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가치를 품은 과학이 더 객관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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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온 초전도체 연구 검증, 후쿠시마 오염수 위험성 논쟁, 그리고 정부 연구개발 예산 삭감까지.
연구 주제는 어떻게 선택되는가? 연구 목표와 연구 질문, 방법을 결정하는 데 가치는 어떻게 개입하는가? 불확실성을 다루고 증거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 어떻게 가치를 개입시켜야 하는가? 과학 정보의 전달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더 나은 가치를 품은 과학을 위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과학자, 정책입안자, 언론인, 그리고 어째서 과학이 심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궁금한 독자들은 이 책에서 철학적이고 또 실천적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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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실의 과학과 문장들]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
연구 주제 선정부터 설계, 실행, 평가까지
케빈 엘리엇 지음, 김희봉 옮김 l 김영사(2022)
상온 초전도체 연구 검증, 후쿠시마 오염수 위험성 논쟁, 그리고 정부 연구개발 예산 삭감까지. 최근 우리 사회와 과학계를 흔들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과학의 신뢰성과 관계가 높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논쟁할 때 ‘과학’이라는 단어는 찬반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지난 8월30일 한덕수 총리는 국회에서 “오염수” 대신 “과학적으로 처리된 오염수”로 용어를 바꿔야 한다고 발언했다. 여기에 쓰인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는 처리 과정이 객관적임을, 신뢰할 수 있음을, 따라서 옳은 결정임을 강조한다. 이때 ‘과학’의 반대말은 ‘정치’다. 반대할 수 없는 사실, 즉 과학에 딴지를 건다는 것은 사상이나 신념이 객관성의 눈을 가린 ‘정치적’ 행위로 여겨진다.
과학철학자 케빈 엘리엇의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는 이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엘리엇은 “과학의 그 어떤 분야에서도 가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때 ‘가치’는 논리적 정합성, 명료한 설명, 정확한 예측과 같이 지식 생산 과정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것뿐 아니라, 성취나 인정과 같이 과학자 개인이 추구하는 것, 경제성장이나 안전, 세계평화같이 사회를 위한 것을 포함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가치를 고려한 의사결정은 다른 가치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측의 정확도를 위해 통계적 유의 수준을 높이는 개별 과학연구팀들의 결정은 기후변화나 위험물질의 규제와 같은 문제에서 정책적 의사결정을 늦추는 집합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더 나은 가치를 과학 연구의 전 과정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객관성은 “과학에서 가치를 제거하기보다 가치의 역할을 인정할 때”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과학이 다양한 가치들과 얽혀 있다는 주장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원자폭탄 개발이나 소련 리센코주의 사례처럼 정치적 이념이 과학에 영향을 끼친 사례나, 환경 위험 문제를 둘러싸고 이해집단 간 서로 다른 데이터를 제시하는 사례는 대체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매우 일상적인 연구 과정에서도 가치가 개입한다는 것을 아주 구체적인 질문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연구 주제는 어떻게 선택되는가? 연구 목표와 연구 질문, 방법을 결정하는 데 가치는 어떻게 개입하는가? 불확실성을 다루고 증거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 어떻게 가치를 개입시켜야 하는가? 과학 정보의 전달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더 나은 가치를 품은 과학을 위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과학자, 정책입안자, 언론인, 그리고 어째서 과학이 심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궁금한 독자들은 이 책에서 철학적이고 또 실천적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더 정확한 과학’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과학적이고 또 사회적인 논쟁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이러한 논쟁들이 과학적 사실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타당한가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더 많은 ‘과학’을 연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함께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는 일일 것이다.
강연실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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