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최악의 건물 화재로 74명 사망…당국의 방관이 부른 참극
추위 피하려 사용한 촛불이 원인인 듯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발생한 건물 화재로 최소 74명이 사망했다. 버려진 건물을 불법 점유한 지역 갱단이 소방 시설을 전혀 갖추지 않은 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분별한 임대 사업을 벌이다 생긴 참극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로버트 물라우지 남아공 응급관리서비스 대변인은 이날 요하네스버그 시내에 있는 5층 건물에 불이나 지금까지 74명이 숨지고 5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사망자 가운데 최소 12명은 어린이고, 1세 영아도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일부 시신은 훼손 정도가 심해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상자 중에서도 유독가스를 흡입한 경우가 많아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남아공에서 발생한 화재 가운데 가장 최악”이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외신들은 시 관계자와 목격자의 말을 인용해 건물 내부에서 사용된 양초가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요하네스버그엔 만성적인 전력 부족으로 여전히 촛불을 사용하거나 장작불을 피워 난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이 건물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약 200명의 노숙인과 저소득층 주민들이 생활해왔다.
화재에 취약한 건물 구조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NYT에 따르면 요하네스버그엔 약 600개의 버려진 건물이 있고, 지역 갱단이 대부분 불법 장악한 상황이다. 이들은 더 많은 임차인을 받기 위해 가벽을 설치해 쪽방을 만들었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에도 80개 이상의 쪽방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몰라우지 대변인은 “건물 안에 무허가 구조물이 널려 있었다”며 “특히 가연성 물질로 만든 가벽으로 인해 화재가 매우 빠르게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수많은 가벽 설치로 건물 내부가 미로와 같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건물에서 탈출한 케니 부페는 AFP통신에 “많은 사람이 비상구를 찾으려고 뛰어다녔지만 결국 대부분 사망했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남아공 당국이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갱단 검거와 건물 점검 등 사실상 모든 부분에서 손을 놓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현장을 방문해 “향후 유사한 비극을 예방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범죄자들이 건물을 불법 점유하고 취약층으로부터 임대료를 받아먹는 행태를 근절하겠다”고 말했지만, 요하네스버그 노숙인 보호 단체는 NYT에 “지금까지 이런 참극이 발생하지 않은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비꼬았다.
NYT는 “남아공 공직자 부패 문제는 고질적이고, 경제 측면에서도 남아공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로 꼽힌다”며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이 종식된 지 30년이 흘렀지만, 부유층과 저소득층, 그리고 백인과 흑인의 삶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고 꼬집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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