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림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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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덴마크에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아직 못 갔어요. 대신 에든버러에 다녀왔어요.
드라마 <기적의 형제> 끝나고 다녀오신 거죠? 드라마는 어땠어요?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드라마 주연은 처음이라 모르는 것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간식 같은 걸 챙겨주시면 ‘나 응원받고 있네’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를 항상 반겨주시고 응원해주셨던 기억이 크게 남아 있어요.
첫 주연이라니 의미가 컸겠습니다.
오디션에 됐을 때 뭔가를 해냈다는 기쁨이 되게 컸는데 준비하고 촬영하면서 점점 부담이나 책임감의 무게를 느꼈어요. ‘잘하고 있나’라고 걱정도 많았고요. 현장에 딱 가면 그런 걱정을 할 새가 없어요. 감독님이 되게 멋있으시거든요. 항상 저를 믿어주시고 이끌어주시는데 그에 맞춰서 하다 보니까 마지막 촬영이었어요.
<기적의 형제>의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스릴러, 휴먼, 우정 등 다양한 이야기가 뭉쳐 있어요. 제가 맡은 현수는 그 이야기를 파헤쳐가는 열정적인 형사예요. 막무가내로 보이지만 나름 계획도 있고요. 마음이 많이 갔던 인물이에요.
평소 자기 모습과도 비슷한가요? 열정이 있나요?
제가 취미에 몰두하는 걸 좋아해요. 레고도 그렇고. 그런 모습이 현수에게도 많다고 생각해서, 저와 비슷할 것 같았어요. 현수도 취미 생활을 한다면 나랑 비슷한 취미를 즐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오디션에 떨어져본 적도 있어요?
그럼요. 떨어진 적 있죠. 예전에는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역할이) 내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해요. 부족해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니까 자존감이 너무 낮아지더라고요. 사고를 바꿔보려 했어요. ‘이 인물은 나와 안 맞는 것 같아. 다음의 내 것을 찾으러 가볼까’ 이렇게요.
강해진 걸까요?
네.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전에는 작은 일에 흔들리고 생각이 많은 편이었어요. ‘오디션 떨어졌어. 난 안 되나 봐.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뭔가 부족한가 봐’ 생각했고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이 일과 안 맞는구나’ ‘나 같은 사람은 배우를 할 수 없나’라고도 생각했어요. 지금은 생각이 전환됐어요. 뭐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지.
본인이 생각하기에 배우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무조건 MBTI가 E여야 하고, 좀 화려하고, 뭔가 저 우주 너머에 있을 것 같은 이미지를 풍기고 저랑 완전 반대일 것 같았어요.
제게는 배우님도 약간 우주 너머에 있는 느낌인데요.
저요? 저 약간 친숙하지 않아요? 저는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느낌이에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I가 대세래요. I인 배우도 많대요. 그때 또 생각이 바뀌었어요.
스스로를 친숙한 이미지라고 하셨는데, 배우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아빠랑 영화 보는 걸 좋아했어요. 같이 영화관 가는 것도 되게 좋아했고요. 그래서 ‘스크린 안에 나도 나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시작이었어요. 영화가 궁금해. 이거 어떻게 만들까. 그리고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배우잖아요. 그게 멋있고 저도 궁금했어요. 저 안에 들어가보고 싶었어요.
이제 영화라는 세계 안에 들어오셨어요. 들어와보니 어떠세요?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분들의 땀과 열정이 모인다는 걸 현장에서 엄청 느껴요. 제가 촬영장에 오래 머물러 있던 최초의 영화가 <드라이브 마이 카>였어요. 그때 보이기 시작했어요. 카메라 감독님, 조명, 의상, 이런 게 다 너무너무 신기했어요. 이분들이 각자 자리에 있고 나는 연기를 해서 영화가 완성되는 것이요. 그때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영화 제작 현장을. 인터뷰도 하고 싶었어요. ‘왜 카메라 감독님이 되고 싶었어요?’처럼요.
박유림이 좋아하는 영화 7편
아빠와 손잡고 가서 같이 봤던, 내 추억의 영화. 어릴 때는 마법 영화인 줄 알았는데 나이 들고 보니 사람들의 관계나 마음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도 전편을 다 본다.
데몰리션
헤드폰을 쓰고 미친 듯이 춤추는 장면을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걸 누군가 대신 해준 느낌. 나를 분해해서 조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영화.
버드맨
개봉 한참 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뭐지? 하고 생각하다 길을 잃었을 때 만난 영화다. 진짜 많이 울었다. 큰 해방감과 위로를 주기도 했다. 여운이 길었던 영화.
나를 찾아줘
스릴러와 심리물 특유의 반전과 긴장감을 좋아한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도 좋아한다. 너무 좋아서 ‘이 영화를 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다.
만추
주인공들의 눈빛이 너무 좋다. 구구절절하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눈빛을 나누는 시간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 여운이 좋다.
무간도
누아르를 좋아한다. 한순간의 무언가로 인생이 바뀌는, 그런 관계가 얽히는 게 너무 재미있다. 양조위 배우도 좋고.
시카리오
한창 넷플릭스의 <나르코스>에 빠져 있을 때 본 영화. 현실감과 복잡한 관계, 긴장감이 너무 좋았다. 어떻게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배우 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를 업그레이드하는 거요. 저는 경험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배우라는 직업이 그 마음에 불을 지펴요. 배우 일을 하면 평상시에 겪지 못하는 걸 많이 겪어요. 그런 경험을 하며 저를 알아가는 게 재미있어요.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알아가면서 저를 꺼내다 보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재미있어요.
<발레리나>를 출연하면서 자신의 어떤 점을 깨달았나요?
‘내가 발레리나가 될 수 없지만 나는 최대한 발레리나가 되어야 하는데 과연 잘했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제가 완벽하게 하고 싶었나 봐요.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제가 그때 갖고 있던 우물은 딱 정해져 있던 거죠. 나는 이 우물을 다 퍼 날랐는데 뭔가 더 채우고 싶은 마음이 엄청 들었어요. 그래서 혼자 대기실에 있을 때 눈물이 났어요. 더 잘하고 싶어서. 더 잘하고 싶은데 나는 아직 이것밖에 안 됐구나, 나는 그때 쓸 수 있는 무기를 다 꺼냈는데. 그런데도 <발레리나>라는 작품을 더 잘하고 싶고 민희 연기를 더 잘하고 싶고, 이런 불같은 마음이 제게 있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기적의 형제> 때는요?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꼈어요.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는데 저는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뒤만 보다가는 다른 사람들과 멀어질 것 같아 정신 차려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앞을 보려 했는데 어느 날 어떤 스태프분께서 “유림, 되게 많이 단단해졌다”고 해주셨어요. 강해졌다고. 확실히 강해지고 있구나, 작품을 해나갈수록 뭔가 배우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영화나 화보 촬영을 할 때는 어떻게 집중하세요?
문을 나서기 전에 다짐해요. ‘나가는 거다. 나 지금 뭘 해야 하니까’ 같은 식으로요. 일할 때 신경이 분산되지 않도록 전날 준비도 다 해요. 손톱을 깎아요. 양말 같은 것도 준비해두고요. 속으로 되뇌기도 해요. 긴장해서 뭔가 놓칠까 봐. ‘집중하자. 집중하자. 유림 유림 집중하자’처럼.
오늘도 손톱이 짧네요. 손톱 깎으셨어요?
네, 저 손톱 기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평소에 네일도 안 받으세요?
즐겨하지 않아요. 최근에 진짜 오랜만에 매니큐어를 한 번 발랐어요. 제작 발표회 앞두고 의상에 맞춰 단정하게 하려고요. 그런데 벗겨지는 게 너무 지저분해서 다 지웠어요.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때는요?
그때도 받았어요. 생각도 못하고 드레스를 피팅하는 등 준비하고 있었는데 칸에 가기 며칠 전에야 손가락에 느낌이 온 거예요. 100%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뭔가 했더니 내 손톱과 발톱이었어요. 그때 깨닫고 다행히 가기 전에 받았어요.
“저 칸 영화제 갈 거니까 신경 써서 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웃음) 그런 이야기 안 하고, 어떤 느낌으로 받고 싶다고 하고 색만 이야기했어요. (칸에 간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니 좀 쑥쓰러워요.
그렇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도 멋있고, 하마구치 류스케도 명감독이고, 캐스팅도 너무 좋았고, 반응까지 아주 좋은 작품이었잖아요. 내 힘으로 내가 좋은 곳에 가게 됐고요.
그걸 제 입으로 ‘알아봐주세요’라고 하지는 못해요. 먼저 알아봐주시면 감사하다고는 하지만요. 저는 조용한 편이에요. 지하철도 타고 다니고. 저 회사 갈 때도 대중교통 타고, 운동 갈 때도 버스 타고 다녀요.
이런 질문을 여배우께 할 줄은 몰랐는데 기본요금 얼마인지도 아세요?
1천2백50원에서 올랐나요? 1천5백원으로 오른다는 기사를 봤어요(서울 시내버스 기본요금은 8월 12일 오전 3시 첫차부터 1천5백원으로 올랐다. 지하철 기본요금은 1천2백50원이다. 박유림이 맞았다).
Editor : 박찬용 | Photography : 김영준 | Stylist : 김경선 | Hair : 강현진 | Make-up : 최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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