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에 갇혀 있을 건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나는 제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이하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위원회는 5년 주기로 국민연금 재정을 진단하고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개혁안을 마련한다. 마침내 9월 1일, 위원회가 공청회를 연다. 지난 9개월 회의를 거쳐 마련한 연금개혁안을 제시하고 시민의 의견을 듣는 자리이다.
그런데 공청회가 열리기도 전에 논란이 컸다. 일부 위원이 회의에서 퇴장하여 별도의 보고서를 낼 수 있다는 기자간담회까지 열었고, 나아가 보고서 일부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편향적인 해석이 무비판적으로 덧붙여졌다. 한국의 연금개혁 과제가 고난도이고, 각 논점이 복잡하기에 공청회 이후 질서 있는 토론을 기대했던 입장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보장성 vs 재정안정론' 구도는 적절한가?
이제 공청회를 계기로 연금개혁 논의가 생산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편향적 주장은 연금개혁의 방향을 '보장성 vs 재정안정론'으로 대립시키고, 위원회 보고서가 보장성을 제외했다는 비판이다. 보장성과 재정안정은 연금개혁의 두 목표로서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입장에 따라 더 무게를 두는 방향이 있겠지만, 연금개혁은 기본적으로 두 목표의 조합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한국 연금개혁 논의에서 왜 끊임없이 '보장성론 vs 재정안정론' 대립구도가 형성될까? 나는 주요 노동, 시민단체들과 일부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지닌 협소한 연금개혁 시야가 핵심 원인이라고 판단한다. 여기서 '협소함'은 연금개혁에서 보장성을 오지 국민연금에 한정해 보는 시야, 심지어 국민연금 제도의 여러 보장성 중에서도 오로지 소득대체율 인상에 집착하는 시야를 의미한다.
이들은 한국의 노인빈곤이 심각하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하자고 주장한다. 중간층 이상도 현재의 국민연금으로는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소득대체율을 올리자고? 아니다. 연금개혁에서 보장성은 그렇게 단순한 주제가 아니며 의도와 다르게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에 우리가 유념해야 할 세 가지를 제시한다.
노후소득보장은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의 연금 삼총사로
첫째, 노후소득보장의 시야를 국민연금에 한정하지 말자. 이미 한국에는 국민연금 외에 기초연금, 퇴직연금이 법정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후소득보장도 국민연금을 넘어 연금 삼총사, 다층연금체계를 활용해야 한다.
2022년에 국민연금은 642만 명의 수급자에게 총 34조 원을 지급했다. 기초연금도 624만 명의 노인에게 총 20조 원을 지출했다. 기초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그리 작은 규모가 아니며, 2011년 46.5%에 달했던 노인빈곤율을 2021년 37.6%로 낮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퇴직연금은 고용주가 전액 재정을 책임지는 제도이다. 아직 역사가 짧고 이직 시 중간해지가 가능해 연금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작년 보험료 수입이 57조 원으로 국민연금에서 노사와 지역가입자가 내는 총 보험료 수입 56조 원보다도 많다. 이후에도 퇴직연금 보험료 수입은 증가 속도가 빨라 국민연금을 더욱 앞지를 전망이다. 이렇게 상당한 재정규모로 운영되는 법정 연금제도가 둘이나 더 있음에도 이를 제외하고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소득보장을 논의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
특히 국민연금은 급여구조에서 격차를 지닌 제도이다. 노동시장의 지위를 반영하기에,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이 국민연금으로 적절한 노후소득보장을 준비하기는 어렵다. 공적연금에서 '평균소득자'가 주는 착시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기초연금이 도입된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노인에게 정액 급여를 지급하지만, 앞으로 저소득 노인에게 더 많은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노인빈곤 개선에 더 효과를 낼 수 있다. 중상위계층 역시 국민연금만으로는 은퇴 전 소득의 적정비율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성숙시켜 가야 한다. 나아가 1년 미만 고용자도 퇴직연금을 적용해 제도 혜택을 모두가 누리게 해야 한다. 이처럼 각 계층별로 적정 노후소득보장을 도모하려면,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모두 노후 벗으로 삼아야 한다. 연금 삼총사와 함께 가야 한다.
소득대체율에 한정된 국민연금의 보장성 시야
둘째,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소득대체율에 한정하지 말자. 국민연금 보장성이 불충분한 이유가 현행 40%의 명목 소득대체율이 낮아서가 아니다. '짧은 실질 가입기간'이 핵심 원인임을 직시해야 하며, 그렇다면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도 '가입기간 확대'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급여는 법정 소득대체율 수치에 가입기간을 곱하여 산출된다. 현재 평균소득자가 40년 가입하면 40% 소득대체율을 제공하므로, 1년 가입할 때마다 소득의 1%가 급여로 쌓인다. 이를 연금제도에서는 '지급률 1%'라고 부른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한다는 것은 지급률을 1.25%로 상향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을 의미한다.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쪽은 2021년 OECD 연금보고서에 한국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1.2%이고, OECD 평균은 42.2%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왜 한국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은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OECD 보고서에서 소득대체율은 지급률에 완전가입기간(22세 신규 가입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전체 기간, 한국은 22세에서 59세까지 38년)을 곱하여 계산된다. 즉 지급률과 가입기간이 변수이다.
국민연금 설계에서 평균소득자의 지급률 1%는 국제 평균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결국 OECD 연금보고서에서 한국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낮게 나오는 핵심 이유는 국민연금 하후상박 급여 특수성으로 인한 국민연금 평균소득자(A값 소득자)와 OECD 평균소득자(상시고용 평균소득자)의 지급률 차이, 법률이 정한 의무가입기간의 차이(22세 가입자 기준 한국 38년, OECD 평균 44.1년)에 있다. 연금개혁 논의에서 한국 공적연금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국제기구 보고서 수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결코 연금개혁 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 주제에 대해선 <프레시안> 2월 14일 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낮다? 하후상박 특수성 이해 필요' 참조)
특히 짧은 가입기간은 노동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연금취약집단에서 주로 발생한다. 출산으로 소득이 단절되는 여성, 실업기간 소득이 없어 가입하지 못하는 실업자, 군복무로 가입이 어려운 군인 등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처럼, 우리도 출산크레딧, 실업크레딧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보장 수준이 너무 낮다. 출산크레딧의 경우 우리는 둘째 자녀부터 12개월을 부여하지만 유럽은 첫째 자녀부터 대략 2~4년을 제공한다. 이처럼 우리도 서구 수준으로 연금크레딧을 확대 강화하자. 그러면 연금취약집단의 가입기간이 늘어나고 연금급여도 높아질 것이다. 특히 보험료를 전액 본인이 부담하는 도시지역가입자를 위해서는 국가가 사용자 역할을 하여 보험료 절반을 지원하자. 그러면 프리랜서, 자영업자들도 국민연금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고 가입기간도 늘어날 것이다.
공청회 이전에 언론들은 위원회가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를 제외"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정말 그런가? 소득대체율을 인상하지 않으면 국민연금에서 보장성 강화는 없는 것인가? 위원회는 저소득 도시지역가입자의 보험료을 지원하고, 다양한 연금크레딧을 늘리며, 특수고용노동자도 사업장 국민연금에 적용하자고 제안한다. 급여에서는 유족연금, 장애연금도 확대하자고 한다. 모두 가입기간을 늘리거나 급여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다. 특히 위원회는 의무가입연령 상향도 제시한다. 2022년 60대 전반기 연령대의 고용율이 62.6%로 전체 평균 68.5%에 근접하니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과제이다. 현재 만 59세까지인 의무가입연령을 64세까지 상향하면 소득대체율 5% 인상 효과가 발생한다.
소득대체율 50%가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이라면, 가입기간을 늘리거나 급여제도 수준을 높이는 개혁을 '실질 소득대체율 강화'라고 부른다. 국민연금 제도 안에서 보장성을 보는 시야 역시 확대되어야 한다. 이제 실질 소득대체율에 주목하자.
노인빈곤 개선 위해 소득대체율을 올리자?
셋째,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의 효과를 직시하자. 이는 내가 어느 계층, 어느 세대의 눈으로 연금개혁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물론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모든 가입자의 연금액이 늘어난다. 누구의 급여가 가장 증가할까? 국민연금은 내부 재분배 급여가 있더라도 급여총액은 노동시장 중심부 가입자일수록 많다.
[그림 1]을 보면, 소득대체율을 50% 올릴 경우 200만 원 이하 소득 가입자는 인상액이 10만 원 안팎이지만, 중상위 소득자는 가입기간도 길기에 30만 원 안팎으로 증가한다. 노인빈곤이 심각하다면서 소득대체율을 인상하자는 논리가 엉성한 이유이다. 정작 저소득 가입자에게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평균소득 미만 계층에게는 인상액이 많지 않은 반면 미래 재정부담은 더욱 가중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도 국민연금은 기여와 급여 불균형이 큰 제도이다. 평균소득자 기준 납부한 보험료 총액 대비 약 두 배를 급여로 제공한다. 만약 수지균형만큼 기여한다면 필요 보험료율이 약 20%이어야 하건만 우리가 내는 건 9%이다. 소득대체율 50%로 인상하면 여기에 상응하는 필요보험료율은 25% 수준으로 뛰어 오른다.
이에 현세대가 지금도 재정책임을 다하지 못하면서 미래 재정부담을 더 증가시키는 건 무책임하다. 국민연금에서 수지균형을 따지는 건 공적연금의 세대 간 연대를 무시한 논리라는 비판 역시, 20세기 인구보너스 시대를 지나 인구오너스로 접어드는 21세기 인구 조건을 무시한 주장이다.
물론 소득대체율 인상을 강조하는 쪽도 보험료율 인상을 말한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고 보험료율도 13%로 올리는 방안이다. '더 내고 더 받으니' 공평한 제안일까?
[그림 2]에서 보듯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에 상등하는 보험료율은 약 20%이니, 소득대체율 10% 당 보험료율이 5%이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위원회가 장기 재정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재정목표는 '70년 추계기간 기금 유지'이며 이를 위한 필요보험료율은 대략 20% 수준이다. 이는 추계기간 동안 기금을 유지하여 미래 높은 부과방식 비용률에 대응하고(기금 없이 보험료로만 충당할 경우 2078년 35%에 달함), 장기적으로 수지균형도 도모하는 보험료율 수준이다. 이에 위원회는 현행 9%에서 부족분 약 11%의 수입을 마련하기 위하여 보험료율 인상, 수급연령 상향, 기금수익 제고 등 다양한 조합을 제시한다. 모두 어려운 과제이지만, 장기 재정균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데 소득대체율 인상 쪽이 제안하는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은 '소득대체율 50% - 보험료율 13%'이다. 보험수리적으로 보험료율 4%는 소득대체율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결국 위원회의 본 과제인 현행 국민연금의 재정불균형은 그대로 방치한다.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반론은 있다. 보험료를 넘어선 '다양한 재정방안'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거의가 현실성도 약하고 내용도 추상적이다. 다양한 증세, 보험료 부과기반 확대, 기금의 사회적 수익 등을 제시하는데, 결국 조세부담률 상향이라는 일반적 과제의 반복이고, 보험료 기반 확대도 '분배 GDP' 구성에서 어떻게 얼마나 가능할지를 제시하지 않으며, 기금의 사회적 수익이 국민연금 재정균형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무심하다는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서는 너무도 빈약하다.
그럼 국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느냐고? 아니다. 국민연금에서 요구되는 국고지원은 보험료 부족분용이 아니라 연금취약층 지원을 위한 재정이다. 다양한 크레딧을 대폭 강화 확대하고, 앞으로 도시지역 가입자의 보험료도 절반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당연히 저소득 노인을 두텁게 지원하는 기초연금의 재원도 국가 몫이다. 대부분 서구 나라의 연금 국고지원도 이러한 구조를 지닌다. 초고령사회에서 의료비 지출도 상당부분 국가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언제까지 소득대체율에 갇혀 있을 건가?
이번 공청회 이후 연금개혁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이제는 생산적인 논의 지형이 만들어지기 바란다. 무엇보다 연금개혁에서 보장성과 재정안정을 대립시키지 말자. 이는 자신의 시야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에 갇혀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시야를 다층연금체계로 넓혀야 한다. 그래야 계층별로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할 보장성 전략을 설계할 수 있고, 국민연금에선 미래세대와 공존하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할 수 있다.
연금개혁 논의에서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쪽이 진보진영의 일부 사회복지학자, 양 노총과 참여연대 등 노동·사회단체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소득대체율만 이야기해야 하는 때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까지 일반 시민에게 공적연금은 국민연금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2008년에 기초연금이 시행되었고, 퇴직연금도 2005년 도입되었다. 이제 연금 삼총사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국민연금, 그것도 소득대체율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건 너무도 '올드'하다. 아직도 2007년 연금개혁 이전 시기에 시야가 머물러 있다.
진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는 역사적 흐름이다. 현행 체계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 강화에 힘을 쓰는 노선이다. 다가올 미래에 진취적으로 대응하는 이념이다. 그런데 유독 연금분야에서는 거꾸로 경향이 발견된다. 왜 일부 진보론자, 단체들은 확장된 연금제도 지형을 직시하지 않는가? 왜 연금취약층의 실질적 노후소득보장 개선에 주력하지 않는가? 왜 노년부양 부담이 훨씬 무거울 미래세대를 생각하지 않는가? 진보를 표방하지만 실제 행보는 반대쪽으로 향하는 '진보 연금개혁의 역설'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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