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보다 무서운 층간소음, 중고거래, 귀촌?…현실이 더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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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옆에서 곤하게 잠을 자던 남편이 밤마다 깨어나 이상한 행동을 한다. 아랫집 사람은 조용한 이 집에서 층간소음이 난다며 하소연한다. 출산을 앞둔 부부의 일상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호평받은 유재선 감독의 ‘잠’은 공포영화 같지 않은 공포영화다. 사이코패스 살인범도, 귀신도, 악령도 등장하지 않지만 불안은 의심을 낳고 이웃과 가족까지 두려운 존재로 바뀐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잠’처럼 ‘현실 공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앞다퉈 개봉한다. 층간소음, 중고거래, 귀촌생활 등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에서 공포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현실 사회의 불안을 반영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 중·저예산 공포·스릴러 영화가 가을 틈새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스터리 오컬트(초자연주의)와 스릴러를 정교하게 엮은 ‘잠’에서 층간소음과 이웃 간의 불화는 주요 모티브로 등장한다. 30일 개봉한 옴니버스 공포영화 ‘신체모음.zip’(신체모음집)의 에피소드 ‘전에 살던 사람’도 유사한 소재를 다룬다. 새집에 이사 온 주인공은 윗집이 시끄러워 항의하려고 올라가지만 들어와서 직접 확인해보라는 혼자 사는 남자의 말이 더 두렵다. 층간소음이 폭력·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공감할 만한 설정이다.
한국 추리소설 스타작가인 서미애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그녀의 취미생활’(30일 개봉)은 귀촌을 소재로 공동체와 이웃의 폐쇄성과 폭력을 묘사한다.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도망치듯 시골로 돌아온 정인(정이서)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노골적으로 그를 희롱하는 이웃 남자들 때문에 매일 밤 가위를 쥐고 잠든다. 더욱 두려운 건 ‘이웃’이라는 이유로 범죄를 눈감아주고 손쉽게 선을 넘는 다른 이웃들이다. 하명미 감독은 제주 귀촌 경험을 이번 첫 장편에 녹였다. 하 감독은 “아름다운 공동체 마을도 외지인으로 들어가면 배타적인 시선을 겪어야 한다. 낭만적으로 보이는 시골생활에서 어두운 밤 찾아오는 공포나 청명한 자연과 대비를 이루는 잔인한 현실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배우 신혜선의 호연이 돋보이는 ‘타겟’(30일 개봉)은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사용한다는 중고마켓 거래의 위험을 그린다. 신뢰를 바탕으로 주소·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행위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악몽이 담겼다. 직장인 수현(신혜선)은 고장 난 물건을 보내고 연락을 끊은 중고거래 판매자를 찾아 “사기꾼”이라고 폭로하는데, 더욱 섬뜩한 협박이 돌아온다. 특히 이 영화는 “혼자 사는 사람이 무서워할 모든 게 들어 있다”는 관객평처럼 1인 가구 시대의 그림자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신체모음집’의 첫 에피소드인 ‘악취’ 역시 중고거래로 산 가구에 들어 있던 물건이 사건을 유발한다.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잠’과 처음 스릴러에 도전한 박희곤 감독의 ‘타겟’은 순 제작비 50억원 정도로 완성한 중급 규모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수상한 ‘그녀의 취미생활’과 ‘신체모음집’은 신인감독 연출작으로 이보다 더 적은 금액이 들어갔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최근 개봉하는 영화들은 ‘현실 공포’라는 문제의식을 놓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밀도가 높고 몰입감이 강한 장르적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공포영화는 중·저예산으로 만들 수 있어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점점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사회의 불안을 포착한 장르영화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작들이 줄줄이 넘어진 요즘 극장가에서 이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한국 영화 시장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개봉 첫날인 30일 ‘타겟’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누르고 ‘오펜하이머’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고, ‘신체모음집’은 독립·예술영화 부문 일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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