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고등부장 폐지·법원장 추천제가 재판 지연 원인 아냐”
“법관 증원이 재판 지연 해결하는 실질적 방법”
김명수 대법원장이 자신의 임기 동안 추진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재판 지연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두 정책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의 배경이었던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가 법관이 윗선 눈치를 보고 줄을 서는 ‘법관 관료화’를 조장한다는 문제의식을 깔고 나왔다. 보수정당 등에서는 두 정책 때문에 재판이 지연된다며 김명수 대법원을 공격해왔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법조기자단 간담회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가 원인이 돼서 재판 지연이 됐다는 지적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법관이라는 직을 수행하는 사람이 승진이라는 제도가 있을 때는 (재판에) 성심을 다하고, 없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법관 생활을 오래한 저로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한편으로는 여러가지 사회환경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부분은 법관 스스로 자각하고 인식하면서 재판을 하는 결과를 보여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해서도 김 대법원장은 “추천제를 통해 법원장에 됐으니 (자신을 뽑아준 판사들에 대해) 재판의 독려가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충분히 사법행정에 관해 충고와 조언을 할 수 있는 분이 추천제로 법원장이 되고, 그런 분들을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지방법원의 법관이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지 않으면 사표를 많이 냈지만, 이제는 수석부장이나 법원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니까 역량있고 훌륭한 분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 증원이 재판 지연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법관이 사건 대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사물관할 확대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내년에는 어느 정도의 정상화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법관을 늘리는 법관증원법을 통해 법관 숫자를 늘리는 것까지 돼야 실질적 재판 지연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형사전자소송 도입을 임기 동안 의미있는 성과로 꼽았다. 김 대법원장은 “그동안 지지부진하다가 2021년 법이 만들어졌는데 그러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며 “종이기록의 특성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는데 형사전자소송이 시행되면 국민, 소송관계자, 법원 구성원들에게 큰 편익이 제공될 것 같아서 제일 뿌듯하다”고 했다. 2018년 12월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하고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내용의 입법개선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도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개혁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김 대법원장은 임기 중 가장 아쉬운 것으로는 상고제도 개선이 충분치 못한 점을 꼽았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일부 대법관을 증원하고 상고심사제를 채택하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자문회의 산하에 상고제도 개선특별위원회가 출범해 2년동안 열심히 공부,연구, 검토하고 공청회를 했지만 하나로 모으기가 참 힘들었다”며 “일각에서 좀 늦었다는 이야기도 분명 나왔지만, 쉽게 결정이 돼서 여기까지 마칠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일부 보수정당이 특정 연구회 출신 대법관의 편향을 문제삼는 데 대해선 ‘대법관 구성 다양화’에 초점을 맞춰 평가해달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여성 대법관은 4명까지 늘어났고 법관 경력이 없는 재야 출신 대법관도 탄생했다. 김 대법원장은 “저는 다양화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 한쪽에서 보는 생각이 아닌 여러 쪽에서 보는 생각이 모여서 그 시대에 가장 합당한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대법원이 여러 균형을 갖춘 대법관들로 구성되도록 노력했고, 편향적인 대법관을 제청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정치권의 사법부 공격에 대해 “점점 심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정치와 사법의 관계에 있어서 정치의 역할과 사법의 역할은 따로 있는데 정치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법으로 넘어오니 정치의 사법화, 그것에 대해 판단하니까 사법의 정치화라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가능하면 정치의 영역에서 많은 일들이 조화되고 해결돼서 사법으로 오는 경우가 적었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정치의 문제가 사법으로 왔을 때 결국 법원은 법리라는 틀에 의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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