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눈 멀고 거세까지 불사한 ‘집중의 달인들’[북리뷰]

2023. 9.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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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력 설계자들
제이미 크라이너 지음│박미경 옮김│위즈덤하우스
산속 은둔하던 중세 수도자들
깊은 명상으로 기억 제어하고
잠 안자려 의자서 밤새우며
욕망과 자기 자신 잊고 ‘몰입’
집중력 떨어져 고통받는 현대인
산만함 다스리기 위해 경청해야
중세 수도자들은 산만함을 정신적·신체적·사회적·문화적·우주적 관점에서 폭넓게 바라봤다. 사진은 신학자이자 신부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대부분 예전보다 지금이 더 산만해졌다고 느낀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휴대전화 등이 그 원인이다. 현대의 날파리들, 즉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환경도 문제다. 주의가 산만해지면 수면 부족, 사고 증가, 생산성 저하, 인간관계 약화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결과가 초래된다.

제이미 크라이너 미국 조지아대 역사학과 교수의 ‘집중력 설계자들’에 따르면, 집중력 문제로 고통받은 건 현대인만이 아니다. 한적한 산속에서 신앙생활을 즐기던 중세 수도자들도 떠도는 마음 탓에 고통받았다. 약 300년부터 900년 사이에 주로 활동했던 그들은 마음을 신과 연결한 채 집중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수도자들은 사악함의 핵심에 떠도는 마음이 있다고 봤다. 산만함은 악마의 유혹이고, 영적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신에게 다가가려면 반드시 무찔러야 할 적이었다. 집중력 문제를 이들처럼 깊게 고민하고 수련법을 개발한 이들은 역사상 드물었다. 저자는 교황청 바티칸도서관에서 수도원 도서관에 이르는 방대한 조사를 통해 산만한 마음을 다잡으려고 수도자들이 연구했던 방법들을 집약한 후, 여섯 가지로 나눠 우리에게 안내한다. 덕분에 이 책은 집중력을 미끼 삼아 중세 유럽 수도원 생활을 다룬 수준 높은 역사서가 됐다.

산만함과 싸우는 첫걸음은 세상과 거리 두는 일이었다. 속된 욕망을 자극하는 세상은 마음을 샛길로 이끄는 근원이었다. 수도사들은 모임을 중단하고 외출을 자제하며, 탑이나 독방에 머무는 등 신과 단둘이 있으려 했다. 가족과 친구를 버려둔 채, 깊은 산이나 허허벌판에 숨는 사람도 많았다. 아무리 애써도 잡념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4세기 초, 안토니우스와 파코미우스는 세상을 등지고 사막에 은둔한 이들을 모아 수도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곁에 있다면, 힘든 수련도 쉬울 수 있다. 수도자들은 영적 공동체를 꾸려 함께 생활하면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서로 격려했다. 말과 행동, 일과 휴식, 기도와 독서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이들은 엄격하고 세세하게 집중의 기술, 즉 수도원 규칙들을 다듬어 나갔다.

신체 단련도 빼놓을 수 없었다. 몸단장, 잠, 허기 등 수시로 마음에 찾아드는 욕구를 다스리지 않고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식욕, 성욕, 수면욕을 이기려고 수도자들은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의자에서 밤을 보내거나 굶주리지 않을 정도로 적게 먹는 건 기본이었다. 자신을 채찍으로 내려치고, 십자가에 못 박고, 거세하는 등 신체 훼손도 피하지 않았다. 이들은 몸을 단련해 마음을 바꾸는 전략, 즉 고행 기술을 발명했다.

마음을 제련해 몸을 길들이는 행위도 뒤따랐다. 독서였다. 책, 특히 성경은 산만함의 악마를 무찌르는 힘을 줬다. 수도자는 독서를 통해 욕구를 이기는 데 필요한 문구를 찾아냈다. 이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책을 읽다 눈이 멀거나 과로로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천천히 읽고 함께 읽고 다시 읽는 등 독서법도 개발하고, 활자 개량, 그림 삽입, 레이아웃 조정 등 읽으면서 산만해지지 않도록 여러 편집 기술도 고안했다.

기도나 독서 중에 수시로 떠오르는 기억은 산만함을 가져온다. 수도자들은 이를 막는 불멸의 기술을 개발했다. 명상이었다. 명상은 지식과 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구조화하는 기술이었다. 산만함을 이기기 위해 수도자들은 먼저 머릿속을 정돈해 필요한 기억만 남기고, 여섯 날개를 한 천사 모양을 상상한 후, 각 날개 아래 그 기억을 분류해 배치하는 식으로 명상했다.

집중을 유지하는 최고 기술은 생각에 관한 생각, 즉 자기 성찰이었다. 수시로 솟아나는 생각을 살핀 다음, 이를 분별해 적절히 다루는 일은 집중을 위해 극히 중요했다. 한 수도자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오른 바구니에 돌을 넣고,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왼 바구니에 돌을 넣는 식으로 성찰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수도자들은 세상을 잊고 자기 자신을 잊어, 집중 자체에 집중하는 온전한 몰입에 도달할 수 있었다.

수도자들은 집중의 달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월등한 집중을 유지했다. 무엇보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집중에 도움이 되는 습관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평정을 지키고 집중하는 힘은 세상 혼란 속에서도 인생 방향과 목적을 잃지 않고 좋은 삶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는 이유일 테다. 328쪽, 1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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