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공장 누비는 4족 보행로봇, mRNA 플랫폼도 나왔다…기업 고민 해결사로 나선 KAIST
기업인 170여명 참석해 최신 기술 협력 방안 탐색
로봇·mRNA, 메타버스 등 최신 기술 총망라
기업이 겪는 애로기술 상담회도 마련돼
31일 오후 1시쯤 서울 강남 코엑스몰에 기업인들과 연구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170여명, 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신기술을 발굴하고 사업에 어려움이 되는 기술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이 자리를 찾았다. 이날은 기술이전, 기술투자, 기업자문을 통해 산학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준비한 ‘2023 KAIST 테크페어’가 열린 날이다.
국내 벤처, 스타트업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제 침체로 혹한기를 겪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전년보다 11.9% 감소한 6조8000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3분기부터 투자 규모가 크게 감소하며 위기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경제 침체뿐 아니라 갈수록 심해지는 기술 경쟁도 이들 기업에는 큰 장애물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KAIST 연구진이 개발한 기술 중 산업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는 7개의 유망 기술 발표가 이뤄졌다. 동시에 KAIST 교수 창업을 소개하고 산업체가 겪는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교수들의 자문하는 자리도 함께 마련됐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KAIST 기술가치창출원(ITVC) 원장을 맡고 있는 최성율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KAIST에서 연구개발한 기술을 산업화하기 위해 기업인들에게 소개하고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자리”라며 “KAIST의 설립 목적이 국내 기술 산업의 증진에도 있는 만큼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사업화 유망기술을 발표하는 행사장에는 50여명의 기업 관계자가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술을 찾기 위해 모였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한 기업 관계자는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아 사업 확장을 위해 자체 연구보다는 우수한 연구자와 협력이 필요하다”며 “발표 내용을 듣고 필요하다면 기술이전까지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명현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4족보행 로봇 ‘드림워커’의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다. 기술적 완성도에서도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3 국제로봇 및 자동화 학술대회’에서 열린 경진대회의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뛰어나다.
명 교수는 “로봇 공학이 발전하던 초기에는 2족보행 로봇이 주목을 받았으나 실제 산업 현장에서 제어가 어려워 최근에는 4족보행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며 “재난·안전, 탐사, 배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드림워커의 강점은 외부 환경을 카메라와 라이다(LiDAR) 센서를 사용하지 않고도 관절에 부착한 센서로 지면 특성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영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지면의 단단함, 미끌림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안정적인 움직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실제 산업에 활용되면 보행 환경에 관계 없이 모래밭이나 우레탄 바닥, 진흙 같은 곳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학습 방법을 최적화해 고성능의 연산장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상용화했을 때 제품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는 만큼 사업화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이영석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발표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플랫폼 기술은 바이오 기업 관계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 백신으로 mRNA가 처음 상용화된 이후 관련 시장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1년 49억달러(약 6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RNA 치료제 관련 시장 규모는 2030년 251억달러로 5배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전 세계적인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최근에는 전 세계에서 mRNA 기술을 활용한 암 백신, 치료제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는 만큼 중소기업의 자체 기술만으로는 경쟁이 쉽지 않다.
이날 행사에서는 mRNA 구조의 불안정성을 보완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이 소개됐다. mRNA 끝에서 안정성을 높여주는 폴리아데닌 꼬리의 길이를 최적화하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단순히 폴리아데닌 꼬리의 길이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상용화 수준의 안정성을 갖추기 어렵다”며 “적절한 길이의 꼬리를 만들어 안정성과 의약품의 효능을 늘릴 동시에 늘리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플랫폼 기술을 활용하면 mRNA 대량 생산도 가능해 백신, 유전자치료제, 단백질 생산 등 바이오 산업 전 분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소개했다.
이외에도 메타버스, 인공지능(AI),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최신 기술이 소개돼 많은 기업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밀 센서 기술로 활용할 수 있는 초박형 마이크로 분광기, 가상공간과 현실세계를 잇는 공간 기술, AI 학습 방법, 로봇팔 등 소개가 이어졌다.
저전력으로 혈압을 연속 측정할 수 있는 압전 센서를 소개한 이건재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이미 다른 기술로 창업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나, 이번에 개발한 기술로 또 다른 창업도 계획하고 있다”며 “이 자리에 모인 기업에 기술을 소개하고 협력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장 한 편에는 기업인들이 사업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컨설팅 자리도 마련됐다. 제품의 품질을 높이거나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KAIST의 전문가들이 도와주는 자리였다.
이날 컨설팅 신청을 한 김백민 대우통상 대표는 “원래는 무역회사지만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산업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며 “정보가 부족했는데 오늘 자리를 통해 사업 계획을 재검토할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우통상에 컨설팅을 한 이균민 생명과학과 교수는 “CDMO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전문인력 수급 방법 등에 대해 조언했다”며 “새로 창업하거나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기업이 겪을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돕는다는 면에서 보람 있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신소재 분야 컨설팅을 맡은 최성율 교수는 “한 소재기업에서 신사업을 위한 신소재에 대해 자문을 요청해 필요한 기술과 특성, 물성 정보를 미리 준비해 왔다”며 “KAIST와 기술 협력이 필요한 중소, 벤처기업과의 소통 창구를 만들어 주고 산업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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