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오사카 엑스포 주제는 땅거북도 놀랄 ‘생명 빛나는 미래사회’라서

한겨레 2023. 9.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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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어떤 해일까? 오사카 엑스포가 열리는 해다.

그가 프로듀서를 맡은 이유, 코로나19를 포함해서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도, 알고리즘도 아니고 '생명이 본래 지닌 약동성'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머나먼 옛날, 대륙에 살던 암컷 땅거북이 태평양 해안 근처에서 부드러운 흙을 파고 거기에 알을 몇 개 낳고 있었다.

후쿠오카 신이치가 갈라파고스 땅 거북과 함께 본 것은 '해류'였고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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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제도에만 서식하는 희귀종 갈라파고스 땅거북(Galapagos Tortoise). ‘갈라파고스 자이언트 거북’이라는 별칭처럼 덩치가 지구상 거북 중 두번째로 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생명해류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에서 발견한 생명의 경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최재천 감수 l 은행나무(2022)

2025년은 어떤 해일까? 오사카 엑스포가 열리는 해다. 엑스포 2025의 주제는 뭘까? (기가 막히게도)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다.

엑스포 프로듀서 중에 후쿠오카 신이치라는 저명한 생물학자가 있다. 그가 프로듀서를 맡은 이유, 코로나19를 포함해서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도, 알고리즘도 아니고 ‘생명이 본래 지닌 약동성’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는 엑스포를 앞두고 생명 현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다윈의 루트를 쫓아 갈라파고스로 갔다. 갈라파고스에서 그는 다윈처럼 갈라파고스 땅거북을 봤다. 그가 거북만 본 것은 아니다. 다른 것도 봤다.

땅거북은 바다거북과 달리 헤엄을 치지 못한다. 대륙과 갈라파고스 사이는 무려 1000㎞가 떨어져 있다. 땅거북이 헤엄을 쳐서 섬에 도착했을 리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만든 것이 ‘천연 뗏목’ 가설이다. 머나먼 옛날, 대륙에 살던 암컷 땅거북이 태평양 해안 근처에서 부드러운 흙을 파고 거기에 알을 몇 개 낳고 있었다. 그런데 큰 폭풍이 몰아쳐 흙더미가 무너지고 말았다. 알은 흙과 함께 바다로 흘러갔다. 거센 폭풍은 나무를 쓰러뜨린 다음 나뭇가지와 뿌리를 넝쿨, 해초 등과 함께 바다에 밀어 넣어 버렸다. 제멋대로 부는 바람 때문에 해초와 넝쿨이 나뭇가지를 칭칭 감아서 천연 뗏목이 만들어졌다. 이 뗏목 한가운데 땅거북 알이 끼였다.

이 일이 일어난 바닷가에는 갈라파고스 제도 방향으로 끊임없이 남적도 ‘해류’가 흐른다. 천연 뗏목은 부서지지 않고 무사히 이 ‘해류’를 탔다. 날씨가 좋다면 ‘해류’는 2시간 만에 1000㎞를 흘러 뗏목을 갈라파고스 제도까지 운반할 수 있다. 반대편 태평양 저편에서는 적도 잠류가 흘러온다. 이 두 ‘해류’는 마침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부딪힌다. 천연 뗏목은 양방의 ‘해류’에 시달리며 갈라파고스 제도의 어느 섬 해안으로 밀려간다. 천우신조에 가까운 불가사의한 우연이 겹치면서 땅거북이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한 것이다. 알 껍데기가 단단한 도마뱀도, 이구아나도 같은 행운으로 섬에 도착했지만 단단하지 않은 껍질을 가진 개구리는 섬에 도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갈라파고스에는 양서류가 없다.

갈라파고스 수역은 생물의 ‘생존권’이 충분히 확립된 바다다. ‘해류’ 때문이다. 후쿠오카 신이치가 갈라파고스 땅 거북과 함께 본 것은 ‘해류’였고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책에 담았다. 책 제목이 가슴 아리게도 ‘생명해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뉴스에서 ‘해류’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이 책이 생각난다. 지금 더 이상 알 수 없게 된 것이 바로 생물의 생존권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나자 도쿄전력과 정부의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3·11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 아니라 숱하게 예상에 입각한 경고가 나왔던 일이었다. 수많은 생명이 이 ‘예상 밖’이라는 말이 빚어내는 깊은 어둠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염수가 방류되던 날 내 친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럴 때 언어의 한계를 느껴. ‘바다야 힘내!’라고 말해봤자 바다는 알아듣지 못하잖아.” 그렇다면 인간 언어는 무슨 쓸모가 있을까? 누군가 언어로 알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결코 알 수 없다. 누군가 계속 지켜보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세대는 뭐가 뭔지 모르겠고, 예상 밖의 나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불안정성을 내면 깊숙이 유산으로 받게 된다.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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