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진 손목·말린 어깨… 일의 기억을 새기는 ‘몸’[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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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째 귀금속 작업장에서 일하는 세공사 김세모 씨의 손목은 휘어 있다.
"몸은 일의 기억을 새기는 성실한 기록자"라는 인식에서 시작한 책이다.
수십 년간 일을 몸에 붙여온 이들, 한자리에 붙박여 같은 일을 해온 '베테랑' 13인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몸'을 살폈다.
높은 건물의 벽면에 매달려 일하는 '로프공' 김영탁 씨는 "아프면 일을 못 한다"며 등산 등 몸 쓰는 취미를 모두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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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지음│한겨레출판
33년째 귀금속 작업장에서 일하는 세공사 김세모 씨의 손목은 휘어 있다. 휠이라 부르는 둥근 기계 날에 금반지를 가져다 대고 광을 내는데, 빠르게 돌아가는 휠의 회전력을 오롯이 손가락 서너 개로 버텨내야 하기에 손목은 휘고 어깨는 말려들어 간다. “뜀박질도 할 수 없는 몸”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20년 경력의 안마사 최금숙 씨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항상 부어 있으며 손가락 뼈마디는 눈에 띄게 굵다. 세신사 조윤주 씨의 손은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한 끝에 하얗게 벗겨지고 갈라졌다.
“몸은 일의 기억을 새기는 성실한 기록자”라는 인식에서 시작한 책이다. 수십 년간 일을 몸에 붙여온 이들, 한자리에 붙박여 같은 일을 해온 ‘베테랑’ 13인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몸’을 살폈다. 통증이 자세를 만들고, 자세는 체형을 만든다. 그렇게 베테랑들은 젊은 시절, 아직 노동을 거치지 않았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몸을 안고 살아간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몸’은 신체만 뜻하지는 않는다. ‘태도’의 의미도 갖는다. 어린 말을 돌보고 훈련시키는 마필관리사 성상현 씨는 말이 놀라지 않게 움직임을 최소로 줄여 잰걸음을 한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으며 말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의 몸무게를 유지한다. 조산사 김수진 씨는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들에게 연락이 올지 몰라 자면서도 귀를 열어둔다.
13명의 베테랑은 하나같이 “하다 보니 베테랑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그것이 주, 월, 연 단위로 이어져 ‘어느덧 돌아보니 10년을 일했네’ ‘30년이 됐네’ 하는 거다. 몸이 닳는 그 시간이 베테랑을 만들어냈다. “베테랑이 된다는 것은 몸에 손상을 입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고 저자는 적었다.
그러면서 작가는 “내가 그들에게서 본 것은 어떤 ‘가짐’들”이라고 이야기한다. 몸가짐, 그리고 마음가짐. 높은 건물의 벽면에 매달려 일하는 ‘로프공’ 김영탁 씨는 “아프면 일을 못 한다”며 등산 등 몸 쓰는 취미를 모두 없앴다. “놀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면 이거 못 한다”고 말하는 반백 년 경력의 어부, 박명순 선장의 세계는 바다뿐이다. 자신만의 원칙이 무엇이건, 모두 견디고 버티고 인내하며 꼴을 갖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다. 거창하게 베테랑을 꿈꾸진 않더라도 책을 계기로 나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은 어떠한지 살펴보게 된다. 지금 어떠한 꼴을 갖춰가고 있는지 말이다. 368쪽, 2만 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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