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물결’이 아닌 ‘대화’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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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페미니즘이 품고 있는 핵심적인 모순이다.
페미니즘의 기원은 범세계적임에도 종종 서구에서 형성된 해방된 여성이라는 모델과 연관되어왔음을 지적하고, 다양한 배경이나 목적을 지닌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시도인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페미니즘의 꿈, 생각, 행동의 발전과 경합을 추동한 특정한 지역적 관점들을 보여주고자 시도한다.
그런데 다양한 시도 끝에 페미니즘을 상품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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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이론·실천의 상호작용
서구로부터 전래된 수입품 아닌
다양한 대화가 만든 모자이크
페미니즘들
여성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지구사
루시 딜랩 지음, 송섬별 옮김 l 오월의봄 l 2만8000원
‘페미니즘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페미니즘이 품고 있는 핵심적인 모순이다. 페미니즘의 기원은 범세계적임에도 종종 서구에서 형성된 해방된 여성이라는 모델과 연관되어왔음을 지적하고, 다양한 배경이나 목적을 지닌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시도인 셈이다.
젠더와 페미니즘 역사를 탐구하며, 계급 및 장애와의 교차성에 초점을 맞춘 노동사 연구에도 관심을 가진 영국의 역사학자 루시 딜랩은 ‘페미니즘들’에서 페미니즘의 다양한 이론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다루는데, 3장과 4장에서 페미니즘의 공간을 탐구하고 페미니즘의 물질적, 시각적 문화의 전경을 살피며 8장의 행동주의적 측면으로까지 이야기를 진전시킨다. 페미니스트 되기가 그리 쉬운 과업이 아닌 이유까지를 두루 살피는 과업이다.
이 책은 페미니즘을 더 깊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해외에서 전래된 수입품이 아니라 대화라고 본다. 불평등한 조건하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라고. 그래서 이 책은 페미니즘의 꿈, 생각, 행동의 발전과 경합을 추동한 특정한 지역적 관점들을 보여주고자 시도한다. 영향력과 절연, 혁신이 모두 존재하는 ‘모자이크 페미니즘’이다.
20세기 들어 대중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상업적 소비는 패션에서 생필품까지 두루 돈을 쓰는 소비자로서의 여성의 지위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소비와 여성성의 결합에 좌절했다.” 활동가들이 선호한 것은 소비의 영역보다 아이디어와 꿈의 영역이었고, 소비자나 가정주부라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사물들은 정치적 주장을 하는 데, 페미니즘적 사고를 전달하고 다른 페미니스트를 식별하는 데, 페미니즘의 꿈을 널리 알리는 데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다. 연구자 앨리슨 바틀릿과 마거릿 헨더슨은 오스트레일리아 여성운동의 “페미니즘 사물”을 다룬 글을 썼는데, 이 물건들은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신체적 사물, 영화나 책 같은 ‘세계 짓기’의 사물, 현수막을 비롯한 저항적 사물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읽고 쓰기라는 글의 형태는 아프리카부터 유럽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의 중심을 이룬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다양한 시도 끝에 페미니즘을 상품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소비의 연장선에서 어떻게 보이기를 선택할 것이냐는 문제 역시 페미니스트들의 주요한 갈등거리다.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종종 패션과 아름다움을 도구로 삼곤 했다. 페미니스트는 순응적 복장으로 사회적 이익을 얻느냐, 아니면 남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기를 거부하고 그에 따른 손해를 감수할 것이냐 사이에서 딜레마를 마주해 왔다.” 필리핀의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덕망 있고 여성스러운 전통적인 어머니의 상으로 표현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여겼다. 신중하게 관습을 존중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페미니스트 룩’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었으며, 여성해방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치학은 “때로 자기만족보다 다른 여성을 재단하는 데 쓰였다.”
시간 순서대로 페미니즘의 논의들을 소개하는 대신, 꿈, 생각, 공간, 사물, 모습, 감정, 행동, 노래라는 8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는 모자이크를 만들어내며 지구적인 연결고리를 파악하게 도와준다. 한국의 상황을 직접 다루지는 않아도 여러 장면에서 한국 페미니즘의 쟁점과 마주칠 수 있다.
이다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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