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호텔 프로젝트] 옛 모습 간직한 곳 걷다보면 “아…여기서 살고 싶다”

황지원 2023. 9. 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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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호텔 프로젝트] (10) 일본 효고현 ‘단바사사야마시 마을호텔’ 체험
체크인부터 특산품 주며 환대
전통 의상 ‘유카타’ 입고 식사
다다미 깔린 다락에서 차 한잔
사사야마성은 또 다른 볼거리
150년 전 지어진 집은 호텔 프런트와 객실·식당이 있는 ‘오나에’로 변신했다.

현대화될수록 사람들은 오래된 것을 찾는다. 일본 효고현 중동부에 있는 단바사사야마시 사사야마조카마치(성 아래 마을)의 마을호텔은 그런 곳이다. 거리는 400년 전 모습을 보존하고 있고, 빈집을 고쳐 2015년 마을호텔로 탈바꿈했다. 인구 4만명의 단바사사야마시는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지방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출보다 전입이 많아졌다. 일본 정부는 이 마을을 ‘일본의 아름다운 역사 도시 100선’으로 선정했다.

바닥·벽·천장이 나무로 된 방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본관 ‘오나에’에 들어서자 가키모토 하나 매니저가 큰 소리로 환영 인사를 건넨다. 이곳 마을호텔은 8개동 20실로 이뤄져 있다. 오나에는 붉은빛을 띠는 국화를 부르는 말이다. 일본은 옛날부터 왕실 문양으로 국화를 썼다. 8개동 각각엔 국화 종류별로 이름을 붙였다. 오나에는 그중 가장 큰 건물이다. 150년 전 은행장이 지어 살았던 이곳엔 객실 5개와 프런트·식당이 있다. 가키모토 매니저는 시의 특산품인 검은콩절임과 차를 내오며 환대했다.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일본 문화인 ‘오모테나시’다.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은 몇시에 드실 건가요?”

식사 시간을 정하면 입실 준비 완료다. 방을 준비해뒀다는 가키모토 매니저의 뒤를 따랐다. 방으로 가는 통로에서 옛날 생활방식을 엿볼 수 있는 부뚜막을 만났다. 건물의 역사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남겨놓은 것이란다.

오늘 묵을 방은 창고로 쓰던 곳을 개조한 것이다. 미닫이문을 열자 작은 현관이 나오고, 또 문이 있다. 두개의 문을 거치자 비로소 복층방이 등장한다. 바닥·벽·천장 모두 목재로 돼 있다. 객실은 투숙객이 옛 모습을 최대한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2층은 골풀로 만든 일본 전통 바닥재인 다다미로 돼 있고 방 곳곳엔 등불이 놓여 있다. 조금 어둡지만 아늑한 고민가의 분위기를 손님들이 느끼길 바라서다. 다다미가 익숙지 않은 관광객을 위해 침대도 마련돼 있다. 침대 위엔 일본 전통 옷인 유카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세면대까지도 신경 쓴 태가 났다. 단바사사야마시의 전통 도자기 ‘단바야키’다.

유카타를 입고 다다미가 깔린 다락에서 차를 마시는 건 고민가 호텔에서만 가능한 이색 경험이다.
일본 가정식 아침식사

노란색 유카타를 입고 어색함도 잠시, 금세 저녁 시간이 됐다. 식사는 오나에 한가운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한다. 레스토랑 통창 밖으로 바위와 모래를 활용한 일본식 정원 ‘가레산스이’가 보인다. 정원을 감상하고 있으니 차례로 요리가 나왔다. 맛이 훌륭한 건 물론, 플레이팅까지 예술 작품 같았다. 효고현산 훈제 송어는 껍질을 바싹하게 익혀 맛을 살렸다. 미디엄 레어로 익힌 다지마규(효고현의 고급 소고기)엔 지역산 가지와 고추 등 농산물을 곁들였다. 녹차와 생선을 넣은 프랑스식 빵 요리도 빠질 수 없다.

다지마규 스테이크

“모든 요리에 신선한 지역산 재료를 활용했어요. 우리 시를 알리고 농민들과 상생하기 위해서죠. 마을호텔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풀벌레 소리를 벗 삼아 잠들고, 다음날 아침 일찍 마을 산책에 나섰다. 가키모토 매니저는 산책에 나서는 기자 손에 마을지도를 쥐여 줬다. 지도에는 요메나·시온·카와라노 등 다른 동 위치가 표시돼 있다. 오나에와 가장 먼 숙소는 흰 들국화를 뜻하는 ‘노지’다. 걸어서 20분 정도 소요된다.

300년 전 건물에서 단바사사야마시 특산품인 검은콩 가공식품을 파는 ‘오다가키’.
검은콩절임

노지로 가는 길에 오나에에서 맛본 검은콩절임을 파는 가게 ‘오다가키’에 들렀다. 1734년 개업한 오다가키는 1868년부터 콩 종자 판매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단바사사야마시의 검은콩과 팥으로 만든 음료·과자를 팔고 있다. 300년 된 상점 건물은 국가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다케시 오다가키 상무는 마을호텔이 들어서고 가게 매출이 올랐다고 좋아했다. 그는 “손님들이 지역특산물에 관심이 많다”며 “호텔에서 농산물을 홍보해준 덕”이라고 덧붙였다.

마을호텔 중앙에 위치한 이 지역의 랜드마크 ‘사사야마성’은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사사야마성은 이순신 장군에게 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전국을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은 성으로, 메이지시대 ‘폐성령’에 따라 성은 사라졌지만 터와 대서원은 남아 있다. 성터를 둘러싼 호수는 ‘물멍’ 하기에 좋았다. 몇몇 관광객은 물가 근처에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고 성터에 마련된 공원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지역민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은 마을호텔이 만든 풍경이다.

단바사사야마시 거리 곳곳에선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단바사사야마시 출신으로 마을호텔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후지와라 다케시 ㈜노트 대표는 “마을호텔이 생기고 나서 주민들은 지역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고, 방문객들도 우리 지역을 친근하게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일본, 더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에도 모범이 되는 마을호텔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서는 강한 확신이 느껴졌다.

양손 가득 한국에 가져갈 검은콩절임을 든 채로 단바사사야마시 마을호텔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세련미와 편안함을 놓치지 않은 숙소와 훌륭한 음식,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환대…. 숙박비로 낸 46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마을호텔에 매료돼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며 이곳을 반복해서 찾고, 이주까지 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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