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쿠팡물류센터 노조와 함께 싸우는 이유

2023. 9. 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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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여기서 이런 일 하냐'는 질문에 '나는 이게 좋아요'라고 답하기 ③

[이훈 쿠팡노동자 대책위원회 집행위원 ]
한국사회에서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에 '물류센터 노동자입니다'라고 답하면, 다른 직장을 찾기 전 잠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퇴직 후 용돈벌이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혹은 능력, 학벌 등이 부족한 사람들이 일하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류센터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업무를 그저 괜찮다고 여기는 걸 넘어서 일터를 애정하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일터를 위해 애쓰는 게 회사의 '눈엣가시'가 되어서 해고를 당한 후, 부당한 해고를 당했다며 소송을 하고 '복직 투쟁'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안 좋은 일자리'라며 수군거리는 일터로 복직하겠다고 기를 쓰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전합니다. 로켓 배송으로 유명한 쿠팡에서 일하다가 해고되었고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을 처음 만난 건 2022년 여름이었다. 이전에도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쿠팡이란 회사는 너무 컸고 그에 비해 노동조합의 덩치가 작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회사와 작은 노조의 싸움은 결과가 뻔했다. 가끔 스치듯 쿠팡 노조를 보게 되면 마음속으로 '여기 노조가 어떻게 이겨. 못 이겨.’라고 단호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작년 6월 23일, 비가 많이 오는 장마였는데 마침 일정이 없었다. 당시 매일 바쁜 일정에 허덕였기에, 침대에 누워서 다소 눅눅해진 이불에 몸을 파묻고 있는 시간은 소중하고 달콤했다.

핸드폰으로 SNS를 보던 중 친한 활동가가 올린 게시물을 봤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이 잠실에 있는 쿠팡 본사 로비를 점거했다는 소식이었다. 분회장님이 해고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적혀있었다. 최소한 오늘은 쭉 버티고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아, 이건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직 투쟁하는데 심지어 로비 점거라니, '조합원들이 많이 힘들겠다' 싶었다. 이전에 했던 냉정하고 비판적인 생각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얼른 몸을 일으켜 간단한 짐을 챙기고 잠실로 향했다.

당일 로비엔 약 30명의 조합원과 연대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현장은 예상했던 분위기와 달랐다. 억울함을 못 이겨 로비를 점거하겠다고 온 사람들치곤 다소 차분했다.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현장은 도무지 21세기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열악했다. 노동자들은 빠르게 많은 일을 해야 했고 무거운 것을 나르느라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앓고 있었다. 현장엔 냉난방장치가 없어서 사람이 여름 더위에 쓰러지고 겨울 추위로 동상에 걸리는 일도 잦았다.

▲쿠팡 해고노동자들과 이야기하는 이훈 쿠팡대책위원 ⓒ이훈
가장 충격적인 건 쉬는 시간이 아예 없는 거였다. 쉬는 시간이 적어서 더 달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아예 없는 거였다. 조합원들의 요구는 너무나도 소박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쿠팡이 들어줄 거 같았다. 솔직한 표현으론, 안 들어주는 게 아니라 못 들어주는 말 못 할 이유가 있나 싶을 정도로 요구는 소박했다. ‘쉬는 시간을 달라,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 에어컨을 설치하라, 해고자를 복직시켜라’라고 적힌 피켓을 든 나와 조합원들은 들었다. 그리고 우릴 비웃기라도 하듯, 쿠팡 본사 로비엔 의자에 앉아서 쉬는 큰 조각상이 있었다.

이후 노동조합은 약 한 달간 로비에서 버티며 매일 선전전을 하고 전략을 고민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가 당장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건 행진이었다. 쿠팡이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하겠다며, 에어컨을 들고 잠실 본사 앞에서 쿠팡 동탄 물류센터까지 걷기로 했다. 7월 20일부터 약 3일간 뜨거운 햇빛과 장대비 속을 걸었다. 그리고 동탄에 도착한 우린 직접 에어컨을 센터 안으로 넣으며 작은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나도 행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술 한잔하며 오늘 우리가 얼마나 유의미한 일을 했는지 자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쿠팡은 곧바로 반격했다. 그날 밤 본사 로비 농성장을 침탈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당장 달려갔을 땐 이미 덩치 큰 용역들이 건물의 모든 문을 막고 서서 조합원의 출입을 전부 막고 있었다. 화를 내며 따져도, 설득해도 용역들은 비아냥대며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고 진입 시도하는 우릴 힘으로 밀어냈다. 경찰들은 가만히 쳐다보며 "그러길래 나오랄 때 나오지 않은 너희 잘못"이라고 말했다. 억울했고 모멸감이 들었다. 쉬는 시간과 에어컨이 필요하다는 작고 귀여운 요구에 돌아온 건 비아냥과 침탈이라는 게, 2022년 대한민국의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게, 그게 내가 연대하는 노동조합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노조는 그 후로 본사 앞에 292일간 천막을 치고 투쟁을 이어나갔다.

▲정성용 지회장과 이야기중인 이훈 쿠팡대책위원 ⓒ이훈

나는 그 후로 군대에 입대하면서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의 소식을 한두 번 SNS로 접할 뿐, 투쟁이 진전되고 있는지 후퇴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여러 사정으로 나의 군 생활은 남들보다 다소 짧게 끝났는데,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쿠팡 노조는 수련회를 열었다. 2023년의 노조 목표와 방법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만난 조합원들과 상근자들은 참 반가웠다. 다들 큰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서로를 맞이했다. 그렇게 시작된 수련회에서 정성용 지회장님은 "올해 가장 큰 목표는 휴게시간 마련과 냉난방장치 설치가 될 거 같습니다"라고 했다. 듣자마자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게 아직도 안 됐구나. 올해도 이걸 가지고 싸워야 하는구나. 고작 일하다가 중간중간 쉬겠다는 요구가 아직도 반영이 안 돼서 점거, 행진, 천막을 다 거치고도 또 싸워야 하는구나.'라는 막막함과 허탈함이 함께 몰려왔다.

올해 여름, 정신없이 노조와 시민단체에 연대하는 내게 정성용 지회장님이 전화를 했다. 오늘 만날 수 있냐고 했다.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도 물류센터에 쉬는 시간이 없다며, 인천에 천막을 칠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시라며, 최대한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름 약속을 지켰다. 천막을 지키고 조합원들을 인터뷰하고 피켓팅을 함께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샤워를 하다가 문득 머릿속에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작년에 로비 점거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까? 달콤한 휴식을 더 취할 수도 있는데 왜 갔을까? 농성장 침탈 소식을 듣곤 왜 달려갔을까? 밤이었고 행진하느라 피곤했는데 왜 쉬지 않고 갔을까? 이번 폭염 시기 천막에는 왜 함께 했을까? 농성장은 그늘도 없어서 한낮엔 40도 넘어가는 게 우스웠고 벌레도 참 많았는데 나는 왜 최대한 가려고 애썼을까? 왜 노동조합에게 힘이 필요할 때마다 달려갔을까.' 물론 스스로 하는 질문이 다소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훈아, 열심히 연대했다고 공치사라도 하고 싶은 거니?' 머릿속에서 나를 향한 비웃음도 떠오른다. 하지만 열심히 연대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기에, 얼굴에 철판을 두껍게 깔고 고민해본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답은 약 한 달 전, 7월 말 새벽의 기억이다.

이번 여름, 인천4센터 옆에 천막을 쳤다. 조합원들은 거기서 생활하면서 하루에도 여러 번 선전전을 했는데, 새벽에 퇴근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도 쉬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피켓을 잡고 마이크를 잡았다. 같이 한 짧은 선전전이 끝나고 다시 잠들기 전, 나는 아무 생각없이 인천4센터와 천막을 함께 바라봤다. 센터는 엄청나게 컸고 천막은 참 작았다. 그 순간 느껴진 건 막막함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다음에 느껴진 건 희열이었다. 지금까지 이 자그마한 노조가 거대한 기업을 바꿔온 역사가 주는 희열이었다. 이 작고 소중한 노조가 조금씩 해냈다. 여름에 노동자에게 얼음물과 아이스크림을 주도록 했고 적은 숫자라도 동탄과 고양 물류센터에 에어컨이 설치됐다. 올해 8월 1일, 노조가 주도한 하루 파업 때문에 쿠팡은 대체 인력을 구하기 위해 단기 일용직 노동자에게 인센티브로 엄청난 돈을 써야 했다. 노조가 금방 지고 없어질 거란 나의 섣부른 판단은 틀렸고 작지만 유의미한 승리를 꾸준히 해내고 있었다. 내 생각이 빗나가고 노조가 이기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희열. 어쩌면 그 희열을 느끼고 싶어서, 그 희열을 함께 만들어내고 싶어서 그렇게도 나는 달려갔나 보다.

▲최효인천분회장과 논의중인 이훈 쿠팡대책위원 ⓒ이훈

[이훈 쿠팡노동자 대책위원회 집행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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