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노동자·빈민… 서양시각 벗어나 저마다의 페미니즘을 외치다[북리뷰]

유승목 기자 2023. 9.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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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feminism)이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현재의 단편적이고 선형적인 페미니즘 서사는 빈곤 여성들은 복지권을, 흑인 여성은 인종차별, 여성 노동자는 동일노동과 동일임금, 안전한 일터에 대한 요구를 아우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함께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는 흑인 페미니스트이자 성소수자였던 오드리 로드의 말처럼 페미니즘 다중우주(Multiverse)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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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들
루시 딜랩 지음│송섬별 옮김│오월의 봄

페미니즘(feminism)이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고등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 선구자’가 떠오르곤 한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톺아보면 그 중심에 유럽과 미국이라는 서구사회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페미니즘을 파악하고 이해해 온 방식인 ‘물결’ 서사가 대표적이다. 19∼20세기 여성참정권운동을 중심으로 한 제1물결, 1960∼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여성해방운동이 등장한 제2물결, 그리고 21세기 여성 내부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는 제3물결까지 페미니즘이란 사상의 기원에 대한 서술 방식은 지난 100여 년간 서구사회 여성 권리 신장 역사와 맞닿아 있다.

여기서 물음표가 생긴다. 페미니즘이라는 담대하고 거대한 사상의 구성원이 지나치게 제한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불평등에 맞서 싸운 여성들의 이야기는 생소하지 않다. 예컨대 1792년엔 시에라리온에서 토착민 여성 가구주들이 투표권을 쟁취한 바 있고, 일본에선 히라쓰카 라이초(平塚雷鳥)가 1911년 여성들을 위한 잡지 ‘세이토’를 창간하고 여성을 태양으로 비유하며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운동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또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지역에선 여전히 여성참정권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이 진행 중이다. 기존 페미니즘 물결에서 타자화돼 있던 여성들도 페미니즘의 주연으로 손색없다는 뜻이다.

책은 유럽식 페미니즘으로 점철된 ‘페미니즘 물결’이라는 틀은 이 역사가 지닌 복잡성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를 두고 “초기 페미니즘 사상과 행동을 오독할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저자는 이름과 형태는 달라도 페미니즘의 역사는 전 지구적으로 다양하게 쌓여 왔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단편적이고 선형적인 페미니즘 서사는 빈곤 여성들은 복지권을, 흑인 여성은 인종차별, 여성 노동자는 동일노동과 동일임금, 안전한 일터에 대한 요구를 아우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의 페미니즘 인식에서 더 확산적인 개념인 ‘모자이크 페미니즘’을 제시한다. 페미니즘은 다양한 운동, 인물, 텍스트, 아이디어가 한데 모인 이야기인 만큼, 그간 파편화돼 있던 페미니즘 조각을 이어 붙여 커다란 모자이크를 완성해 나간다. “함께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는 흑인 페미니스트이자 성소수자였던 오드리 로드의 말처럼 페미니즘 다중우주(Multiverse)를 경험할 수 있다. 498쪽, 2만8000원.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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