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러운 역사, 그 기억이 베를린의 ‘자유’ 지킨다 [책&생각]

최재봉 2023. 9. 1.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치 시절 과오 기억하는 베를린 곳곳 기념물들
책임 회피와 왜곡 일삼는 일본 행태와 대조적
“다르게 생각할 자유” 외친 로자의 정신 면면히
독일 수도 베를린을 대표하는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펼쳐진 두 개의 조명 퍼포먼스. 위는 아우슈비츠 해방 기념일이었던 1997년 1월27일 예술가 호하이젤이 나치의 강제수용소 입구마다 걸려 있었던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라는 문구를 빛 조명으로 쏘아 올린 모습이고, 아래는 2020년 10월3일 독일 통일 30주년을 맞아 ‘통합’이라는 문구가 빛나는 장면이다. 베를린과 독일의 ‘기억 투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장남주, 그래픽 동혜원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 1, 2
장남주 지음 l 푸른역사 l 각 권 2만2000원

책을 읽는 동안 부러움과 안타까움, 감탄과 분노의 감정이 수시로 갈마들었다. 역사의 과오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교훈을 끌어내는 독일인들의 책임감과 자신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같은 전범국임에도 독일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일본의 무책임과 비겁이 새삼 개탄스러웠다. 100년 전 간토 학살과 난징 학살, 비인도적인 전쟁 범죄를 한사코 부정하고 외면해 온 행태가 방사능 오염수의 무단 방류로 이어진 것 아니겠는가.

독일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작가 장남주의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은 베를린을 다룬 책이지만, 그 함의는 베를린과 독일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도 넉넉히 미친다. 1권 ‘나치 과거사’와 2권 ‘냉전 반세기’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지은이는 베를린 시내 곳곳에 자리한 역사 기념물들을 매개 삼아 독일 사회가 역사를 기록하고 교육하는 자세를 부각시킨다. 독일 통일 과정을 다룬 2권도 흥미롭지만, 자신들의 치부라 할 홀로코스트에 집중한 1권에서 그 자세는 특히 두드러진다. 핵심을 당겨 말하자면, “(과거사) 정리는 끝나지 않았다”는 연방 문화부 장관의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동독의 국경 경비대 시설물이 있던 곳을 공원으로 복원하면서 1997년 베를린장벽 붕괴를 기념해 세워진 조형물 ‘가라앉는 장벽’. 장남주 제공

지은이에 따르면 베를린에만 1만2천여 개의 기념물이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그가 먼저 주목하는 것은 그루네발트역 17번 선로다. 1941년 10월18일 베를린에서는 처음으로 1천명이 넘는 유대인을 실은 열차가 이 선로를 출발해 강제수용소로 향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역에서만 1만7천명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지금 이 역 앞에는 ‘1941. 10. 18’을 새긴 침목이 놓여 있는데, 1987년 한 여성 단체가 이 침목을 설치하기 전에도 몇 차례나 비슷한 기념 표지가 설치되었다가 제거되고는 했다. 독일에서도 어두운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85년 5월8일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나치 항복 40주년 의회 연설에서 이날을 항복이나 패전이 아닌 해방의 날이자 기억의 날이라고 선언한 것이 결정적인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1998년 1월27일, 아우슈비츠 해방일을 맞아 독일철도는 나치 이송에 부역한 데 대해 공개 사과하고 그루네발트역을 기념관으로 지정했다. 2007년에는 유럽 전역에서 100만명 이상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수용소로 이송되었던 기억을 담은 ‘기억의 열차’가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아우슈비츠까지 1만 킬로미터의 여정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독일철도 본사 바로 앞인 베를린 포츠담 광장역에서 ‘죽음으로 가는 특별열차’라는 이름의 전시가 열렸고 이 전시는 7년 동안 독일 전역의 44개 기차역을 순회했다.

국립오페라극장과 훔볼트대학 등이 둘러싸고 있는 베벨 광장에서는 1933년 5월10일 나치 추종 대학생들 주도로 이른바 ‘비독일 정신’으로 낙인찍힌 책 수만권이 불에 태워졌다. 지금 이 광장 바닥에는 “책을 불사르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에 태워질 것”이라는 하이네의 문구가 동판에 새겨져 있고, 매년 5월10일이면 ‘망각에 맞서는 책 읽기’라는 이름으로 당시 불에 태워진 책들을 읽는 행사가 열린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뮌헨과 함부르크, 본, 드레스덴 등 독일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같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독일 통일 뒤 전쟁과 폭정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중앙 추모 기념관으로 변모한 ‘신위병소’에 케테 콜비츠의 조각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가 확대 전시되어 있다. 장남주 제공

5만명 이상이 희생당한 부헨발트 수용소 광장에 늘 사람의 체온과 같은 온도가 유지되도록 설치된 ‘36.5도 추모 조형물’, 중증 환자들과 신체·정신 장애인들을 살해 장소로 실어 날랐던 버스를 본뜬 ‘회색 버스 기념비’, 집시로 통칭된 신티와 로마 등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눈물의 샘’, 동성애 희생자 추모비와 영상 창, 히틀러 암살을 기도했다가 붙잡혀 처형당한 게오르크 엘저를 기리는 강철봉과 엘이디(LED) 램프, 베를린 시내버스 정류장에 세워진 나치 핵심 간부들 얼굴 사진과 설명 등 나치 시절을 상기시키는 기념물은 다양하고 집요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양 슈타인마이어 연방 대통령은 2020년 아우슈비츠 해방일 75주년 추모식 연설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는 일어난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다짐과 약속은 식민 지배 역사에 관한 기억으로도 이어진다. “식민 시대의 범죄와 억압, 착취, 수탈, 수만명의 살해는 우리 기억 속에 적절히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런 말을 일본 지도자들에게서 들을 수는 없는 것일까.

케테 콜비츠와 로자 룩셈부르크는 베를린과 독일이 특히 많은 기념물로 기리는 두 여성이다. 케테 콜비츠는 아들과 손자가 각각 1차대전과 2차대전에 나갔다가 전사한 아픔을 겪으면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호소하는 예술가로 거듭났다. 그가 1차대전 발발 10주년 기념집회용으로 그린 포스터 ‘니 비더 크리크’(Nie wieder Krieg, 전쟁은 다신 안 돼)는 지금도 반전 행사에서 사용되고 있다.

케테 콜비츠의 반전 포스터 ‘니 비더 크리크’(전쟁은 다신 안 돼). 장남주 제공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 사민당과 소련 공산주의를 아울러 비판하며 독자적이고 근본적인 평의회 체제를 주창하다가 1919년 1월 우익 민병대원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그의 이름을 딴 베를린 중심가의 광장 바닥에는 그의 어록 60여 개를 새긴 ‘사유의 표지’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을 결론 삼아 소개하고 싶다. “정부 지지자나 당원들만을 위한 자유는 그들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결코 자유가 아니다. 자유란 항상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다.” 뜻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입만 열면 ‘자유’를 부르짖는 어떤 이에게 선물로 적어 주고 싶은 말이다. 2017년 베를린시는 “자유의 수도 베를린”을 모토로 관용과 개방의 ‘자유 베를린’ 캠페인을 벌였는데, 그 일환으로 로자의 이 문구를 담은 포스터가 베를린 시내 곳곳에 부착되었고 시내 건물들에도 로자의 초상화와 함께 이 인용문 플래카드가 걸렸다. 시민들의 반대는 없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