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더 많이 더 오래 내고 더 늦게 받는다…지금 20살도 ‘평생 보장’
국민연금 67세까지 내고 68세부터 받는 방안 제시
영국, 68세에 연금 수급 개시…일본 보험료율은 18.3%
출산크레딧 ‘첫째아’로, 군복무크레딧 ‘전체 기간’ 확대 제안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연금 개혁의 큰 틀이 1일 발표됐다. ‘더 많이 더 오래 내고 더 늦게 받는다’는 게 골자다. 동시에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는 해외 주식과 부동산 등 수익률이 높지만 위험도 큰 자산에 더 많이 투자한다.
이 방법으로 올해 20세인 청년이 90세가 되는 2093년에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추계로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 고갈되기 때문에, 청년들은 청년들은 ‘내가 나이가 들면 연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 이런 우려를 없애겠다는 게 국민연금 개혁 목표다.
◇현행 제도로는 32년 뒤 국민연금 기금 고갈…소득 3분의1 떼서 노인 부양해야
연금개혁을 위한 보건복지부의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공청회를 열고 국민연금 재정계산 보고서를 공개했다. 복지부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오는 10월국회에 정부 개혁안이 담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지난 3월 31일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推計)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보험료율 9%, 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인 소득대체율 40%라는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 고갈된다.
현재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쌓아두는 적립식 구조다. 보험료를 거둔 기금을 금융상품 등에 투자해 수익을 올려 연금을 지급한다. 기금이 고갈된 후에는 부과식으로 바뀐다. 국민들에게 그 해 지급할 연금액만큼 보험료를 걷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출산율이 매우 낮은 한국에서는 청년·중년·장년 근로자들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문제가 있다. 재정추계전문위 분석에 따르면 2070년에는 소득의 33.4%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하고, 초저출산이 지속될 경우는 42%를 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소득의 9%)보다 2~3배 더 많은 금액을 노인 부양에 써야 한다는 뜻이다.
◇”올해 국민연금 가입한 20세, 노후에 연금 받을 수 있도록”
국민연금 재정계산위는 이런 일이 없도록 먼저 ‘재정계산기간(2023~2093년) 중 적립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재정계산위원장을 맡은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사전브리핑에서 “70년 동안 급여(연금) 지출을 할 수 있는 만큼의 수입이 확보될 수 있도록 계획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023년 현재 20세에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평균수명인 9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기금이 고갈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 ‘연금을 못 받을 수 있지 않느냐’는 걱정을 없애드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재정계산위는 보험료율과 연금 수급 개시 연령, 기금투자수익률 등 3가지 변수와 관련해 18개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이 중 목표 달성을 위해 주요하게 거론된 것들은 지급개시연령을 68세로 상향하는 방안이다. 국민연금 수급이 시작되는 연령은 올해 63세다. 원래 60세였으나 2013년부터 5년마다 1세씩 올라가고 있고, 2033년에 65세로 높아진다. 같은 속도로 68세까지 높이자는 것이다. 이 경우 2048년부터는 68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2037~2039년부터 68세가 되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영국과 비슷한 제도가 되는 셈이다.
보험료율은 12%·15%·18% 등 3가지를 제시했다.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68세로 늦춘 상황에서 소득의 12%를 보험료로 걷고 기금투자수익률을 1%포인트 높였다면 기금은 2080년 고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료율 15%, 기금투자수익률 1%포인트 제고 시나리오에서는 2093년까지 기금이 고갈되지 않았다. 보험료율 18%, 기금투자수익률 0.5%포인트 높인 경우는 2093년 기금이 고갈된다. 기금투자수익률이 1%포인트 높아졌다면 고갈되지 않는다. 18%로 올리더라도 일본 후생연금 보험료율(18.3%)보다 낮다.
현재 국민연금은 만 60세까지만 의무 가입 대상이다. 60세 이후에는 소득이 있더라도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재정계산위는 가입 연령 상한선과 수급 개시 연령을 순차적으로 일치시키자고 제안했다. 이 경우 68세가 될 때까지 소득이 있다면 보험료를 내야 한다.
직장인은 국민연금 보험료(9%)의 절반을 기업이 납부한다. 국민연금 의무 가입 연령이 높아지면 근로자 실질 소득이 줄어들고 사업주 부담도 커진다. 재정계산위는 반발을 고려해 60세 이후에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낼 지는 2033년까지는 사용자와 근로자 간 합의로 결정하게 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재정계산위의 목표대로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추려면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과 동시에 기금투자수익률도 높아져야 한다.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영석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의) 위험자산 투자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기금운용발전위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 기금은 안전자산에 55%, 위험자산에 45% 정도를 투자하고 있으나, 주요국 연기금은 위험자산에 60%를 투자하고 있다. 또 한국의 금융시장 규모에 비해 국내 주식·채권 투자 비율이 높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구조적인 한계를 해결하면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을 주요 연기금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김 교수는 “(5차 재정추계)에서 (예상한 기금투자수익률이) 4.5%”라며 “지난 35년 평균이 5.1%인데 왜 앞으로는 못하느냐”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익률) 5.1%만 하면, 수급 개시 연령 68세로 높이고 보험료율을 15%로 높이면 2093년까지 기금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금액은 생애 평균소득의 40%’에 일단 변동 없어…논의서 이견 나와
재정계산위는 출산크레딧을 확대하라고 제안했다. 현재는 둘째 이상 자녀를 낳거나 입양한 가입자에게 가입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줘서 더 많은 연금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한 명’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자녀가 한 명인 가입자에게 출산크레딧을 주지 않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또 군복무크레딧도 확대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는 6개월만 인정해주고 있으나, 군복무 전체 기간을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출산크레딧과 군복무크레딧은 대부분의 선진국과 같이 국고로 100% 지원하자고 했다.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세금으로 지급하고 있는 기초연금 제도도 손질하자고 제안했다. 65세에 진입하는 노인 중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점점 늘어나며 소득·재산 수준이 개선되지만,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면 일괄적으로 약 30만원씩 받는다. 재정계산위는 고연령대, 여성, 노인 단독가구의 빈곤율이 상대적으로 높으므로 일정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하고 연금액 조정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재정계산위는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법제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기금이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연금 개혁과 연계해 논의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계산위 논의 과정에서는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으나 보고서에는 담기지 않았다. ‘더 받아야 한다’는 소득대체율 상향을 주장한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전날 보고서 내용에 반발하며 전문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이스란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공청회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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