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팔을 비트는 정치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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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식물생리학자 루이스 지스카(66)는 자신의 책에서 과거 어느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카메라 앞에 선 그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 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하자, 제작진은 '이제 됐다'며 철수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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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식물생리학자 루이스 지스카(66)는 자신의 책에서 과거 어느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카메라 앞에 선 그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 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하자, 제작진은 ‘이제 됐다’며 철수했답니다.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 벼 생태계에서 잡초가 더 빨리 성장한다”는, 중요한 말은 잘라먹고요. 그 촬영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는 식물의 먹이가 늘어나는 것이니 오히려 이로운 일’이라 주장하는 영상 ‘푸른 지구는 계속된다’(The Greening of Planet Earth Continues, 1998년)에 쓰였답니다.
지스카는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먹이”라는 명제 자체는 과학적 사실이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는 것은 작물보다 잡초를 더욱 왕성히 키우고 작물 내 단백질 함량을 낮추는 등 결코 ‘이로운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꼼꼼하게 논증합니다.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먹이”란 말은 과학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당연히 뒤따라야 할 수많은 질문들을 의도적으로 묵살하기 위해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정치적 주장’일 뿐입니다. 그 뒤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여전히 자유롭게 내뿜고 싶어하는 거대한 화석연료 산업계의 이익이 있습니다.
24년 동안 미국 농무부에서 일해왔던 지스카는 2019년 자신의 연구와 관련 논문 게재를 가로막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항의하는 뜻으로 사임했고, 지금은 대학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책의 원제는 ‘Greenhouse Planet’(온실 행성)인데, 우리말 제목을 잘 지었습니다. “정치는 어떻게 과학의 팔을 비트는가”(한문화)랍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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