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미술관 1편] 서정적 추상화…김환기라는 장르

최이현 기자 2023. 9. 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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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12]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고등학교 독서 교과서에 실린 김환기 화백의 이 작품은 화백의 뉴욕 유학 시절, 김광섭 시인의 부고를 듣고 탄생했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 김광섭 시인의 부고에 화백은 먼 타국에서 주체하지 못하는 슬픔을 커다란 캔버스에 눌러 담았습니다.


시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시, <저녁에> 마지막 문구를 작품 제목으로 붙였습니다.


하지만 김 시인이 세상을 떠난 건 1977년, 작품이 나오고도 7년이 지난 뒤입니다.


시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잘못 전달돼 탄생한 작품이지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1970년 한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김환기 화백의 이른바 '전면화' 시대를 엽니다. 


이후, 가장 높은 경매가로 유명세를 탄 작품 <우주>부터, <산울림>까지 전면화 대작들이 탄생했습니다.


인터뷰 자막: 백승이 학예사 / 환기미술관

"김환기 화백이 지금까지 실험했던 다양한 구성적인 실험들, 다양한 예술 철학들 그런 것들이 녹아있는 시대의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 화백이 제작한, 전면화 기법은 캔버스에 젯소를 바르는 통상적 방법이 아닌, 면천 위에 아교만 바른 것이 특징입니다.


선염이 자연스럽게 번지는 효과를 만들기 위해, 테라핀유를 많이 섞은 '묽은 유화'를 사용했습니다.


붓도 질이 더 좋다는, 서양의 붓을 마다하고 동양의 붓을 선호했습니다.


이렇게 동양적 기법으로 면포에 점을 찍으면, 한지에 먹이 퍼지듯, 그 점이 때론 짙고 때론 가볍게 번졌습니다.


점을 찍고, 번짐을 기다리고 점을 또 찍고 테두리를 둘러가며 기다림을 버틴 화가의 시간.


그렇게 만들어진 김 화백의 전면화는 타국땅과 고국을 연결하는 그리움의 공간이었습니다.


"이 점들이 내 눈과 마음에 모두가 보옥으로 보여요." 


"붓을 들면 언제나 서러운 생각이 쏟아져 오는데 왜 나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참 모르겠어요." 


"창밖에 빗소리가 커집니다."


김환기 화백은 전라남도 신안, 안좌도라는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보고 자란 섬소년으로서, 바다색을 유심히 관찰하던 그는 코발트 블루부터 페르시안 블루, 블루 그린까지.


'환기 블루'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바다 빛 색감을 잘 활용했습니다.


그림 소재로 자주 사용한 '달 항아리'에도 고요한 새벽빛과 깊은 쪽빛이 녹아들었습니다.


도쿄, 파리, 뉴욕을 거치며 세계 미술 무대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순간에도, 동양적 가치관은 고수했습니다.


때론 하루 열 시간이 넘는 작업 시간에, 목 디스크와 각종 질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의 사위이자,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은 김 화백의 사인을 "과로"라고 표현했을 정돕니다.


인터뷰: 박미정 관장 / 환기미술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김환기의 어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그리고 예술의 본질에 대한 끈질긴 추구 또한 그 창작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이러한 것들이 녹아나서 김환기 예술의 그런 핵심적인 감동과 그 아름다움과 그것들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김 화백이 거침없는 도전을 이어가며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었던 건 두 천재가 사랑한 여인, 아내 김향안 덕분입니다.


천재 작가, 이상의 아내였던 변동림은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남편 이상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자녀 셋을 키우던 김환기 화백을 만나 두 번째 화촉을 밝혔습니다.


변동림은 김환기 화백의 아호를 딴 김향안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김환기를 위해 먼저 유학을 간 뒤, 언어를 배우고 터를 닦고, 매니저 역할까지 도맡았습니다.


김환기가 작고한 후에도 김향안은 프랑스어와 영어로 만든 도록을 만들어 해외 유명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는 등 그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인터뷰: 김한솔 작가 / 뮤지컬 라흐 헤스트 

"서로가 이렇게 꾸는 꿈을 실제로 현실로 이루어주게 된다는 점에서 (김향안) 선생님도 내조가 아니라 협조다라고 하셨는데 그런 점에서 둘이 예술가적인 (상당한) 교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망향의 그리움과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서정적 추상화'란 장르를 만든, 김환기 화백.


그림 속 수 많은 점들이 모든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선사합니다.


EBS 뉴스 최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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