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18개에 '반쪽 보고서' 논란까지…국민연금 개혁 어디로
소득대체율 언급 빠져…총선 앞두고 10월 개혁안 준비 중인 정부 고심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진통 끝에 1일 내놓은 국민연금 개혁 밑그림은 '더 내고, 똑같이 받고, 더 늦게 받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그러나 얼마나 더 낼지, 얼마나 더 늦게 받을지 등에 따라 세부 시나리오가 다양한 데다, 보장성 강화를 위한 소득대체율 부분이 빠지고 일부 위원이 사퇴하는 등 '반쪽 보고서' 논란도 일면서 개혁 성공 여부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정계산위원회의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오는 10월까지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아야 하는 정부도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보험료율 연 0.6%p씩 인상…세부 시나리오는 18가지
민간 전문가 12명을 포함해 15명으로 구성된 재정계산위원회가 작년 11월 이후 총 21차례의 회의를 거쳐 공개한 공청회 보고서엔 저출산, 고령화 심화로 오는 2055년이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 기금 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이 담겼다.
위원회는 재정 안정을 위해선 현재 9%인 연금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냈고 연 0.6%포인트씩 올리는 안을 제시했다.
다만 세부적으론 5년간 인상해 12%까지 올리는 안과 15%까지 10년간 인상하는 안, 18%까지 15년간 인상하는 안 3가지로 나뉘었다.
여기에 추가 재정안정화 방안으로 지급개시 연령(올해 63세)을 66세, 67세, 68세로 늘리는 3가지 시나리오와 기금투자수익률을 현행 목표(4.5%)보다 0.5%포인트, 1.0%포인트 올리는 2가지 시나리오도 제시됐다.
이를 조합하면 총 18개의 시나리오가 나온다.
위원회는 18가지 시나리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대신 시나리오별 수지적자 시점, 기금소진시점, 그리고 70년 후인 2093년의 부과방식비용률(보험료 수입만으로 지출을 충당할 경우 필요한 보험료율)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김용하 재정계산위원회 위원장(순천향대 교수)은 "사실 우리는 2093년까지 적립기금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한 가지 시나리오밖에 없다"며 18가지가 아닌 단일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2093년까지 기금이 유지되는 시나리오만 추려도 6가지여서 보험료율과 지급개시연령, 수익률 조정을 어떻게 조합할지는 공란으로 남겨놓은 셈이다.
김 교수는 "'보험료 올려야 한다', '0.6%포인트 정도 속도로 가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드린 것"이라며 보험료를 어디까지 인상할지는 기금운용수익률 추이 등을 고려해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득대체율은 빠져…공청회 전날 위원 2명 사퇴 '파행'
이번 공청회 보고서에 노후 보장성 강화를 위한 소득대체율 조정이 빠진 것은 국민연금 개혁 완수의 또 다른 걸림돌이다. 소득대체율은 연금가입 기간의 평균 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의 비율로, 올해 42.5%, 2028년엔 40%로 낮아질 전망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정안정화와 더불어 주요국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 해소를 위한 보장성 강화도 연금개혁의 중요한 축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재정계산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소수안으로 표기하려는 움직임이 나오자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해온 일부 위원들이 소득대체율 부분 삭제를 요구하며 반발했다.
위원 2명은 결국 전날 위원직을 사퇴하며, 대안 보고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소득대체율 부분이 빠진 공청회 보고서엔 노후소득보장 방안으로 국민연금 지급보장 법제화, 출산·군복무 크레딧 확대, 보험료 지원 확대 등이 담겼다.
위원회 다수의 의견이었다고는 하지만 보장성 강화 방안을 미흡한 데다 그 과정에서 잡음까지 노출한 것은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전날 참여연대는 정책 요구안을 통해 "(크레딧 확대 등으로) 가입기간을 늘리는 방안은 군복무나 출산을 이미 경험한 가입자 다수에게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며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번 보고서에 기금운용수익률 상향이 담긴 것을 놓고도 실현 가능성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 개혁안은 10월에…"안을 좁혀가도록 노력할 것"
복지부는 이번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날 공청회를 비롯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후 오는 10월 국회에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제출한다.
법에 따라 5년에 한 번씩 제출해야 하는 이 종합운영계획이 정부 국민연금 개혁안의 초안 격이다.
재정계산위원회가 구체적인 안을 내놓아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정부의 개혁안 마련도 비교적 수월하겠지만, 이번 공청회 보고서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전 정부에선 단일안이 아닌 4개 안을 병렬적으로 제시한 개혁안을 내놓았다가 결국 개혁이 흐지부지된 바 있는데, 이번에도 복수안을 제시할 경우 개혁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올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스란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정부로서는 고민되는 측면이 있다"며 "심층면접 등 다른 의견수렴 절차와 국회 논의 등 살펴보면서 (안을) 좁혀가는 노력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7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도 변수다.
국민연금 개혁은 가뜩이나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데 '더 받기' 없이 '더 내기'만 있는 개혁안을 총선 코 앞에 내놓기는 큰 부담이다.
이번 위원회가 제시한 보험료율 인상 폭 연 0.6%포인트는 전 정부 복수 개혁안에 담겼던 인상 폭(5년마다 1%포인트)보다 가파르다.
이스란 국장은 "개혁에 있어 합리성도 중요하지만 국민 설득과 수용성도 중요한 과제"라며 "소득대체율 부분도 언급이 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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