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화장품 200만원 샀어요”…6년만의 중국 크루즈에 제주 ‘방긋’

이학준 기자 2023. 9. 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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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5개월 만에 제주 들어온 中 크루즈 관광객
면세점서 양손 가득 화장품·홍삼 구입
야시장에선 한국 ‘치맥’ 즐겨
오염수 반일 감정에 日 대신 韓 머무르기로
“한국 제품이라고 하면 질이 좋아 한 번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중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마스크팩과 클렌징 오일, 크림을 잔뜩 샀는데 한화로 180만원 정도 썼습니다.”
-중국인 크루즈 단체 관광객 이예준(32) 씨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들어온 지 10분도 안 돼 10여명이 가게를 찾아 주스를 사 갔어요. 평소보다 이른 시간부터 사람이 많아 좋고, 앞으로 중국 크루즈 관광객이 많아지면 매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주 한라수목원야시장 푸드트럭 사장 고 모(30) 씨

지난달 31일 오후 1시 제주항국제여객터미널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 665명을 태운 2만2782톤(t)급 크루즈 ‘상하이 블루드림스타호’가 입항했다. 2017년 3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중국발 마지막 크루 코스타 아틀란티카호(8만5000톤급)가 제주항을 떠난 지 2359일 만이다. 이날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제주를 찾을 중국발 크루즈는 47척(2만여명)에 달한다.

중국 관광객은 제주도에 특히 반가운 손님이다. 코로나로 외국인 발길이 뚝 끊긴 후 제주 관광업계는 내국인 여행객에서 활로를 찾았지만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으로 다시 침체에 빠졌다. 올해 1~7월 제주 방문 관광객은 810만5186명으로 전년 대비 3.9% 감소했다. 제주도는 지난달 중국 정부가 단체 관광 비자 발급을 재개한 것을 계기로 관광업이 되살아나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 관광객을 향한 제주도 관광업계의 기대감은 이날 크루즈 입항과 동시에 제주관광공사가 개최한 환영 행사 분위기에서 드러났다. 오후 2시쯤 중국인 관광객이 제주 땅을 밟자 터미널 일대는 축제로 변했다. 제주관광공사는 ‘건입동 민속보존회’를 섭외해 사물놀이패 공연을 펼쳤고, 제주 경찰은 기마대를 파견해 관광객들을 반겼다. 수속을 마친 관광객들에게는 기념품이 전달됐다.

31일 오후 2시쯤 제주항국제여객터미널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태운 크루즈선이 입항한 후 665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하선하고 있다. /강정아 기자

중국인 관광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상해에서 온 마자준(40) 씨는 “오랜만에 한국에 다시 방문하게 돼 기쁘다”라며 “롯데·신라면세점이 예전과 어떻게 바뀌었는지 가보고 싶고 인플루언서들이 간 카페와 식당 등을 찾아보려 한다”라고 했다. 가족과 함께 온 쏭러췬(22) 씨는 “전통시장도 간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다”라며 “한국 뷰티에 관심이 많아 관련 제품을 어서 사고 싶다”라고 말했다.

◇ 북적이는 제주 면세점…”화장품·홍삼 사러 왔어요.”

중국인 관광객들은 한국 면세점에 큰 관심을 보였다. 중국 현지보다 더 저렴하고 질 좋은 이른바 ‘K-뷰티’ 제품을 사려는 중국인들이 밀물처럼 들어오면서 한산했던 롯데면세점 제주점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짧은 시간 쇼핑을 끝낸 뒤 바로 다른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크루즈 관광 특성상 면세점 계산대는 눈 깜짝할 사이 양손 가득 물건을 든 관광객들 줄이 길게 늘어섰다. 중국인 왕 팅(23) 씨는 “자주 쓰던 화장품을 여러 개 샀는데 이번 크루즈 여행에서 200만원 정도 구매하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31일 크루즈 여행을 온 중국인 가족이 면세점을 둘러보고 있다./김가연 기자

인근 신라면세점 제주점도 중국인 관광객 맞이에 한창이었다. 한 박스에 8만원짜리 홍삼 절편은 불티나게 팔렸고, 국내 화장품 브랜드 매장은 립스틱과 아이 팔레트 등을 찾는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홍삼 매장 직원 김 모(40) 씨는 “보따리상처럼 상품을 아예 싹쓸이하는 경우는 없었다”라면서도 “기본적으로 양손 가득 사 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제주 면세점들은 코로나 이후 주춤했던 매출이 다시 늘어날 것이라 보고 있다. 제주 면세점 매출 98%가 중국인 관광객한테서 나오기 때문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중국인이 가장 붐볐던 2016년만큼은 아니더라도 과반수가 ‘K-뷰티’ 상품을 많이 찾는 만큼 기대하면서 지켜보고 있다”라고 했다.

◇ 제주 자영업자들 “모처럼 북적해진 시장에 中 관광객 반가워”

주요 관광 명소를 따라 형성된 제주 상권 또한 중국인 관광객이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에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른바 ‘큰 손’으로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은 다른 나라의 관광객보다 돈을 더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최정점이던 지난 2016년에는 크루즈를 통해 들어온 관광객만 120만명이 넘었고, 인당 평균 경비도 500달러(한화 약 60만원) 수준으로 전체 국가 평균 지출 경비(491달러)를 웃돌았다.

중국인들이 대표 관광지 중 한 곳인 용두암에 내리자 근처 음식점을 중심으로 수십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용두암 옆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 A씨는 “관광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아이스크림 10개를 팔았다”라며 “용두암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관광객들이 더 찾아올 것 같은데 앞으로도 이렇게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찾아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31일 중국인 크루즈 관광객의 방문으로 수목원길야시장이 북적이고 있다./김가연 기자

제주 한라수목원 야시장의 푸드트럭은 관광객 도착 10분 만에 긴 줄이 형성됐다. 30여개에 달했던 야시장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다. 자리를 찾지 못한 일부 관광객들은 아예 바닥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기도 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단연 ‘치맥’(치킨과 맥주). 치킨집 사장 김명진(38) 씨는 “15분 만에 20팀이 왔다”며 “이렇게 북적이지는 않았는데 깜짝 놀랐고 정신이 없다. 계속 줄을 서고 있어서 계속 밀리고 있다. 크루즈가 더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이날 일본 나가사키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 내 반일 감정이 고조돼 일정이 취소되면서 이들은 제주에서 하룻밤을 더 머물게 됐다. 이에 제주 상권에서의 소비는 예상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관광객을 인솔하는 안 모(42) 씨는 “제주에 하루 더 머물게 되면서 관광명소를 더 둘러볼 예정”이라며 “전통시장도 들러서 기념품도 사고 한국 음식도 다양하게 체험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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