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렵다는 사돈지간 할머니의 연대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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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작가 수지 모건스턴은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고 했다.
준희가 자라고 또 자라면 두 할머니처럼 너그럽고 강인한 여성이 될 테다.
고모에게 다시 시댁으로 들어가라며 답답한 소리만 늘어놓던 친할머니 역시 자식을 지키는 엄마의 자리로 돌아온다.
엄마의 자리에서 어리고 약한 것들을 품에 안는 마음, 삶의 의무에서 도망치지 않고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 이것이 할머니들의 단단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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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층 친구들
남찬숙 지음, 정지혜 그림 l 놀궁리(2019)
어린이책 작가 수지 모건스턴은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모든 딸들은 엄마를 보고 자라 엄마 같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일 층 친구들’은 두 할머니의 갈등과 그들이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할머니로부터 손녀로 이어질 정신적 유산에 관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다. 동화 속 할머니들은 준희에게 관계를 맺는 법, 어려운 순간을 헤쳐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준희가 자라고 또 자라면 두 할머니처럼 너그럽고 강인한 여성이 될 테다.
준희네 가족이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자마자 일이 터진다. 혼자 살던 외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불이 나서 친할머니가 살던 집이 타버렸다. 결국 두 할머니는 준희네 집으로 오게 되고 가장 넓은 일 층 방을 함께 쓰기로 한다. 직장에 다니느라 바쁜 엄마는 준희에게 할머니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는 않는지 잘 살피라고 부탁한다.
처음에야 공손하게 예의를 지키던 두 할머니는 시간이 흐르며 소소한 갈등에 직면한다. 둘은 옷차림, 즐겨 하는 요리, 생활방식 그리고 좋아하는 일까지 모든 점에서 달랐다. 세련된 외할머니는 노인복지회관에 다니고 합창반 활동을 한다. 친할머니는 농촌에서 일만 해온 터라 얼굴도 새까맣고 고무줄 바지가 편하다. 취미생활은커녕 화단을 텃밭으로 만들어 채소를 키운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 고생하며 자식을 키웠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합창반 활동도 밭일도 함께 해보려던 둘은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할 뿐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다만 욕하고 흉보며 드라마를 보는 건 뜻이 맞으니 함께한다. 두 할머니만의 ‘따로 또 같이’ 지내는 법이다.
동화에서 가장 큰 갈등은 두 할머니의 이혼에 대한 생각이다. 친할머니는 여자가 참고 살아야 한다며 이혼을 극구 반대한다. 외할머니는 오래전 이혼을 한 터라 친할머니의 이런 말이 상처가 된다. 한데 준희 고모가 이혼을 하고 집에 나타나자 두 할머니는 이제까지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지금껏 두 할머니는 마치 열세 살 손녀와 친구들처럼 서로 경쟁하고 질투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자 두 할머니는 몸으로 깨친 삶의 내공을 꺼내 든다. 외할머니는 사이가 나빴던 사돈을 데리고 장을 봐서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고모가 혼자 자립하도록 돈까지 빌려준다. 고모에게 다시 시댁으로 들어가라며 답답한 소리만 늘어놓던 친할머니 역시 자식을 지키는 엄마의 자리로 돌아온다. 사는 방식과 가치관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모두 엄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고 엄마의 일을 한다. 엄마의 자리에서 어리고 약한 것들을 품에 안는 마음, 삶의 의무에서 도망치지 않고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 이것이 할머니들의 단단함이었다. 할머니 사이의 연대도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피어난다. 그 어렵다는 사돈지간이라는 사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제든 연대하려면 내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두 할머니 모두 “꽃다발을 받을 자격”이 있는 주인공이다. 초등 5~6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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