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학으로 빚은 ‘본체어’… 기술을 넘어 생명을 불어넣다[최경원의 세상을 바꾼 디자인]

2023. 9. 1. 0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최경원의 세상을 바꾼 디자인 - (29) 요리스 라만
컴퓨터 활용 독특한 디자인
뼈, 가장 가볍고 튼튼한 구조
유기적인 자연물처럼 표현
곤충 모양의 테이블 ‘브리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느낌
휘어진 알루미늄판으로 만든
역동적인 콘솔은 하나의 조각
3D 프린터로 구현한 의자는
선입견 뛰어넘어 미학적 감흥
본체어 Bone chair, 2008

디자이너라면 대체로 첨단의 기술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네덜란드의 산업 디자이너 요리스 라만은 그중에서도 특히 최첨단 기술 활용에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디자이너다. 보통 앞서 나간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면 자신의 개성 있는 디자인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 기술에 디자인이 가려져 버리는 것이다. 새롭지만 건조하기 짝이 없는 기술을 사용해서 환상적이고 흥미진진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그의 솜씨를 보면 현대판 마술사처럼 보인다. 그의 디자인엔 기술이 환상에 가려진다. 보이는 것은 흥미진진한 꿈이고, 세상을 사유하는 철학으로 풍성하다.

◇본체어 Bone chair, 2008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본체어는 이름처럼 뼈같이 생겼다. 이런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활용한 첨단 생산기술이 필요하다. 복잡하면서도 흥미를 이끄는 의자의 모양을 보면, 왜 아름다운 형태나 기능적인 형태가 아니라 하필이면 뼈처럼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기술은 이런 흥미와 호기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에 그친다. 그의 디자인은 기술을 활용해서 어떤 메시지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하는 게 좋다. 뼈는 신체를 가장 경제적으로 견고하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소한의 물질적 자원으로 가장 가볍고 튼튼한 구조를 이룬다. 뼈의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니 아마 일반적인 모양의 의자에 비해 이 의자는 아주 튼튼할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기능주의 미학에서는 이런 구조적인 견고함을 기계적 메커니즘 형태로 표현했다. 금속성의 번쩍이는 기계적 구조와 재료를 통해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강해 보이게 만드는 기계미학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런데 요리스 라만의 이 의자에서는 그런 첨단의 기계적 형태가 아니라 뼈와 같은 유기적인 형태 이미지로 그것을 대신한다. 금속에 비해 뼈는 견고함에 있어선 비교되지 않는다. 견고함을 표현하기 위해 뼈 모양으로 의자를 디자인했다고 한다면 그리 디자인이 잘됐다고 볼 수 없다. 요리스 라만은 의자를 견고해 보임과 동시에 유기적인 자연물인 것처럼 표현했다. 근본적으로 기계미학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미학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 의자를 만들기 위해 첨단 기술을 사용했지만 디자이너 요리스 라만은 그런 기술의 기계적이고 딱딱한 물질성을 배제하고 있다. 사용하는 기술이 가진 이미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미학적 표현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의자의 재료로 분쇄된 본차이나를 쓰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작기술을 중심에 놓고 그의 디자인을 설명하는 것은 대단한 착오이다.

그는 항상 최첨단의 기술에 입각하고 있지만, 그의 목적은 기술을 초월해 자연을 구현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산업디자이너 선배들과는 완전히 반대의 미학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본체어에는 근육과 피부가 더해지면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생명감이 느껴진다.

흔들의자 구조를 가진 본체어, 2008

◇흔들의자 구조를 가진 본체어, 2008

이렇게 한번 디자인의 방향이 잡히니까 여러 가지 응용 디자인이 만들어진다. 흔들의자와 같은 다리를 가진 본체어는 앞의 기본형 본체어를 보다 흥미롭게 발전시켰다. 유기적인 구조의 의자가 앞뒤로 흔들흔들 움직일 수 있으니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본체어, 2007

알루미늄으로 이런 복잡한 구조의 의자를 만드는 것은 플라스틱보다 더 만들기 어렵다. 보기엔 선사시대 동물 뼈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첨단 기술로 만들어졌다. 딱딱한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다가오며, 이것은 서양 문화권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뼈 구조로 디자인된 선반 브랜치 Branch, 2010

◇뼈 구조로 디자인된 선반 브랜치 Branch, 2010

같은 방식으로 디자인된 선반은 의자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나무 같기도 하고 외계의 어떤 생명체 같기도 하다. 역시 무생물이 아니라 생명체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디자인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유기적인 모양의 테이블 브리지 Bridge, 2010

◇유기적인 모양의 테이블 브리지 Bridge, 2010

테이블인데 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탁자도 무생물이 아니라 곤충 같은 생명체처럼 보인다.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은 생동감이 인상적이다. 요리스 라만의 유기적인 디자인은 그의 명성을 처음 세계적으로 불러일으켰던 장식적인 라디에이터에서 먼저 시도됐다.

◇식물의 장식 조각처럼 보이는 라디에이터, 2007

이 라디에이터는 난방을 위한 아주 기능적인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로코코 건축 일부를 화려하게 장식한 듯한 모양이다. 일상적으로 사용해온 장치가 이렇게 고전주의적 장식으로 디자인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 디자인을 보고 세계의 수많은 디자이너가 큰 감명을 받았다.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선입견을 먼저 제거해야 하고, 고전주의나 역사에 대한 교양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그런데 이 디자인에서 이미 요리스 라만은 물질을 넘어 유기적인 생명에 대한 미학적 표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느낄 수 있다. 라디에이터는 이미 장식을 넘어 식물의 살아 숨 쉬는 생동감이 잔뜩 표현돼 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콘솔 보르텍스 Vortex, 2014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콘솔 보르텍스 Vortex, 2014

휘어진 알루미늄판으로 만들어진 콘솔은 그냥 하나의 조각이라고 봐야 하는 형태다. 벽에 붙여서 사용하는 기능적인 콘솔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모양이다. 가구로서 콘솔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콘솔이라는 가구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놀라운 예술성을 가질 수 있는지 실감케 한다. 알루미늄판을 이렇게 유기적인 모양으로 휘게 하려면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런 기술은 이런 획기적인 모양에 의해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일상생활을 예술적으로 환원시키는 그의 뛰어난 디자인 능력이 빛을 발할 뿐이다.

3D 프린트 기술로 만들어진 의자

◇첨단의 3D 프린트 기술로 만들어진 의자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게 분명해 보이는 이 의자는 의자의 기본적인 본질을 많이 넘어서 있다. 전체가 하나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나, 구멍이 숭숭 뚫린 구조로 만들어진 것, 의자의 밑부분이 둥글게 디자인된 것 등은 의자에 대한 선입견을 뛰어넘는다. 이런 구조들이 대단한 미학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요리스 라만은 3D 프린터로 독특한 형태의 디자인을 하는 첨단 기술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기술을 활용해 유기적인 미학을 구현하는

매우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디자이너인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디자인은 기술을 통해 기술을 넘어서는, 기계를 활용해 기계를 넘어서는 의지와 개념이 돋보인다. 그의 이런 실험을 통해 디자인은 미학적으로 한층 더 승화됐다. 향후 기술을 넘어 새로운 미학적 경향을 정초(定礎)시킬 수 있는 디자이너다. <끝>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 요리스 라만 Joris Laarman(1979∼)

- 1979년 : 네덜란드 보르쿨로에서 출생

- 2003년 :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 수석 졸업

- 2004년 : 아니타 스타(Anita Star)와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요리스 라만 랩 설립

- 2007년 : ‘열파 라디에이터’로 국제적인 인정

- 2013년 : 북극을 지키자(Save the Arctic) 캠페인을 위해 그린피스와 협력, 북극 바다 밑바닥에 타임캡슐 설치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