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깨지는 3000조원 스위스 계좌…‘돈세탁 성지’ 오명 벗기 나서
블룸버그 통신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카린 켈러-서터 스위스 재무장관은 30일(현지시간) 스위스의 자금세탁방지 체계에 대한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개혁 방안에 포함된 자금세탁방지 관련 새로운 법안은 스위스 내의 기업과 법인이 정부에 실소유주를 밝히도록 하고 있다. 자금세탁방지 국제 기준에 따르면 실소유주는 ‘기업·법인을 최종적으로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기업·법인이 정부에 실소유주의 명의를 등록하면 이는 스위스 연방 공보에 기재된다. 연방 공보는 스위스 연방 경찰과 법무부가 관리하는 데이터 자료로,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는다. 재무부는 정기적으로 이들 기업·법인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다. 위반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제재를 부과한다.
기업·법인의 영리 활동에 관여한 사람이나 업체에 대한 자금세탁방지 의무도 강화한다. 신탁이나 지주사 설립, 부동산 매매 등 거래에서 서비스를 제공한 변호사·회계사 등은 기업 실사 규정을 준수해야 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이외 귀금속 거래에서 현금 결제 한도를 기존 10만스위스프랑(약 1억5000만원)에서 1만5000스위스프랑(약 2200만원)으로 대폭 축소한다.
켈러-서터 장관은 개혁 방안을 밝히며 “국제금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안전하며 선도적인 스위스의 명성과 앞으로의 지속적인 성공을 위해 금융범죄를 방지하는 강력한 시스템은 필수적”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스위스가 국제금융 기준을 준수하고 있지만, 자금세탁 등 일부 결함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돈 세탁은 경제를 해치고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위태롭게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독일 나치를 비롯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려 들었다. FT에 따르면 인구가 870만명에 불과한 스위스지만 은행들이 보유한 역외자산은 약 2조4000억달러(3171조원)으로 추산된다. 세계 최대 규모다. FT는 비평가들을 인용해 “스위스의 기존 제도는 전 세계의 부패 정치인과 범죄자들이 스위스에 자산을 은닉하는 데 악용됐다”고 평가했다.
돈 세탁을 사실상 방기해 온 스위스 정부가 태도를 전향적으로 바꾼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비판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서방 국가들은 최근 러시아에 대한 재정 압박에 스위스가 비협조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위스는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의 엘리트들의 재산을 추적해 동결하기 위해 설립한 기구인 ‘러시아 엘리트·대리인·올리가르히 태스크포스(REPO)’에 참여 요청을 받았지만 수용하지 않았다. 최근 스위스 법원은 검찰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금을 세탁한 혐의로 기소한 스위스 고위 은행원 4명에게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스위스의 핵심 사업 부문인 금융이 신뢰도 하락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지난 3월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최근 스위스의 투자은행 UBS에 인수되고 있는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CS가 파산 위기에 처한 직접적인 원인은 대주주의 투자 중단 선언이었는데, CS가 돈 세탁 등 불법 행위에 가담한 사실들이 쌓이면서 투자가 끊겼다는 게 중론이다. CS는 2007~2008년 불가리아 마약 밀매상의 돈 세탁을 방조한 사실이 밝혀져 지난해 6월 스위스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스위스의 대형은행 중 돈 세탁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건 CS가 처음이었다.
개혁 법안은 추가 논의를 거쳐 내년 의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논의 과정에서 조치들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스위스가 더 많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패 감시 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는 “초안 내용을 환영할 만하지만, (실소유주가 등록된) 연방공보를 언론과 비정부기구(NGO) 등에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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