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억 걸린 담배소송' 2라운드 승자는…원고측 "새 증거 확보, 이길 것"

천선휴 기자 2023. 9.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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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vs TOP3 담배회사' 소송전…1심은 공단 패소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담배가 진열되어 있다.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이번엔 정말 이길 수 있을까. 1999년 폐암환자가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처음 시작된 이래로 ‘담배 소송’에서 흡연자들이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같은 해 장기 흡연 폐암환자들이 제기한 소송도, 2005년 5월 폐암으로 사망한 경찰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담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또 하나의 '담배 소송'이 진행 중이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건강보험공단이고, 상대는 담배 회사들이다. 1심은 예상대로 공단이 패소했다. 이에 불복한 건보공단은 항소했고, 지난 1월 7차 변론까지 진행됐다.

◇소송 제기 6년 만에 내려진 1심 판결 “흡연-암 인과관계 없다”

이번 '담배 소송'은 2014년 4월 시작됐다. 공단은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새고 있다"며 당시 국내 담배 판매 시장 점유율 상위 3개사인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약 533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533억 원은 흡연기간이 30년 이상이고, 20갑년(매일 1갑씩 20년 혹은 2갑씩 10년) 이상 담배를 피운 고도흡연자 중 흡연과의 인과성이 인정된 편평세포폐암·후두암 등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 대해 공단이 2003~2023년에 지급한 급여비를 추산한 금액이다.

이 소송의 쟁점은 △직접 손해배상 청구 가능 여부 △흡연과 폐암 발병 간 인과관계 △위험성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제품 설계 결여 △중독성 등 제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은 불법행위 책임 △공단의 손해액 범위 등 다섯 가지다.

이 중 핵심 쟁점은 '흡연과 폐암 발병 간 인과관계'였다. 1심 재판부는 소송이 제기된 지 6년 만인 2020년 11월 "건보공단이 보험자의 급여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의무를 이행한 것에 불과하고, 흡연 이외 다른 요인에 의해 폐암이 발병했을 수 있다"며 담배와 폐암의 인과관계를 부정하고 담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건보공단과 의료계는 발칵 뒤집혔다. 1심 판결 직후 김용익 당시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담배에 대한 사회 인식이 크게 바뀌었지만 사법제도를 통해 인정되기 힘들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담배 소송은 담배로 인해 건강과 생명을 잃은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구제를 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소송 완주 의사를 피력했었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31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담배와 암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주제로 열린 2023년 담배소송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23.8.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건보공단·한국금연운동협의회·의학계 "이번엔 기필코 이긴다"

건보공단은 31일 ‘담배와 암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주제로 한 담배 소송 세미나를 열고 1심에서 핵심 쟁점이 된 담배와 암의 인과관계를 밝히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정기석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의과대학에선 설암, 방광암, 췌장암, 폐암 등을 담배가 일으키는 암으로 시험도 내고, 계속 틀리면 의사가 되지 못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이 당연한 사실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소송 제기 당시 담배로 인해 발생한 진료비는 1조7000억원이었지만, 2021년 3조5000억원까지 폭증했다"며 "2심은 조직학적·병리학적인 접근을 해 철저하게 새로운 증거들을 마련하고, 담배의 중독성이 마약과 다르지 않다는 것 등을 강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이강숙 가톨릭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1심 판결이 나온 뒤, 담배와 폐암과의 인과관계를 추가로 증명하기 위해 소송에 참여한 흡연자 중 30명을 꼽아 일대일 심층 면담하는 등 질적 연구를 수행했다.

이 교수는 "집단에 속한 개인이 위험인자에 노출된 시기와 정도, 발병 시기, 위험인자에 노출 전 건강상태, 생활습관, 질병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한 해 전국을 돌며 흡연 피해자를 찾아다녔다”며 “결과적으로 흡연과 암 발생 인과성의 확정적 증거들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흡연자들에게 담배의 유해성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고, 흡연을 시작한 후 암이 발생하기까지 니코틴 중독으로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수년간의 패배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승소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매년 우리나라에서만 흡연으로 인해 약 6만2000명이 사망하고 있다며 "KT&G만 해도 1년에 1조원의 천문학적인 당기순이익을 얻고 있는데, 담배회사들은 1명당 1700만원을 벌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건보공단이 소송에 나서면서 WHO를 비롯한 국내외 기관과 관련 학회들이 적극 지지하고 있다”며 “흡연자들에게 건강상의 피해를 입히고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 책임을 묻는 그날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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