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자진 참전···軍간호학 기틀 쌓은 전증희 을지재단 명예회장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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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간호장교로 참전해 초기 군(軍) 간호학의 근간을 마련하고, 남편 범석 박영하 박사와 함께 을지재단의 성장을 이끌어 온 전증희 을지재단 명예회장이 1일 소천했다.
전 회장은 1952년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을지재단 설립자 범석 박영하 박사와 전쟁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을지재단을 함께 일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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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헌신적인 내조로 을지재단 성장에 기여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
한국전쟁 당시 간호장교로 참전해 초기 군(軍) 간호학의 근간을 마련하고, 남편 범석 박영하 박사와 함께 을지재단의 성장을 이끌어 온 전증희 을지재단 명예회장이 1일 소천했다. 향년 94세.
1929년 출생한 고인은 1945년 춘천간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간호장교로 자진 입대했다. 부상병이 속출하는 대전 제2육군병원 수술실에 첫 발령을 받았지만 성실하게 근무하며 간호 분야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 받는다.
전 회장은 1952년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을지재단 설립자 범석 박영하 박사와 전쟁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을지재단을 함께 일궈왔다. 부부가 모두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은 의료계를 통틀어 드문 일이다. 이듬해 대위로 예편한 전 회장은 남편 범석 박영하 박사와 함께 1956년 을지재단의 시초인 박 산부인과 병원을 개원한 뒤 재단법인 을지병원 상임이사, 을지재단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병원 행정과 의료사업 등을 도맡았다. 의사, 간호사 등으로 이뤄진 을지의료봉사단을 창단한 이후에도 늘 현장 방문에 참여하며 무의탁 노인, 소년소녀가장, 수재민을 위한 무료진료소 개설 등 소외계층을 위한 의료봉사를 꾸준히 실천해왔다.
전 회장은 1997년 10억 원의 개인재산을 출연해 재단법인 범석학술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으로서 27년간 20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범석학술장학재단으로부터 연구비 지원, 시상 등의 후원을 받은 연구자들은 600여 명에 달한다. 2010년에는 사재 37억 원을 사회에 환원했고, 2013년 박 박사가 소천하며 남긴 전 재산 172억 원을 학교와 재단에 기부했다. 국내 의학발전과 인재 양성에 힘써온 공로를 인정 받아 202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한 바 있다.
장례식장은 노원을지대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다. 장지는 2013년 5월에 영면한 남편이 안장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준영(을지재단 회장), 딸 박준숙(범석학술장학재단 이사장), 사위 최원식(을지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학교실 석좌교수), 며느리 홍성희(을지대학교 총장) 등이 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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