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재판 지체 묻자 “국민에게 감동 주는 재판 하려고 했다”
편향인사엔 “멀찍이 떨어져 공정 유지”
김명수 대법원장이 자신이 도입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 법원장 후보 추천제로 ‘재판 지체’가 심각해졌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또 문재인 정부 당시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 수리를 거부하고 국회에 거짓 답변서를 보낸 혐의로 고발된 사건에 대해 “(퇴임 후)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오는 24일 퇴임을 앞두고 지난 31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최근 ‘재판 지체’가 심각해진 것은 맞는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원인에 대해선 법조계나 일선 판사들과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취임사에 밝혔던 것처럼 신속과 효율도 중요하지만 충실한 심리를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재판을 하려고 했다”며 “(변호사 출신 등) 경력 법관들이 늘면서 예전처럼 사명감과 열정만 갖고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고 법관 수도 부족하다. 코로나로 재판이 정지되는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재판이 지연됐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이 업적으로 내세우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재판 지체’를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가 없어지면서 판사들이 재판을 열심히 하려는 의욕을 잃었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으로 법원장이 재판을 게을리 하는 후배 판사를 나무라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법관이 승진 제도가 있을 때 성심을 다하고, (승진 제도가) 없다고 그렇지 않는다는 것은 법관 생활을 오래한 저로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법 행정 관련 충고와 조언을 할 수 있는 법관이 법원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들이 수석부장, 법원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서 역량있는 법관이 더 열심히 일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퇴임 후 검찰에 소환될 수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엔 “수사가 진행 중이라 말하는 건 적절치 않지만 원론적으로 수사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진행되면 성실히 임하겠다”며 “여러 불찰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말도 조심했어야 하고 몸가짐도 조심했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2020년 5월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건강상 이유로 사표를 내자 “지금 (민주당이)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듣겠냐”며 거부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김 대법원장은 이를 부인하는 답변서를 국회에 보냈지만 임 전 부장판사가 대화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거짓이 탄로 났다. 2021년 2월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허위 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고발했다.
김 대법원장은 또 ‘인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사법행정자문회의 법관인사분과위원회를 만들어 검토를 했고,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인사에는) 멀찍이 떨어져 나름의 공정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사건 등을 맡았던 김미리 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법에만 4년 근무한 것 등에 대해선 “중요 사건을 맡거나 개인 사정이 있으면 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편향된 대법관을 제청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여성과 출신 학교 등을 고려해서 다양화에 힘썼고,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2018년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사법농단 3차 조사 결과를 뒤집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것에 대해선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며 “조사 결과를 보고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많았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결정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후 (사법농단 관련 기소된)법관들의 무죄 판결과 징계 회부 등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임기 내 가장 잘한 것으로 형사전자소송 도입을 꼽았다. 관련법이 2021년 국회를 통과했고, 법원행정처는 2026년 시행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반면 상고제도 개선을 제대로 못한 게 가장 아쉽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또 양심적 병역거부, 강제 징용 등 의미 있는 전원합의체(대법관 13명이 합의해서 하는 판결) 판결을 많이 했다고 자평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신뢰는 사법행정을 민주적으로 하는 부분에서도 나오겠지만 근본 토양은 결국 재판”이라며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미루지 않았고, 그때그때 나름대로 의미 있는 판결을 했다”고 했다. 또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과 강제 징용 사건 판결을 했을 무렵 사법부 신뢰도가 역사상 가장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6년 임기를 사자성어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첩첩산중(疊疊山中·여러 산이 겹친 모습)이었지만 오리무중(五里霧中·갈피를 잡을 수 없다)은 아니었다”며 “갈 방향은 가지고 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큰 성과는 냈다고 하긴 어렵지만 불면불휴(不眠不休·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는다) 하며 우공이산(愚公移山·계속 노력하면 뜻하는 일을 이룬다)의 마음으로 일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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