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산초의 이상향을 꿈꾸다…춘천 책방 ‘바라타리아’

한겨레 2023. 9.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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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 │ 책방 바라타리아

‘책방 바라타리아’에서 ‘미래로 보내는 미리 계산한 책’(미미책)을 고르는 강원고 학생들 모습.

맞아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나오는 종자, 그 ‘산초’가 열흘 동안 다스렸다는 가상의 섬나라 이름이죠. 공작 부부는 돈키호테와 산초를 놀리려고 산초에게 가짜 영주 자리를 내어주었는데, 이를 알 리 없는 산초는 바라타리아에 부임해 성심껏 그곳을 돌보았죠. 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기존의 정치인들과 다른 상식적인 해법을 내놓았으며 기득권에 맞섰습니다. 심지어 현실적인 민생법률을 제정하여 지키게도 하죠. ‘산초 골리기’에 동참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를 떠나보내면서 진심으로 슬퍼하지요. 우리네 같은 소시민 산초가 꿈꾼 이상향인 바라타리아가 책의 영지로 재탄생한 곳이 우리 부부가 운영하는 ‘책방 바라타리아’입니다.

‘책방 바라타리아’는 춘천 근화동 옛 미군부대 ‘캠프 페이지’ 터 끝자락에 있는 고즈넉한 동네 골목 안쪽 깊숙이, 오래되고 낡은 집들 사이에 숨어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 자그마하고 예쁜 흰색의 3층 콘크리트 건물입니다. 언제가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서점을 운영하자 했던 중년의 부부는 이곳에 책방을 짓고, 결국 조금 이른 은퇴를 선택해, 지난해 8월부터 책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초창기 손님들은 무모한 책방지기의 얼굴이 궁금해 책방 문을 밀고 들어온 분들이 대부분이었죠.

‘책방 바라타리아’에서 열린 정은혜 작가의 출간 사인회 모습.
‘책방 바라타리아’ 건물 전경.
‘책방 바라타리아’ 내부 모습.

주인 부부는 판매용 책을 큐레이션하는 것과는 별개로 책을 통해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답니다. 그러다 떠오른 것인 임경선 작가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에서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였지요. 하루키가 어린 시절 책을 보고 싶을 때마다 그냥 가져올 수 있는 동네서점이 있었다는 거예요. 어린 하루키는 책 값을 치루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책방 주인에게 미리 당부해 두었던 거죠. 우리 아들이 책을 보고 싶어하면 그냥 내어달라고. 책값은 자신이 주기적으로 치를 것이라고요. 임경선 작가는 하루키가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대학입시가 최종목표인 한국의 교육시스템 안에서 청소년이 교재나 학습지, 추천 도서가 아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청소년이 어린 시절 하루키처럼 원하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로 ‘미래로 보내는 미리 계산한 책, 미미책’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뜻있는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보낼 책을 골라 결제를 하면 ‘미미책’이 서가에 놓이게 되죠. 책을 선물한 어른이 보내는 메모와 함께요. 그러면 책방을 방문한 청소년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책을 골라 갈 수 있어요. 책방 문을 연지 일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 110여명의 어른들이 200여 권의 ‘미미책’을 서가에 남겨 주었고, 이 중 120여 권이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도착했답니다. 주인 부부는 앞으로도 ‘미미책’ 서가가 미래에 대한 격려와 배려로 계속 채워지기를,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위로와 추억을 가져가기를 기대하고 있죠. 혹시 모르잖아요. 20년쯤 흐른 후, ‘미미책’을 골라간 친구 중에 노벨 문학상을 받는 세계적인 작가가 나올지도요. 그 때쯤 우리 부부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 있겠네요.

‘책방 바라타리아’ 내부 모습.
‘책방 바라타리아’ 내부 모습.
‘책방 바라타리아’의 100번째 ‘미미책’.

책방 운영은 중년 부부가 조기퇴직을 감행한 자영업으로, 엄연히 현실적인 부분이기도 하답니다. 다행히 현재 책방 서가에는 책방 문을 연 일 년 전보다 더 많은 책이 판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부러 온라인 서점이 아닌 동네책방에서 책을 구입하는 분들, 독서모임이나 작가와의 만남 등 문화행사를 위해 기꺼이 달려와 주시는 작가님들 그리고 행사에 참여해 주는 분들, 우연히 들른 이곳이 서점임을 알고는 기꺼이 책을 한 권 골라가는 분들 덕분에 산초의 섬 ‘책방 바라타리아’의 서가를 계속해서 채울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지역 사회에 이런 책 공간 하나 정도 남겨두고 싶다는, 일상 속에서 작은 유토피아 한 곳쯤 지켜주고 싶다는 분들의 마음을 책방 주인 부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소망과 실천에 기대어 우리 부부는 이 곳 바라타리아를 인생의 마지막까지 운영하고픈, 무모하지만 행복한 꿈을 꾸어봅니다.

춘천/글·사진 강은영·장남운 책방 바라타리아 주인 부부

책방 바라타리아
강원도 춘천시 당간지주길74번길 5(근화동)
instagram.com/barataria.book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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