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112구·마무리 36구' 내일 없이 쓸 거면…22구 믿을맨은 왜 아꼈나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충분히 따라갈 힘은 있다. 월, 화, 수를 쉬었고, 이번 주 첫 경기다."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은 지난달 31일 잠실 LG 트윈스전을 앞두고 총력전을 예고했다. 지난달 29일과 30일 연이틀 비로 경기가 취소되면서 휴식일이었던 28일을 포함해 무려 3일을 연달아 쉬었기 때문. 두산은 올 시즌 내내 반드시 잡아야 하는 중요한 경기에는 필승조 김명신, 정철원, 박치국, 홍건희 등을 중용했다. 멀티 이닝을 맡겨서라도 가능한 위 4명으로 경기를 끝내는 게 이 감독의 승리 공식이었다.
선발투수 곽빈은 이 감독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6이닝 112구 3피안타 5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제구 난조로 4사구가 많아 투구 수가 많았지만, 그래도 구위는 좋아 어떻게든 꾸역꾸역 무실점으로 버텼다. 평소 이 감독이면 투구 수를 고려해 곽빈을 5이닝 만에 끊었겠지만, 이날은 112구까지 던지게 하면서 6이닝을 맡겼다. 3일을 쉬긴 했지만, 8월 들어 선발 2자리가 구멍이 나면서 불펜 과부하가 걸렸기에 곽빈을 가능한 길게 끌고 가면서 불펜 부담을 줄이는 쪽을 선택했다.
타선은 0-0 팽팽한 균형을 6회초에 깨줬다. LG 선발투수 케이시 켈리의 공을 공략하면서도 계속해서 잔루만 생산하고 있었는데, 6회초 2사 후에 양석환이 좌익선상 2루타를 치면서 물꼬를 텄다. 이어 김재환이 좌전 적시타를 쳐 1-0 리드를 안겼다. 곽빈은 6회말까지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시즌 11승 요건을 갖췄고, 이제 남은 3이닝을 불펜이 어떻게든 실점 없이 버티는 게 관건이었다.
이 감독은 7회말 2번째 투수로 김명신을 선택했다. 김명신은 1사 후 박해민에게 안타를 맞긴 했지만, 홍창기와 신민재를 연달아 2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흐름을 끊었다.
그러자 타선이 8회초 천금같은 추가점을 뽑았다. 양석환이 1사 2, 3루 기회에서 우익수 희생플라이를 쳐 2-0으로 달아났다.
7회까지 LG 타선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는 하나 2점차는 안심하기 부족했다. 올 시즌 LG는 두산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어떻게든 경기를 뒤집는 저력을 보여줬다. 두산은 올해 LG에 2승9패 절대 열세에 놓였는데, 이 과정에서 LG 선수단에는 '두산에 지고 있어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됐다. 마치 2018년 두산이 LG를 15승1패로 제압했던 것처럼 올해는 LG가 두산을 기세로 누르고 있다.
그렇다면 LG에 단 한번의 반격 여지도 주지 않을 투수 운용이 필요했다. 8회에 다시 김명신을 올린 이유다. 김명신은 선두타자 김현수를 좌익수 뜬공으로 돌려세웠고, 투구 수는 22개로 아직 여유가 있었다. 다음 타자 오스틴 딘을 한 차례 만나 삼진을 잡은 좋은 기억도 있었다. 오스틴까지 한 타자를 더 끌고 가게 하고, 2사 후 마무리 정철원을 붙여 아웃카운트 4개를 맡기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결과론이지만, 김명신을 아낀 대가는 컸다. 이 감독은 오스틴 타석을 앞두고 최근 필승조에서 페이스가 가장 좋지 않은 홍건희로 교체했다. 홍건희도 이날 전까지 오스틴 상대로 2타수 무안타 1삼진을 기록하긴 했지만, 8월 11경기 투구 내용이 9⅔이닝, 평균자책점 5.59로 나빴다. 7월까지 없었던 피홈런도 8월에는 2차례나 허용할 정도였다.
홍건희는 오스틴과 승부에서 결국 웃지 못했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 2구째 시속 147㎞짜리 직구를 가운데 몰리게 던졌다. 오스틴은 이 공을 여지 없이 받아쳐 좌중간 담장을 넘겼다. 2-1로 쫓기는 동시에 잠잠하던 LG 타선에 불을 붙이는 강력한 한 방이었다.
8월 들어 3번째 홈런을 얻어맞은 홍건희는 마운드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음 투수가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문보경과 오지환에게 연속 안타를 맞았다. 계속된 1사 1, 2루 위기에서 정철원이 공을 이어받았고, 박동원의 예상치 못한 번트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3루주자 최승민(문보경 대주자)이 득점해 2-2가 됐다.
정철원은 9회까지 공 23개로 아웃카운트 5개를 책임지면서 무실점으로 버텼다. 그러나 두산 타선은 9회초에도 10회초에도 추가점을 뽑지 못했다. 두산이 이기려면 11회말까지 아웃카운트 6개를 계산해야 했고, 이 감독은 정철원을 어떻게든 더 끌고 가는 쪽을 선택했다. 아직 마운드에 오르지 않은 불펜 투수가 벤치에 넘치는데도, 정철원 뒤에 1이닝씩 온전히 믿고 맡길 투수가 최소 2명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 운용이었다.
정철원은 10회말 선두타자 김민성을 포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하고, 오지환까지 상대하다 안타를 맞았다. 1사 1루에서 공을 이어받은 박치국은 박동원을 볼넷으로 내보냈다. 필승조 4명을 모두 소진한 상황에서 이 감독은 또 한번 교체를 선택했다. 5회 곽빈의 제구가 흔들릴 때 이미 한 차례 불펜에서 몸을 풀었던 이영하가 공을 이어받았다.
이영하는 1사 1, 2루에서 문성주를 좌익수 뜬공으로 잘 처리했다. 2사 1, 2루에서 박해민만 막으면 됐는데, 볼카운트 0-2로 유리하게 만들어 놓고 3구째 슬라이더를 선택했다가 좌익수 오른쪽에 떨어지는 끝내기 안타를 허용했다. 두산은 2-3으로 역전패해 3연패에 빠졌다.
박해민은 끝내기 안타 상황과 관련해 "이영하에게 강한 면이 있어 편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2스트라이크 될 때 포크볼이 실투로 왔는데, 파울이 되면서 볼카운트가 불리해져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구속을 보니까 152㎞까지 던지길래, 항상 이영하를 만나면 빠른 공을 생각한다. 2스트라이크가 되더라도 빠른 공에 승부를 걸었는데, 변화구가 오긴 했으나 워낙 변화구도 빠르게 꺾이다 보니까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 선발투수 곽빈과 마무리투수 정철원은 내일이 없는 기용을 했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 믿을맨 김명신을 아꼈고, 나머지 필승조 홍건희와 박치국은 중요할 때 기용하기 어렵다는 이미지만 더 강해졌다.
두산은 1일 현재 54승54패1무로 간신히 5할 승률은 유지하고 있지만, 6위로 내려앉아 있다. 5위 KIA 타이거즈가 5연승을 달리면서 1.5경기차로 달아났다. 두산은 아직 35경기를 더 치러야 하는데, 선발 2자리는 2~3이닝 투구가 최대치인 영건들로 버티고 있고 필승조는 벌써 과부하가 심하게 걸렸다. 선발과 불펜에서 돌파구가 될 투수들이 더 나오지 않으면 5강 싸움은 갈수록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티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