됐으니 안면이 받쳐서 재판 독려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지방법원 법관이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지 않으면 사표를 많이 냈는데 지방법원 법관도 (예전에는 고법 부장판사들만 하던 지방법원의)수석부장이나 법원장이 될 기회를 가지게 되니까 역량 있고 훌륭한 분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 되지 않을까 싶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사에서 ‘좋은 재판’을 강조했다. “속도나 처리량에 너무 치중하지 않는지 되돌아”보고 “법과 양심에 따라” “절차와 결과 모두에 수긍하고 감동할 수 있는 충실한 재판”을 제안했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니 재판 처리 기간이 길어졌다. 사법연감을 보면, 민사 1심 합의사건 처리 기간은 2017년 294일에서 2021년 369일로 늘었다.
김 대법원장은 재판이 늦어지는 원인으로 “매년 신임법관을 예상보다 적게 뽑아 법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판 기능이 제한적이었다는 점도 들었다. 그러면서 “민사 단독 관할 확대에 따른 재판부 증설 효과가 가시화하는 등 사건 처리 역량이 정상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장 임기 6년을 되돌아보며 김 대법원장은 “‘첩첩산중’(여러 산이 겹친 산속)이었지만 ‘오리무중(짙은 안갯속)’은 아니었다. 갈 방향은 가지고 갔다고 생각한다”며 “큰 성과를 냈다고 하긴 어렵지만, ‘불면불휴(자지도 쉬지도 않는다)’하며 ‘우공이산(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이룬다)’의 마음으로 일했다”고 돌아봤다.
특히 “사법부의 신뢰는 민주적인 사법행정에서도 나오겠지만, 근본 토양은 재판”이라며 “어떤 판결을 했느냐가 그 대법원을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미 있는 판결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판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인 판결, 장남이 아니어도 제사를 주재할 수 있다는 판결 등을 거론하며 “나름대로 재판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판결이라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김명수 대법원은 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113건 내놨다.
사법농단과 관련한 ‘거짓 해명 논란’과 관련해 김 대법원장은 퇴임 후 “검찰 수사가 정당한 절차로 진행되면 당연히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2020년 5월22일 임성근 전 부장판사와의 면담에서 국회의 탄핵안의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사표 수리 요청을 반려한 사실이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은 전면 부인했지만 임 전 부장판사 쪽이 당시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국민의힘이 김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고발해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당시 제가 여러 불찰로 인해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지금도 여전히 송구하다는 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퇴임 후 생활과 관련해서는 “정말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고 싶다”며 “변호사는 안 할 것”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오는 24일 임기를 마친다. 이균용 새 대법원장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다. 대법원장은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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