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인력 모두 없는데”…중처법 유예 절실한 중소기업계

“처벌만이 능사 아냐…실질적 지원으로 중대재해 예방이 우선”
인력도 부족…산재 예방 위해 지원금 늘려야
유예 연장 불발시 10곳 중 6곳은 ‘무대책’
물리적 시간 확보 주장…정부 지원 및 가이드라인 요구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누구 한 명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법 해석이 너무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교육이 너무 많다. 솔직히 우리처럼 작은 회사에서는 대표인 내가 현장에 있는 상태에서 1년 365일 공장을 가동해도 이익내기가 쉽지 않은데 자리를 자주 비우게 되니 경영이 어려운 현실이다.”(김순희 신동섬유 대표)

3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 촉구 기자간담회에서 정윤모 상근부회장과 중소기업 대표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중소기업계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유예해달라는 목소리는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보다는 중대재해를 ‘예방’하자는 성격이 짙다.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누구보다 손해를 보는 게 기업인 만큼 산재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게 주장의 골자다. 특히 중처법 적용 유예연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10곳 중 6곳은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인력 양성·지원액 확대 해달라”

중소기업중앙회는 31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 촉구 기자간담회’을 개최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중소기업계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은 안전관리자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대기업 등에서 안전관리자를 대거 채용하면서 중소기업이 채용할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서정헌 중기중앙회 인력정책실 실장은 “정부에서 전문 인력을 양성해서 공급을 늘려줘야 한다”라며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 협동조합이라는 업종별 단체를 활용해 공동 관리자를 두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의 지원 강화를 요청하고 있다. 지난해 기업들이 납부한 산업재해보험료가 8조3000억원에 달하고 누적 적립금도 24조원이지만 산재 예방을 목적으로 지원된 액수는 1조원에 불과하다.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지원액을 늘려달라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목소리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컨설팅을 받고 시설 투자를 하는 모든 조치가 결국은 비용 문제”라며 “현재 사후 보상에 초점을 맞춘 보험료를 예방 투자 쪽으로 좀 늘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앞서 같은 날 오전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예방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기간 연장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80%가 법 시행을 준비하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이 같은 우려를 전달하기 위해 국회에 방문했다”며 “김 위원장은 ‘중소기업계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여야 원내대표가 잘 협의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중처법 준비 마쳤다는 中企 1.2% 불과

중소기업계가 유예 기간 연장을 거듭 촉구하는 데는 법안 도입이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어서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상범 한국LPG산업협회 회장은 “현재도 산업안전보건법, 소방법, 전기안전법 등 다양한 법들의 규제를 받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우리 같은 영세한 업종에까지 적용한다면 이 제도를 사형 제도에 비교해 보고 싶다”고 거칠게 비판했다.

최근 중기중앙회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중소기업 89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5.9%에 달하는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유예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입에 대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기업은 전체의 1.2%에 불과했다.

더욱이 16.5%는 ‘사업 축소 및 폐업 고려’까지 검토한다고 대답해 기업들의 도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 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생존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중대재해처벌법이 5개월 후에 시행된다면 현장의 혼란은 물론, 준비를 아예 포기해버리는 기업들도 대거 나타날 우려가 있다”라며 “또한 범법자의 양산과 기업 도산으로 모두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중대재해 예방과 관련된 위험성 평가가 지난 5월에 개정이 된 만큼 제도의 안착을 위해 2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주장이다. 일벌백계의 ‘처벌’보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준비 상황을 확실히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정윤모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경영자들은 아무도 없다. 사고가 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게 경영자”라며 “기업의 준비 상황이 충분할 수 있도록 2년 동안 지원을 강화하고 기업이 준비할 수 있게 정확한 지침을 내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환 (kyh1030@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