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한동훈, 정치적 갈림길에 서다
“정치 감각 뛰어나지만, 설득과 타협의 정치 할지 미지수” …전문가 7인이 바라본 한동훈 장관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정치권에서 드물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다 갖춘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 "정치를 해보지도 않은 사람의 정무적 감각이 그 어떤 정치인보다 뛰어나다. 다만 정치인이라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쓸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채진원 경희대 교수), "말싸움·임기응변 등 정치적 센스는 매우 뛰어나지만, 너무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 "개인적인 능력·자질·도덕성 등이 탁월하다. 민주당이 정말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박상병 정치평론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조건들을 두루 갖고 있다."(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외적으로 기존 정치인들과 달리 크리에이티브(creative)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 "상대방의 말을 따박따박 되받아치는 직설화법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의 화법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구은화 올댓프레젠테이션 대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장점에 대한 호평과 함께 상대적인 문제점도 지적하는,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다. 누가 뭐래도 한 장관은 지금 정치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처음엔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 엘리트 검사 출신, 최연소 법무부 장관으로 깜짝 발탁 등 그의 배경들이 시선을 끌었지만, 지금 그는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내는 '이슈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대로 외모·패션 등 외적인 요소는 물론 상대 정치인들을 압도하는 언변과 주목받는 이슈를 던질 줄 아는 정무 감각 등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받는다. 이제 그의 존재감은 여야의 여타 정치인들을 능가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미 그는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다.
"수사에서 새로운 지평 열었다는 검찰 내 평가 많아"
좀 과장해서 말하면 '한동훈 신드롬'이라고도 불릴 정도인 그의 존재감 급부상에는 양면성도 분명 존재한다. 대중은 이미 그를 정치인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지만, 주로 야당 정치인과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조명을 받는 그의 말들은 아직 정치인의 것이라기보단 검사식 언어에 가깝다는 평이 나온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당장은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가지만, 결국 설득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인물이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검사·장관 한동훈과 정치인 한동훈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권 내에선 당장 한 장관의 내년 4월 총선 역할론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한 장관이 총선에 나설 경우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한 장관은 과연 대중의 지속적인 지지를 끌어내는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반면 윤석열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내각을 장악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선 지금의 한동훈 장관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가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살펴보기 위해 시계를 되돌릴 필요가 있다. 1973년생(현재 50세)인 한 장관은 서울대 법대 4학년이던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1998년 사법연수원을 제27기로 수료하고 공군법무관을 지낸 후 2001년 서울지방검찰청에 첫 발령을 받았다. 그는 금융과 증권 관련 비리를 수사하는 경제 특수부로 당시 막 신설됐던 형사9부에서 다양한 기업인 비리 수사를 경험했다. 형사9부는 2003년 최태원 SK 회장을 부당거래 및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당시 형사9부 부장검사가 최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상황을 담은 회고록을 내 논란이 됐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다.
이후 한 장관은 2003~04년 대검 중수부 대선자금수사단에 파견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파견, 대검 정책기획과 과장 등을 거치면서 법무 행정을 익히기도 한 한 장관은 다시 2015년부터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 부패범죄특별수사단 2팀장,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 검사 등 수사 최일선에서 '재계 저승사자'로 이름을 떨쳤다. 2019년 7월 반부패·강력부장 등으로 임명될 땐 최연소 검사장이었다.
"단어와 팩트 중심으로 의사 전달하는 'MZ세대 화법' 구사"
한 장관의 선배로,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는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사 시절의 한 장관에 대해 "저연차 검사 때부터 아주 '브라이트(bright)'했고 눈에 띄었다. 일도 잘했지만, 그때부터 옷도 맵시 있게 잘 입고, 나이스한 이미지여서 '귀공자' 같았다"며 "선배들에게 예의가 발랐고, 총명했기 때문에 모두가 인정했다"고 회상했다. 또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수사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검찰 내에 많았다. 검사의 지위나 다른 것들로 피의자를 찍어내리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 자료를 철저하게 분석해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승복시키는 새로운 특수수사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지금 장관으로서 객관적인 팩트로 야당 의원들을 할 말 없게 만드는 모습은 검사 시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한 장관과 윤 대통령은 2003년 SK그룹 분식회계 사건과 대선 비자금 사건, 2006년 현대자동차그룹 비리 사건, 같은 해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사건,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등을 함께 하며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로 발전했다. 한 장관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의 수사를 지휘하면서 정치적 운명도 함께하게 됐다. 그는 이후 추미애·박범계 당시 법무부 장관에 의해 좌천돼 부산고검 차장검사, 법무연수원, 사법연수원 등을 떠돌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첫 법무부 장관에 깜짝 임명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총명했던 검사 시절 모습 그대로…겸손 부족해 보이는 건 아쉬워"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최측근 중 최측근을 장관에 앉히는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였기에 비판이 거셌지만, 윤 대통령은 "최적임자"라며 임명을 강행했다. 한 장관 역시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5월17일 취임식에서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오직 범죄자뿐"이라며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를 두고 갈등을 지속해온 민주당을 향해 날을 세웠다. 당시 한 장관의 취임식 영상은 유튜브 조회 수 100만을 넘기며 한 장관에 대한 대중의 상당한 관심을 수치로 입증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돋보인 것은 역시 '말'이었다. 특히 한 장관이 국회에 출석할 때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야당 의원과의 논쟁 장면은 대부분 그날 메인 뉴스를 장식한다. 대부분 먼저 질의에 나선 야당 의원을 한 장관이 도리어 반박으로 제압하는 식의 장면들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스피치 전문가 구은화 올댓프레젠테이션 대표의 분석이다. "일명 직설화법이라고 알려진 한 장관의 화법은 두루뭉술한 걸 싫어하는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한마디로 'MZ세대 화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화법을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저맥락 언어'라고 한다. 말의 의미와 맥락을 배제하고, 단어와 팩트 중심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검사·의사들이 쓰는 언어가 저맥락 언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 장관이 사용하는 어휘나, 말의 여러 부분을 보면 상당한 교양과 품격을 갖추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 부분에선 한 장관이 윤 대통령과 같은 검사 출신이지만, 오히려 더 능가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 장관이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철저히 계산된 발언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온다는 분석도 나온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논쟁 상황에서는 물론 최근의 '사형제 부활 시사' 발언, '칼부림 사건 관련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발언과 체포동의안 표결에 앞서 본회의장에서 하는 발언 등을 보면 굉장히 계산적이고 기획력이 좋다"고 평가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정무적 감각도 뛰어나단 분석이다. 지난 3월 한 장관은 유럽 출장을 떠나는 공항에서 손에 빨간 표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직자 혹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기기도 한 해당 책을 든 한 장관에 대해 정치권에선 '이미 정치인으로서 대중에게 계속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채 교수는 그에 대해 "이미 준(準)정치인"이라며 "검사를 하다가 곧장 법무부 장관이 됐는데, 다른 정치인 출신의 이전 법무부 장관들보다 오히려 정무적 감각이 더 뛰어나 보인다"고 했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그의 정치적 감각에 대해 "당대에는 추종을 불허한다"고 표현했다.
또 하나 그의 두드러지는 강점은 외적인 요소들이다. 준수한 외모는 물론 스카프, 가방, 머플러, 시계 등에 포인트를 주는 한 장관의 패션은 여러 차례 화제가 된 바 있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은 한 장관의 이미지에 대해 "기본적으로 외모 등의 이미지는 보수적이고 트래디셔널(traditional)한 듯하지만, 의상, 시계 등 패션을 보면 대단히 개혁적이고 크리에이티브(창의적)하다"면서 "기존의 우리 정치인들은 보수적이고 우아한 이미지가 대부분인데, 한 장관의 패션적 요소들은 상당히 독특하다는 이미지를 주면서 매력을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강 소장은 "이는 단순히 외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술을 먹지 않는 정제된 생활습관부터 스피치 등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 특징들"이라고 말했다.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
그러나 한 장관을 돋보이게 하는 특징들은 반대로 '양날의 검'이 돼 그를 향한 비호감도를 높이기도 한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 역시 '말'이다. 한 장관이 검사식의 '저맥락 언어'를 사용한다고 분석했던 구은화 대표는 "한국어는 맥락 중심으로 의사소통하는 '고맥락 언어'다. 다른 국회의원들이 한 장관과 대화를 할 때 '말꼬리 잡는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이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국민도 대부분 고맥락의 소통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초기에는 신선했던 한 장관의 화법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한 장관의 과거에 대해 극찬했던 선배 검사는 끝에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최근 한 장관의 모습을 보면, 검사 시절보다 '말'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걱정이다. 특수수사를 오래 하다 보면 상대가 우습게 보이는 게 있다. 정치를 하려고 하면 더 겸손해야 할 텐데, 그런 모습이 부족해 보여 아쉽다."
결국 이런 부분들이 한 장관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장관의 언변과 정치적 감각을 매우 높게 평가한 양승함 교수는 "(한 장관이)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정치의 목적은 설득이고 통합이다. 너무 날카롭고,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진원 교수는 "언변 등을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에 상당히 능하지만, 그게 오히려 그대로 약점이 될 수 있다. 정치인은 '칼잡이'가 아니지 않나"라며 "정치인이라면 국민을 통합하고,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쓸 줄 알아야 하는데 지금 한 장관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인 한동훈'의 가능성에 대해 "인물 부족난에 허덕이는 보수 정치권이나 국민의힘 입장에선 굉장히 좋은 카드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대표는 다음과 같이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새로운 인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오랫동안 물들어서 거기서 새로운 변화를 주도해 내지 못하고 나면 기존에 갖고 있던 안 좋은 이미지에 매몰되는데, 이는 윤 대통령이나 한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당초 인기를 끈 건 당시엔 정치라는 늪에 빠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들어와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그래서다."
한 장관의 또 다른 치명적 약점은 지금 한 장관이 이 자리에 오게 된 결정적 이유라고도 볼 수 있는 '윤석열의 역설'이다. 박상병 평론가는 "한 장관은 윤 대통령의 '아바타'이며 패키지나 다름없다. 윤 대통령이 성공하면 한 장관도 가치가 높아지겠지만, 윤석열 정부가 실패하면 한 장관도 값어치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가장 큰 강점이자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라고 지적했다.
■ 한동훈, 내년 총선 與 선대위원장 맡을까
차기 총선을 200여 일 앞두고 여권 안팎에서는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국민의힘이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벌써부터 예측하기엔 이른 이야기"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한 장관의 선대위원장 가능성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윤석열 정부와 여당 입장에선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면 모든 것이 올스톱된다"며 "그런 의미에서 대중적 인기가 있고, 윤석열 대통령과 깊은 교감을 주고받는 '윤심(尹心)' 인사인 데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맞고 있는 3박자를 갖춘 한 장관이 선대위원장으로 적임자라고 판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총선 이후에 윤 대통령 친위 체제를 강화해야 하는 것도 대통령 입장에선 큰 과제"라며 "선거에서 지든 이기든 체제 강화를 위해 윤 대통령도 친윤(親윤석열) 중 친윤인 한 장관을 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워 윤석열-한동훈 투톱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또한 "여러 강점과 대중적 인기를 지닌 한 장관을 빼고 국민의힘이 다음 총선을 얘기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반면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대표는 "한 장관이 선대위원장을 맡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고 반대 견해를 냈다. 그는 "한동훈이라는 인물이 판세를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며 "오히려 현재 윤석열 정부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가 내각에 대한 장악력인데, 현재 그 부분에서 존재감을 지니고 있는 한 장관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더 파워풀할 것이냐를 생각해 보면 답이 보인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 장관이 내각에서 국무총리 등 다른 자리로 옮길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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