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미국 투자, 독이 든 사과?
무역협회 “보조금·세액공제 혜택 제한적, 득실 꼼꼼히 따져봐야”
손실 보전은 없고 초과이익은 환수…임금 수준 높아 운영비 부담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에 합류…중국 시장 포기 넘어 보복도 우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에 편입되더라도 한국 기업에 주어지는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은 제한적인 대신, 초과이익 환수 등 까다로운 의무를 부과받기 때문에 득실을 자세히 따져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25년부터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도 적극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무역협회는 31일 보고서 ‘미국과 EU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과 시사점’을 통해 “미국이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제공하는 보조금 및 세액공제는 단기적 혜택에 그칠 가능성 크다”고 분석했다. 무협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2171억달러, 150억달러를 향후 10년간 미국 내 반도체 설비에 투자할 계획이다.
미국 반도체과학법을 보면 반도체 제조시설에 대한 보조금은 2026년까지만 지급된다. 미국은 2022년에는 190억달러, 2023∼2026년에는 매년 50억달러씩 배분할 예정이다. 세액공제도 2027년 1월1일 이전에 착공하는 시설에만 적용된다.
반면 미국의 임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등 높은 운영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OECD 평균 임금은 5만3416달러였으나 미국은 7만7463달러에 달했다. 특히, 첨단공정일수록 인건비 비중이 커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TSMC는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규 공장을 건설할 때 대만에서 숙련근로자를 데려오려고 했지만 현지 노조가 반대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무협은 “보조금 지급 요건인 ‘대중국 투자 제한’이 특히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인텔·마이크론 등 세계적 기업은 중국에 반도체 생산 공장이 없고, TSMC는 상하이와 난징에 팹을 두고 있지만 한국 기업만큼 생산 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40.4%로 대만(30.4%), 일본(23.7%), 미국(14.7%)보다 높다.
초과이익 환수 조항도 한국 기업에는 부정적이다. 한국 기업 주력 상품인 메모리반도체는 경기 영향에 민감하고 변동성이 커 예상치를 밑도는 실적에 대해서는 보상이 없지만 예상치를 웃도는 경우, 추가이익 상당 부분을 미국 정부가 가져가 기업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무협은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동시에 신청할 의무는 없다”며 “항목별 득과 실을 평가해 선택적으로 신청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 세액공제만 신청하면 대중국 투자 제한(가드레일) 요건만 충족하면 된다. 다만 무협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에서 소외될 가능성도 있어 자유로운 선택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이 미국 중심으로 재편될 경우, 우리나라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과의 긴장 관계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7월까지 대중국 반도체 수출액은 197억달러(약 26조8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4억달러, 40.4%나 줄었다. 같은 기간 전체 대중국 수출 감소액은 144억달러로, 반도체가 93%를 차지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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