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어
[아무튼, 레터]
다음 날 만난 그녀의 손에 하얀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초보’라고 적힌 A4 용지. 궁서체로 쓴 글씨가 너무 커서 아연했다. “창피해요? 비싼 외제차에 붙이기는 싫지?” 속을 읽었는지 그녀가 눈을 흘겼다. “아우디가 지켜주는 줄 알아요? 이게 지켜주는 거야.” 그녀가 손에 들린 A4 용지를 팔락팔락 세차게 흔들었다.
장류진 소설 ‘연수’에서 이 대목을 읽다가 도로에서 내가 올챙이일 때가 떠올랐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옆은 무섭고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이. ‘초보’ 두 글자를 붙이면 도로가 한결 친절해지던 시절이. 실수하거나 꾸물거려도 경적이 덜 울리던 그때가. 배려를 받으며 실력이 늘던 그 시절이.
몇 개월 동안은 눈부터 손발까지 모든 감각을 운전에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초보 딱지를 떼고 도로에 익숙해진 뒤로는 먼길도 설렁설렁 아무렇지 않게 달려갔다. 장거리 운전을 하며 어느 글의 도입부를 어떻게 쓸지 설계했다. 간밤에 일어난 부부싸움을 되짚어보기도 하면서.
소설 ‘연수’에서 운전공포증을 앓는 주인공은 도로에 홀로 나가기 위해 운전연수를 받는다. 동네 맘카페를 통해 ‘일타 강사’로 소문난 “작달막한 단발머리 아주머니” 운전강사를 만난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초면에 그녀의 자녀계획까지 세워버리는 무례함에 마음이 식는다. 과연 홀로 도로에 나갈 수 있을까. 강사와의 관계는 나아질 수 있을까.
‘문장 감량(減量)’이라는 글쓰기 강의를 맡은 적이 있다. 건강이 나빠질 땐 비만이 연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체중부터 줄여야 한다. 글쓰기도 군살을 빼야 문장이 늘씬해진다. 운전과 닮아 있다. 자율주행차가 아니라면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고 끝까지 가야 한다. 글도 경로를 따라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운전에 방향과 거리, 행선지가 있듯이 글도 고속도로에서는 쾌속 질주하고 비포장 도로를 만나면 브레이크를 자주 밟아야 한다. 가속과 감속의 기술이 요구된다. 조수석에 앉은 ‘독자’가 지루해 하며 중간에 내린다면 실패작이다. 흥미를 잃지 않게 하면서 마지막 문장에 함께 도착해야 한다.
‘연수’는 사람 사이의 유대가 서서히 생성되는 장면들이 따뜻한 공감을 자아낸다. 세상에 첫발을 내딛던 저마다의 기억이 아로새겨지며 이야기가 빛을 발한다. 운전강사가 스피커폰으로 주인공에게 들려주는 이 응원처럼. “계속 직진. 그렇지.”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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