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소박이[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아삭한 오이의 식감과 향긋한 부추의 내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오이소박이는 그 모양새만큼이나 이름도 알차고 예쁘다.
오이를 네 등분하되 한쪽 끝은 남겼으니 속이 생기고 거기에 소를 넣을 수 있으니 소박이가 된 것이다.
그러니 오이소박이를 먹을 때 베어 먹기 애매하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속이 아닌 속에 소를 넣을 방법을 고안한 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삭한 오이의 식감과 향긋한 부추의 내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오이소박이는 그 모양새만큼이나 이름도 알차고 예쁘다. 주재료인 ‘오이’의 속에 ‘소’를 ‘박은’ 것이 이 음식이니 이름에 주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오롯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박이’에 음운 현상이 적용돼 ‘소배기’가 되기도 하니 그 이름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그런데 받침의 유무로 갈리는 ‘속’과 ‘소’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속’은 거죽이나 껍질로 싸인 물체의 안쪽 부분을 뜻하고 ‘소’는 음식의 속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를 뜻한다. 그러니 속이 더 넓은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적인 용법에서는 속이 소를 대신하기도 한다. 만두의 소를 속이라고 하기도 하고 배추김치를 담글 때 넣는 김칫소를 ‘김칫속’이라고 하는 이도 많다. 뜻과 소리가 모두 비슷하니 둘을 같이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는 ‘속’이 받침이 떨어져 생겨난 것은 아닐까? 받침이 떨어지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멀쩡한 ‘ㄱ’ 받침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게다가 ‘속’은 길게 발음하는데 ‘소’는 짧으니 그 변화까지 설명해야 한다. 익산의 옛 이름 ‘이리’가 본래 ‘솝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아니다. ‘솝’은 오늘날은 안 쓰이지만 17세기까지 ‘속’과 같이 쓰였다. ‘솝’이 ‘속’과 기원이 같다 보니 속을 뜻하는 한자 ‘裡(속 리)’를 지역 이름에 쓴 것이다.
오이와 부추를 재료로 하되 ‘버무리’가 아닌 ‘소박이’를 만든 것은 독특한 칼질 덕분이다. 오이를 네 등분하되 한쪽 끝은 남겼으니 속이 생기고 거기에 소를 넣을 수 있으니 소박이가 된 것이다. 사실 오이소박이의 속은 완전한 속이 아니니 겉과 속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상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이소박이를 먹을 때 베어 먹기 애매하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속이 아닌 속에 소를 넣을 방법을 고안한 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女 아나운서 “내 눈썹 문신 왜 이래?”…병원 직원 때리고 난동 부려 기소
- 서정희 “서세원에 수시로 전화, 죽지 않았다면…”
- ‘600km 날아가 비행기 파괴’...우크라 자폭드론에 불안감 커지는 러시아 본토
- “내 생사두고 떠드는데”…프리고진 사망 며칠 전 영상 공개
- ‘입주 끝난 지 3년이나 됐는데’…조합장·직원 1300만원씩 ‘꼬박꼬박’
- ‘소녀시대’ 태연, 팬에게 외제차 선물 받았다…“잘 빠졌죠?”
- 오나라 “23년 연애 비결?…뒤끝 없고 방목형”
- [단독] 중학생이 교실서 흉기들고 “죽이겠다”… 알고보니 학폭 피해자
- ‘시끌벅적 민주당’...이재명 단식에 밤샘 의총, 사법 리스크에는 ‘전전긍긍’
- 책 읽다 눈 멀고 거세까지 불사한 ‘집중의 달인들’[북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