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추락의 위기…‘단독성들의 사회’가 만드는 우울증 [책&생각]
단독성들의 사회
과잉히스테리 사회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지음, 윤재왕 옮김 l 새물결 l 3만 4000원
안드레아스 레크비츠(53)는 우리 시대 정치·경제·문화의 변동을 통합적으로 연구함으로써 학문적 독자성을 이룬 독일 사회학자다. 2017년 출간된 ‘단독성들의 사회’는 레크비츠 저서 가운데 국내에 처음 번역된 책이다. 레크비츠의 넓은 학문적 시야가 잘 드러난 저작이자 날카로운 사회학적 통찰이 빛나는 작품이다.
책머리에서 레크비츠는 자신의 핵심 테제를 이렇게 요약한다. “후기근대에 들어와 보편성의 사회논리가 특수성의 사회논리에 지배권을 내주는 사회적 구조 변경이 일어나고 있다.” 레크비츠는 그 특수성의 사회논리를 ‘단독성’(Singularität, 특이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레크비츠가 말하는 단독성이란 보편성에 대립하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의 독특성을 뜻한다. 이 단독성이 21세기 서구 사회에서 보편적 현상이 됐으며 지구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 레크비츠의 진단이다. 단독성은 개인의 취향과 소비에서부터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면에서 발견된다. 이렇게 단독성이 주류가 된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 ‘단독성들의 사회’다.
레크비츠는 단독성의 주류화가 1970년대부터 시작된 ‘후기근대’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후기근대는 지식경제와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하고 문화자본주의가 경제의 중추로 들어선 시대다. 후기근대의 문화자본주의는 고전적 근대의 산업자본주의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근대’는 막스 베버가 이야기한 대로 합리화의 시대, 모든 것을 규격화하고 표준화하고 보편화하는 시대다. 이 합리화를 통해 산업자본주의는 공장식 대량생산으로 전 세계를 지배했고 1950년대에 정점에 이르렀다. 후기근대는 이 산업근대가 억눌렀던 단독성의 논리가 보편성의 논리를 제치고 우위를 차지한 시대다.
이 단독성의 논리가 후기근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레크비츠는 근대사회의 초기부터 단독성 논리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산업근대의 발흥과 함께 시작된 낭만주의 운동이 그 논리의 진원이다. 낭만주의자들은 모든 영역에서 단독성을 발견해 촉진하고자 했다. 예술작품의 독창성을 찬양하고 강한 개성을 드높이며 자기 발현에 몰두했다. 낭만주의자들의 이런 단독성 추구는 산업자본주의의 합리성에 맞서 문화적 저항의 흐름을 형성했다. 이 흐름이 격류로 터진 것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대항문화(카운터컬처)였다고 레크비츠는 말한다. 이 대항문화가 옹호한 단독성이 문화자본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사회의 주류로 들어섰다.
여기서 한 번 더 주목할 것이 단독성과 보편성의 관계다. 후기근대 사회는 단독성이 주인공이 된 시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에 보편성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편성은 배후로 들어가 전면의 단독성을 떠받치는 인프라스트럭처 구실을 한다. 익명의 알고리즘으로 사용자의 독특한 움직임을 기록해 연결망을 맞추어주는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이 단독성 배후의 보편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레크비츠의 눈은 이 단독성들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행위 주체를 분석할 때 한층 날카로워진다. 산업근대의 사회적 주체는 데이비드 리스먼이 ‘사회에 적응하는 인간’이라고 불렀던 평균적인 사무직 근로자였다. 후기근대에 이런 유형의 인간은 순응주의에 물든 부정적 인간으로 전락한다. 단독성들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상투성에서 벗어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 단독성은 개인의 소망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요청이기도 하다. “후기근대의 주체는 타인들 앞에서 자신의 특수한 자아를 퍼포먼스로 펼치고, 그리하여 타인들은 자아의 퍼포먼스를 감상하는 관중이 된다.” 소셜미디어가 그런 자아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곳 가운데 하나다. 주체는 매력을 사고파는 사회적 시장에서 움직이는데, “이 시장에서는 더 많이 주목받고 더 많이 보여주려는 투쟁이 벌어진다.” 더 독특한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름과 차이를 찬미하는 사회가 단독성들의 사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회에 어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독성 사회는 개인의 자율성과 독특성을 한껏 드높이는 사회이지만, 동시에 여러 형태의 위기를 불러내는 사회이기도 하다. 레크비츠는 먼저 ‘인정의 위기’를 거론한다. 단독성 사회의 주류는 고등교육을 받고 지식·문화경제 영역에 종사하는 고능력자들이다. 이 신중산계급은 단독성을 구현할 능력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 반면에 전문지식이 없는 단순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사회적 인정의 바깥에서 자기모멸을 경험한다.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능력자들도 전락의 위험을 피하지 못한다. 지식·문화경제는 승자독식의 시장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크게 성공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비대칭이 커진다. 고능력자들의 다수가 시장에서 실패함으로써 좌절을 겪는다.
더구나 이 지식경제 시장의 법칙은 ‘매력과 취향에 대한 소비자의 변덕’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대중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한 자들도 언제든 다시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다. “항상 매력적인 인격으로 퍼포먼스를 하도록 강제하는” 단독성 경제의 특성이 ‘과잉 스트레스’ 사회를 만든다. 그리하여 우울증이 후기근대를 상징하는 질병이 된다. 더 주목할 것은 단독성 사회에서 개인들만 단독화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들도 단독화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단독성 사회는 정치의 위기도 부른다. 문화적·종교적·정치적 집단이 자신들만의 신념으로 무장해 종교 근본주의나 우익 포퓰리즘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레크비츠는 단독성 사회의 이런 위기를 ‘보편의 위기’로 명명한다. 산업근대가 보편성의 힘으로 단독성을 억압했던 것과 반대로, 보편으로부터 탈주하는 후기근대는 사회와 문화와 정치를 아우르는 공통분모의 부재로 고통받는다. 공동의 토대 없이 저마다 독자성과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사회가 파편화한다. 그러므로 보편성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지가 시대의 과제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레크비츠는 ‘차이를 지향하는 개방적 자유주의’ 정치 패러다임을 사회적 불평등과 문화적 비대칭을 억제하는 ‘규제적 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후기근대의 자유주의가 최소화하려 하는 국가와 제도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이 규제적 자유주의의 첫걸음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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