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과거 어느 정부 때 언론 압박 심했나?
RSF·언론인 평가 '언론 자유'는 부침…이명박·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지난달 28일 취임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의 임명 과정에서 벌어진 여야 공방은 역대 정부의 언론정책 공정성 시비로 비화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위원장이 대통령실 대변인과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던 이명박 정부 때 언론 개입과 방송 장악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로 국가정보원 문건들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시절 고대영 전 KBS 사장의 해임 처분을 위법하다고 본 대법원 확정판결과 KBS·MBC 경영진 퇴진을 압박하는 민주당 내부 문건을 거론하며 역공을 폈다. 이는 과거 집권기 서로 언론을 압박해 장악하려 했다는 상호 비방과 진실 공방으로 이어졌다.
정부마다 우호적인 여론 조성과 언론 보도를 바라며 유·무형의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때로는 언론 장악과 여론 조작이 법 테두리를 벗어날 정도로 노골화돼 책임자들이 단죄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거 정부별 언론정책의 공정성이나 언론 간섭 정도를 비교할 수 있을까?
국가별 언론 환경을 평가하는 중요한 두 가지 지표로 언론의 자유와 신뢰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언론 자유와 신뢰도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함께 발간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8년 한국어판은 자유도와 신뢰도를 토대로 37개 주요국의 언론 환경을 비교·분석해 놨다. 이 보고서는 국가별 언론 환경을 ① 언론 자유와 뉴스 신뢰도 모두 높은 나라 ② 뉴스 신뢰도는 높지만 언론 자유는 취약한 나라 ③ 언론 자유가 보장되지만 뉴스 신뢰도는 낮은 나라 ④ 언론 자유와 뉴스 신뢰도가 모두 낮은 나라 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가장 바람직한 ① 유형에는 핀란드, 네덜란드, 덴마크, 캐나다, 독일이, 가장 취약한 ④ 유형에는 말레이시아, 불가리아, 터키가 해당한다. 한국은 미국, 프랑스, 대만과 함께 ③ 유형으로 분류됐으며, ② 유형은 싱가포르, 멕시코가 있다. 이 같은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뉴스 신뢰도는 낮지만 언론 자유는 양호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평가한 연도별 뉴스 신뢰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2016년 22%(25위/조사대상 26개국), 2017년 23%(36위/36개국), 2018년 25%(37위/37개국), 2019년 22%(38위/38개국), 2020년 21%(40위/40개국)로 거의 매년 최하위에 머물렀다. 2021년 32%(38위/46개국)로 개선되는 듯했으나 이후 2022년 30%(40위/46개국), 2023년 28%(41위/46개국)로 다시 내림세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는 매년 1~2월 46개국에서 나라별로 2천여명씩 총 9만3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으로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공식 협력기관으로 참여하면서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주요국 중 눈에 띄게 낮은 우리나라의 언론 신뢰도의 원인으로는 인터넷 언론매체들의 난립과 속보 경쟁, 언론사의 취약한 수익모델로 인한 뉴스 품질의 저하가 꼽혀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심화되는 진영 대결, 정치 양극화와 맞물린 이용자들의 편향적인 뉴스 소비와 이를 부추기는 진영 언론이 더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표] 디지털뉴스리포트 언론 신뢰도 한국 역대 순위
[자료=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뉴스리포트' 데이터 취합]
2020년 디지털뉴스리포트에 따르면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는 우리나라 응답자 비율은 44%로 40개국 평균 응답률(28%)보다 16%포인트 높고, 터키(55%), 멕시코(48%), 필리핀(46%)과 함께 최상위권에 랭크됐다. 이는 우리나라 뉴스 이용자들의 높은 편향성을 보여주는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2022년 디지털뉴스리포트에 실린 논평에서 "정파적 뉴스는 이용자에게 강력한 효능감을 부여하고 생산자에겐 저렴한 비용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제공한다"며 "진보적 뉴스 이용자가 보수 언론을 향해, 보수적 뉴스 이용자가 진보 언론을 향해, 비정파적 뉴스 이용자가 정파적인 언론 전반을 향해 보내는 평가가 융합되어 언론 불신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언론 신뢰도가 시기별로 큰 차이 없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이 같은 현상과 맞물린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정권 교체로 언론 지형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겨도 낮은 언론 신뢰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미디어 이용행태와 인식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매년 실시해온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는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연도별 언론수용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 보도 전반에 대한 신뢰도(5점 척도 평균)'는 2012년 3.26, 2013년 3.40, 2014년 3.28, 2015년 3.51, 2016년 3.36, 2017년 3.62, 2018년 3.58, 2019년 누락, 2020년 3.30, 2021년 3.32, 2022년 3.15로 조사됐다.
이에 반해 언론 자유를 보여주는 지표는 시기별, 정부별로 변화가 큰 것으로 파악됐다.
국경없는기자회(RSF)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 국가별 순위를 비교해 보면, 한국은 노무현 정부 시절 31위(2006년)까지 올랐으나 이명박 정부 때는 69위(2009년)까지 하락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역대 최저인 70위(2016년)까지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때는 41~43위(2018~22년) 수준을 유지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47위(2023년)로 내려섰다.
언론인에 대한 위협이나 언론매체에 대한 압박을 감시하는 RSF는 2002년부터 세계 각국(현재 180개국)에서 현지 언론인과 외국 언론사 특파원, 언론 연구자, 법률·지역 전문가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언론 자유 수준을 점수화해 순위를 정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언론 자유 지표로 통한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2018년 국가별 언론 환경을 분석하면서 언론 자유를 비교할 때도 RSF의 조사 결과를 참조했다.
[표] 국경없는기자회 '세계언론자유지수' 역대 한국 순위
[자료=국경없는기자회(RSF) 홈페이지 데이터 취합]
과거 미국 국제인권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가 산정한 언론자유지수도 국가별 언론 자유를 비교하는 지표 역할을 했다. 프리덤하우스는 190여개국의 점수를 매겨 '언론자유국(F)' '부분적 언론자유국(PF)' '언론 비자유국(NF)'으로 분류했다. 한국은 1989년부터 2010년(해당시기 2009년)까지 20년 이상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되다 2011년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돼 2017년(해당시기 2016년)까지 7년간 유지됐다. 프리덤하우스의 언론자유지수 발표는 이후 중단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국내 언론인을 대상으로 2년 또는 4년마다 실시해온 '언론인 의식조사' 결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 보고서들에 따르면 일선 언론인들이 평가한 우리나라 언론 자유도(5점 척도 평균)는 2007년 3.35에서 2009년 3.06, 2013년 2.88, 2017년 2.85로 떨어진 뒤 2019년 3.31, 2021년 3.44로 회복됐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후퇴됐던 언론 자유가 문재인 정부 들어 개선된 것으로 인식한 일선 언론인들이 다수였음을 시사한다.
또한 '언론의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요인'에 대한 언론인들의 연도별 응답 추이를 보면 언론인들이 직접 느낀 정치적 압력도 시기별로 차이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언론 자유의 제약 요인으로 '정부나 정치권'을 꼽은 응답(복수응답) 비율은 2007년 34.3%(노무현 정부)에서 2009년 56.7%(이명박), 2013년 56.4%(박근혜)로 높아졌다 2017년 30.3%(문재인), 2019년 27.4%, 2021년 32.4%로 낮아졌다.
정리해 보면 일반 뉴스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언론 신뢰도는 편향적인 뉴스 소비 등으로 인해 시기별로 큰 차이가 없었으나, 일선 언론인이나 전문가들이 참여한 언론 자유에 대한 평가는 정부별로 적지 않은 부침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춰보면 현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한 평가는 올 연말 나올 예정인 언론인 의식조사 결과나 내년도 세계언론자유지수를 통해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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