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곳곳이 위험...범죄 사각지대 놓인 ‘둘레길·공용화장실·편의점’

이학준 기자 2023. 9. 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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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곳곳 범죄 취약점 드러나
남녀 공용화장실, 편의점도 범죄 예방 조치 미흡
전문가들 “환경 개선 필요”

지난 30일 오후 찾은 서울 은평구의 둘레길 7코스 봉산 등산로. 비슷한 환경인 관악 둘레길에서 강간 살해 사건이 발생한 지 2주 가까이 지났지만 흉악범죄에 대비한 안전장치는 여전히 마련돼 있지 않았다.

등산로 초입에서 40분 동안 걸어봐도 폐쇄회로(CC)TV는커녕 비상벨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등산로 옆 외진 소로길에는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건장한 남성이 숨어있기 좋을 정도로 나뭇가지와 나무덤불들이 가득했다. 길을 밝혀줄 만한 조명도 없었다. “CCTV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관악 둘레길을) 범행 장소로 정했다”던 최윤종(30)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같은 범죄가 발생하기 딱 좋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만난 연모(46)씨는 “CCTV가 더 자주 설치되면 좋겠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면서도 “CCTV가 아니더라도 최근 발생한 흉악범죄를 고려해 별도의 안전시설이 구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잇따른 흉악범죄에 경찰이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 지 이날로 28일째다. 하지만 여전히 ‘범죄 사각지대’에 놓인 장소는 일상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관리되지 않은 건물·도로·공원 등 일상 환경이 범죄를 용이하게 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개선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경찰력 중심의 안전조치도 중요하지만,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환경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30일 찾은 서울둘레길7코스가 시작되는 봉산은 등산로 초입을 제외하고는 CCTV나 비상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등산로 옆 소로길은 신림동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관악산 생태공원 둘레길과 유사한 모습이었다./전병수 기자

◇강남역 살인사건 7년, 유흥가는 아직도 ‘공용화장실’ 천지

2016년 5월 김성민(41)이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여성 하모(23)씨를 칼로 찔러 살해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7년이 지났다. 하지만 공용화장실 문제는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사건 당시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유흥가 인근에서 남성과 여성이 같은 영역에 머물도록 만드는 공용화장실 환경을 개선해야 관련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조언이 끊이지 않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지난 29일 신논현역 인근 유흥가 건물 1층에 자리한 남녀 공용화장실 내부. 남성과 여성이 볼일을 보는 구역만 구분돼 있을 뿐 잠금장치, 비상벨 등 안전 장치는 미흡한 상태다./전병수 기자

지난 29일 오후 8시쯤 서울 지하철 신논현역 인근 유흥가 건물 1층에는 외부인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공용화장실이 있었다. 출입문 잠금장치는 방전돼 무용지물이었다. 내부에는 남성과 여성이 볼일을 보기 위해 이용하는 변기 칸만 간신히 나누어져 있었다. 그마저도 문 위 공간이 넓게 뚫려 있어 불법촬영 범죄에도 취약했다. 변기 칸을 가리는 문도 성인 남성이라면 가뿐히 힘으로 열어버릴 수 있는 수준의 잠금장치만 설치돼 있었다.

이곳 공용화장실을 사용한 여성 표모(29)씨는 “요즘 흉악범죄가 잦아서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기가 무섭다”며 “이런 공용화장실일 줄 알았으면 같이 온 친구들한테 망을 봐달라고 했을 거다.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대입구역 근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역을 기준으로 도보 10분 사이에만 공용화장실 3곳을 발견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삼겹살집 건물에 자리한 공용화장실은 잠금장치가 있으나 문이 열려 있었다. 실수로 문을 잠그지 않고 들어간다면 충분히 남녀가 서로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주변에 경비실이나 관리인으로 보이는 담당자도 없었다.

지난 29일 찾은 신논현역 인근 편의점은 각종 광고·안내 표지 등으로 시야가 차단돼 외부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전병수 기자

편의점도 환경개선이 전혀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난 2월 인천 계양구에서 권모(32)씨가 편의점주를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편의점 통창에 붙이는 불투명 시트지를 제거하기로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불투명 시트지는 청소년들이 외부에서 편의점 담배 광고를 볼 수 없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했지만, 오히려 편의점을 고립시켜 범죄가 발생해도 외부에서 알아차릴 수 없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난 29일 찾은 신논현역 인근 편의점은 각종 광고·안내 표지 등으로 외부에서 내부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복도에서 창으로 지켜봐도 진열대로 인해 시야가 차단된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모(23)씨는 “범죄가 근처에서 일어난다고 하면 이곳도 썩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 같다”며 “외부 표지 부착은 점주 권한이라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 없애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은평구에 위치한 한 편의점도 불투명 시트를 제거했지만, 커피와 음료 진열대 그리고 각종 홍보 포스터로 외부에서 내부 시야가 완전히 차단됐다. 홍대입구역 인근 편의점은 구조상 문을 열고 들어가도 내부 시야가 확인이 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공간과 관련해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는 “남녀 공용화장실은 잠재적 범죄자가 은신하기 용이하고 대부분이 주변인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외곽에 설치돼 범죄 위험이 높다”며 “편의점과 둘레길도 사람들도 범죄 발생 시 초동 대응이 용이하도록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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