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엄밀한 논리의 메스로 해부하는 불교 사상

고명섭 2023. 9.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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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시더리츠(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명예교수)는 인도 불교 사상과 현대 철학의 만남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온 학자다.

이 책의 목표는 그 서양철학의 논리적 사유 방법을 사용해 불교라는 종교사상을 탐구하고 불교 사상 내부의 형이상학·인식론·윤리학을 검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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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시더리츠. 위키미디어 코먼스

철학으로서의 불교
마크 시더리츠 지음, 강병화 옮김 l 운주사 l 3만8000원

마크 시더리츠(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명예교수)는 인도 불교 사상과 현대 철학의 만남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온 학자다. 시더리츠가 쓴 ‘철학으로서의 불교’는 제목 그대로 불교를 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책이다.

시더리츠가 말하는 철학은 우선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서양철학을 뜻한다. 이 철학은 분석과 논증이라는 사유 수단을 체계적이고 반성적인 방식으로 사용해 세계와 인간의 근원과 본질을 물었고, 그 결과로 형이상학·인식론·윤리학 따위를 성립시켰다. 이 책의 목표는 그 서양철학의 논리적 사유 방법을 사용해 불교라는 종교사상을 탐구하고 불교 사상 내부의 형이상학·인식론·윤리학을 검토하는 것이다.

시더리츠는 불교 사상가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정밀한 지적 체계로 만들어내는 데 철학적·이성적 사유를 사용했음을 강조한다. “고대 인도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인도의 불교도들은 우리가 누구이고 우주의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불만족스러운 상태로부터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통찰을 얻으려면, 철학적 합리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불교의 교리 체계가 그 자체로 모든 면에서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업’이나 ‘윤회’의 교리는 현대인의 상식적 세계관과 맞지 않는 면이 있다. “그러나 불교도들은 상식에 어긋나는 불교의 가르침들을 합리적 근거를 통해 뒷받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불교를 철학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은 불교도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그런 주장이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지를 묻고 검토하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불교 교리가 “합리적 조사의 시험을 얼마나 잘 견디는지” 따져보는 것이 이 책이다. 냉정한 철학의 눈으로 교리 체계의 타당성을 검증대에 올려놓고 논리적 메스로 해부해보는 것이 이 책에서 하는 일이다.

그러나 불교의 경론은 너무나 방대해 하나하나 다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에서는 불교 사상의 발전 경로를 따라 핵심이 되는 텍스트를 추려내 집중적으로 살피는 방식을 취한다. 먼저 붓다와 그 직제자들의 가르침인 초기 불교 내용을 ‘무아와 윤회’를 중심으로 하여 검토한다. 이어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형이상학적·인식론적 이론들인 ‘아비달마’를 뜯어본다. 세 번째로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성과인 유가행파(유식)의 ‘불교 관념론’과 중관학파(중론)의 ‘공성 사상’을 해당 원전을 따라가며 들여다보고, 마지막으로 ‘불교 인식론’의 정점인 디그나가학파의 이론을 논리적으로 파헤친다. 이런 검증을 통해 언뜻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론이 매우 치밀한 사유의 결과임이 드러나기도 하고, 불교가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것들이 이성적 사유를 통과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차가운 분석 작업이 불교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이해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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