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쇼윈도가 아트페어 갤러리로… 발달장애 작가들이 그린 멸종위기 자생 식물[전승훈의 아트로드]
아트페어는 강남 코엑스(KOEX), 부산 벡스코(BEXCO)같은 전시장이나 호텔, 미술관 등에서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올해는 신라호텔에서 처음으로 호텔아트페어가 열려서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런데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코리아(Lush Korea)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전국의 매장 쇼윈도에서 아트페어를 열었다.
러시 아트페어는 매장을 갤러리 해석한 화장품 업계 최초의 아트페어란 점에서 특이하다. 그것도 일반 화가가 아닌 발달장애인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LUSH는 지난해에는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그린 그림이 주제인 ‘동물, 자연, 사람’ 전시회를 했는데, 발달장애인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디테일한 표현이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았다.
올해 지난 8월 17일부터 31일까지 전국 18개 매장에서 열린 ‘제2회 러쉬 아트페어’는 기후변화로 사라지는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전시됐다. 작품 전시에 참여한 발달장애 예술가는 모두 50명.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타이틀로 우리 땅에 사라지는 식물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시회다.
전국 각지에 살고 있는 발달장애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수목원에 방문해 관찰하고 느낀 감정을 작품에 온전히 담아냈다. 발달장애 예술가들은 경기 포천의 국립수목원 뿐 아니라 세종수목원, 서울식물원, 부산 해운대수목원, 용인 한택식물원, 대전 한밭수목원, 태안 천리포수목원, 제주 서귀포 여미지식물원 등에서 멸종위기종 자생식물을 감상하고 개성있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민서 작가가 그린 ‘주걱댕강나무’는 밥주걱 같기도 하고, 종모양 같기도 한 꽃이 5월 초순부터 가지마다 가득 피어나 나무를 뒤덮는다. 국내에선 2003년에 경남 양산시 천성산의 사면 바위지대에서 발견됐다.
황성제 작가가 그린 땅나리는 제주나 부산의 해안가에서 땅을 보고 자라는 키작은 백합과 식물이다. 6월 중순이면 제주의 북쪽 바닷가에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한라산 중턱에서는 8월까지도 볼 수 있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것은 키가 작아 30cm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산지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은 어른의 가슴까지 오는 것도 있다고 한다.
러쉬 아트페어에 2년 연속 참여한 황성제 작가는 “이번 아트페어를 통해 사람들이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라고 소감을 밝히는 등 남다른 독창성, 상상력을 가진 이들이 기회 편중과 차별에서 벗어나 더 많은 기회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양예준 작가가 그린 ‘대청부채꽃’은 지난 1983년 인천 대청도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인근 백령도에도 약간 있지만 대청도에 주로 자생해 대청도를 상징하는 꽃이다. 개체 수가 적어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한 법정 보호종이다. 해변 절벽 끝이나 주변 수풀 속 어딘가에 그 모습을 숨기고 제 모습을 뽐내듯 흩어져 있어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또한 아트페어 종료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자생 식물들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산림청 산하 수목원과 협업하여 특별전도 이어진다. 전국 매장에서 전시된 모든 작품을 한데 모아 9월8일부터 5일간 국립수목원 내 산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특별전이 이어진다.
최영태 국립수목원장은 “자생식물의 중요성을 알리는 발달장애 예술가의 기후 행동 메시지가 모두에게 전달되기 바란다”라며 “지속적인 민관협업을 통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수목원⋅식물원의 보전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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